67번째 천산갑 - 천쓰홍
hellas 2025/04/0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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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번째 천산갑
- 천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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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이 꽤나 흥미로웠던 것에 비해
이번 작품은 너무 관념적이고 추상적 이미지만 가지고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솔직히 지루하다.
결국은, 정체되어 있는 로드무비랄까.
이 스토리는 굳이 이 정도 볼륨의 책으로 읽기엔....
어린 시절의 인연으로 서로에게(정말 서로인가?는 차치해두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두 남녀의 이야기인데.
재밌을 법도 한데 지루하다는 게 특징이다.
그녀가 그에게 의존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인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살아있는 인간은 그녀였고, 그의 존재는 왠지 실제가 없는 엔피씨 같은 느낌이 든다.
페트리쇼르(Pétrichor)라는 단어가 신선했다는 소득이 있었다. 식물이 가뭄을 만났을 때 분비하는 기름방울이 진흙이나 암석에 스며들었다가 비가 건조한 대지를 적시면 이런 기름이 만들어내는 냄새에 빗물이 섞이는 것. 프랑스어인줄 알았더니 원래 영어 단어에서 온 말이라고.
- 보통은 그가 유일한 관객이었다. 전부 그가 못 본 영화들이었다. 흑백도 있고 컬러도 있었다. 고화질이 아닌 데다 색채가 뒤섞이기 일쑤였고, 걸핏하면 영상이 끊겼다. 주인이 커튼을 들추고 들어와 테이프가 손상되었다고 선포하며 새 영화로 바꿔 주었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상상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결말이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할까. 왜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결말을 갈구할까. 사람들은 화해나 파국, 여행의 종점, 도로의 끝, 우기의 끝, 서설의 강림을 기대했다. 지금부터는 즐거움만 있거나 영원히 슬플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인생에선 원래 선명한 마침표가 없다. 종종 작별 인사를 건넬 기회를 놓치고, 눈을 뜨건 감건 영원히 못 보는 경우도 있다. - 132
- 죽음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바사나 자세를 할 때마다 여러분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자신이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빠르거나 느리게 빛나거나 암울하게 다들 죽어가고 있지요. 강줄기나 사막, 구름이나 나무뿌리, 빗방울이나 바위도 마찬가집니다. 진지한 자세로 누우세요. 편안하게 몸에 힘을 빼세요. 천천히 호흡하면서 죽음을 연습하세요. - 136
- 모든 등불이 밝은 빛을 쏟아내는 밤이었다. 그는 어쩌다 여기 오게 된 걸까. 줄곧 빛을 피해 왔는데, 어쩌다 이렇게 수정처럼 밝은 파리의 옥상에 오게 된 걸까. - 137
- 기자가 그에게 감동해서 우느냐고, 고진감래라고 생각하느냐고, 마침내 인정을 받았기에 우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언어로 자신의 눈물을 해석할 길이 없었다. 이런 순간에 언어는 무용지물이었다. 눈물이 바로 그의 언어였다. 눈물에 자신의 문법과 구두점과 발음과 서사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눈물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읽어내지도 못했다.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물은 그 순가 그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다. - 146
- 그녀가 마지막으로 화를 낸 게 언제였더라.
정확히 특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화를 내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화를 내려면 진심이 필요했다. 그녀는 자신이 진심이 아니고 성실하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을 원하지 않았다. 진심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분노하기 위해선 온몸의 근육을 다 동원해야 하고, 감정이 격앙되면 자칫 진심의 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 237
- 마침내 그녀는 준비가 다 되었다. 기다리지 않고 큰 걸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갈 작정이었다. - 480
2025.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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