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8 - 박경리
hellas 2025/03/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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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 18
- 박경리
- 9,800원 (
290) - 2002-01-01
: 524
일제 강점기의 대하소설이라.. 이십여 권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비극적이다.
읽는 나는 이제 광복이 다가오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소설 속 대한 제국의 국민들은 끝이 안 보이는 폭압의 시절을 온몸으로 겪으며 정신적으로 지쳐 우울감에 잠식되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단지, 몇 달의 계엄 상황도 이렇게나 답답하고 수치스럽고 낙담하는 마음이 수시로 몰려오는데, 그 시절 그들의 독립에 대한 전망이 얼마나 거대한 우울이 되었을지...(요즘 토지의 후반부를 읽으면서는 늘 이 생각이 든다... 거듭되는 같은 감상을 어쩔 수가 없다)
양현의 이야기가 주로 서술되는데, 신분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젊은 여성의 마음도 갑갑... 덕희라는 존재도.... 갑갑...
- "바보처럼 웃고 살자. 광대가 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언제까지?
순철은 환국의 눈을 깊숙이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 멀지 않았다고 믿어야지. 멀지 않았을 거야." - 20
- 세월이 비정한가 망각이 비정한가, 어느 쪽일까?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잃어가며 살아간다. 자기 자신도 잃어가며 살아간다. 잃은 것의 시체가 추억이다. 그리고 마지막 잃는 것이 죽음일 것이다. - 188
- 언제까지 미쳐 날뛸까요? 얼마나 사람이 죽어야 전쟁은 끝나지요? 전쟁 미치광이 땜에 과학이 발달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과학이 발달되고 없어도 될, 아니 없어야만 할 것 때문에 자원과 인력이 동원되고 생산에 미쳐 날뛰는, 이 끝없는 낭비는 결국 인류가 전멸한 뒤에 끝이 날까요? 그래요. 군국주의는 망해야 해요! 식민지 정책은 끝이 나야 해요. 낭비와 축적의 이 병적 상황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사람답게 살 수 없고 생명이 부지될 수도 없을 겁니다. 제 사장 말대로 농춘은 거대한 군량의 저장소이며 노동자는 모조리 군수품의 부품, 뿐이겠어요?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볼 때, 지주들이 농민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노동자 아닌 사람도 노동자로 공급이 될 것 아니겠어요? 이제는 저항 없어요. 망해야 합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역사의 변혁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망해야 합니다.
오가다의 목소리는 비통했다. - 216
- 한 위인이 살다간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서가 아닐까? 시일까? 타인에게 투영된 그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갖가지 정서로 재생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자체는 보는 사람에게는 풍경이며 시다. 위대하다는 그 자체가.
영광은 밑도 끝도 없는,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고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사념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 304
- 이 서방, 파도가 눈에 뵈지 않는다고 바다가 조용한 건 아닐세. 상어떼가 무리를 지어 날뛰고 피래미 한 마리 숨을 곳이 없다면 조용한 그 자체는 더 무서운 것 아니겠나? 그러나 절망하지 말게. 민중들은 아직 순결하다. 친일파는 말할 것도 없지만 지식인들이 일본이라 할 때 대다수 민초들은 왜놈 왜년이라 하네. 역사적인 자부심과 피해의식은 그들 속에 굳게 간직되고 있어. 그들은 일본인을 두려워하면서도 모멸하고 복종하는 체하면서도 결코 섬기지 않아. 그들은 조선의 대지이며 생명이다.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고 그럴 계기가 주어진다면 민초들은 다 뛸 것이야. 의병의 의기는 아직 그들에게 등불로 남아 있어. - 320
- "나는 가끔 생각하네. 동학이 좀 일찍 일어났든가, 아니면 백 년쯤 후에 일어나든다..."
홍이는 범석을 쳐다본다. 무슨 뜻이냐 묻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홍이는 답답했고 이상했다. 도대체 앞서가자는 것인지 되돌아가자는 것인지 그의 진의가 아리송했다. 범석은 슬픈 눈빛으로 홍의 시선을 받았다. - 324
- "산다는 거는... 참 숨이 막히제?"
한복이는 그런 말 할 만했다. 그가 살아남았다는 그 자체가 기적이었으니까. 돌밭의 질기고 못생긴 무꽁댕이 같았던 그, 밟히고 또 밟히는 길가의 잡초같이 자란 한복이, 그에게도 수십성상의 세월이 실려 이제는 제법, 몸집은 작으나마 의젓하고 사려깊은 현자 같은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숨이 가쁘지요."
한참 만에 홍이 대꾸했다. - 345
2025. feb.
#토지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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