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이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이라면, 그런 혼란 속에서 당황하며 좌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좀비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생존하려는 모습이 펼쳐진다.
소설의 속도가 1권에 비하면 빠른 편인데, 세 군데서 사건이 진행된다. 한 곳은 교도소, 또 다른 한 곳은 1권에서 지휘권을 잡고 군인들을 지휘하기 시작하는 비에드지츠키 소령이 들어간 시립동물원이 있는 큰 섬, 또 한 곳은 교도소에서 내보내져 소련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의도됐으나 탈출에 성공한 잔인한 사형수들이 은거하게 되는 광장의 은신처다.
교도소에서도 역시 소장은 피신을 하고 교도소장 대리를 맡은 사람이 나온다. 권력을 쥔 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대리를 맡은 대위 역시 이와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선택을 한다.
즉 죄수들을 내보내고 교도관들의 가족들을 교도소로 데려오는 것이다. 그곳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여겼기 때문.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좀비가 발생하면 사태는 급속도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
교도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을 겪은 끝에 간신히 좀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물론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다.
공공기관이 재난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데, 자신들과 관련 있는 사람들만을 보호하는 기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을 위험에서 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당장 내 가족의 안위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이 아니고. 그것이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교도소 대리 소장이 하는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범죄자들을 풀어주고, 사형수들은 가둬서 내보냈다고 하지만, 다른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행위였다.
이런 행동을 공공기관이 한다면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겠는가? 각자도생이라고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협동이고, 책임을 지는 기관의 대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소령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령이 있는 큰 섬에서는 전열을 정비하고 좀비들에 대처하기 시작한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대피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서서히 좀비들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와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좀비로 변한 원인이나 대책을 세우려는 노력도 하게 되는데...
반면에 좀비보다도 더 지독한 지옥이 펼쳐지는 곳이 사형수들이 탈출한 도심이다. 이들은 생존자들을 붙잡아 좀비를 유인하는데 쓰거나 자신들의 노리개로 삼는다. 이들은 이러한 재앙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인간성을 잃은 자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데...
좀비의 지옥에 이들의 지옥이 더해져 그곳 사람들은 그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없는 참담한 고통을 겪게 된다. 재난 상황에서 재난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려는 존재가 있기 마련인데, 공공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인간성을 상실한 작자들이 판치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잔혹하게 행동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 협조하는 사람도 나오게 되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내어놓게 하는 자들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의 잔학함에 치를 떨면서 읽게 되고, 언제 어떻게 이들이 파멸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살아남아 다른 사람들을 지옥에 빠뜨릴 것인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렇게 떨어져 있던 세 곳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소령이 지휘하는 군인들이 교도소와 연락이 되고, 간신히 살인자들에게서 탈출한 소녀가 범죄자들의 음모를 알려 그들을 소탕하게 된다. 그리고 이전에 죽은 사람들도 좀비가 되는지 실험을 하는데...이때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한다. 그 살인자들, 사형수들을 좀비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 이용하는데,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비에드지츠키 소령은 내켜하지 않는다. 아무리 범죄자라도 그런 비인도적 행위에 동원할 수는 없다는 쪽이고, 의사인 아렌지코프스키는 어차피 사형수들이고, 이들의 죽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쪽이다. 이런 논의는 정의와 공리의 문제로 다룰 수 있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다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사적인 복수극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처벌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러한 드라마를 보고 통쾌하게 여기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범죄자들이 저지른 짓은 죽어 마땅한 짓들이다. 그 장면을 읽으면 이들이 그냥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총살이나 교수형은 이들에게 너무도 자비로운 형벌이라는 생각. 이들이 사람들에게 저지른 짓은 좀비들에게 먹히기 전에 온갖 공포를 겪는 것으로도 대체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2권의 마지막엔 소련군이 들어온다. 그런데 해방군이 아니라 약탈자로서... 이제 좀비에 더해 또다른 위기가 시작된다. 아직 좀비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시간은 2주가 지나 있다. 3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끔찍한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두려움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 위기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 가는 사람도 있고.
3권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