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이번에는 어떻게 도로시가 오즈에 가게 될까? 바람도 바다 폭풍우도 지진도 겪었으니, 이제 작가가 도로시를 어떤 방법으로 오즈로 보낼지 궁금해 진다. 또 새로운 등장인물들은 누구이고...
털북숭이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가 길을 묻는데 알려줘도 이해를 잘 하지 못하니 도로시가 할아버지에게 갈림길까지 직접 안내를 한다. 그런데! 갈림길에 갔더니 도로시가 알던 길이 아니다. 길이 더 있다. 또한 집에 돌아가는 길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할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설 수밖에 없게 된 도로시.
그렇군 이번에는 미로같은 길을 통해 오즈로 가게 하는군. 가다가 빛나는 단추를 만난다. 자신의 집이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아이. 또 무지개 딸도 만나는데, 이 셋이 도로시의 새로운 친구가 된다.
이들과 함께 여러 모험을 거쳐 오즈에 도착해 오즈마 공주의 생일 잔치에 참석하는 도로시. 그 과정에서 여우 나라, 당나귀 나라를 비롯해 일행을 위협하는 곳을 거치게 되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위험을 겪게 될 텐데, 그러한 위험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모두 제거한다면 어떻게 될까? 흔히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이를 키우지 말라고 하는데, 지금 어른들의 모습은 어떨까? 아이들이 스스로 모험을 하게 내버려두는가?
아니라는 답이 더 맞을 듯하다. 조금만 눈에 띄지 않아도 안달복달하면서 잠시도 아이들이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위치를 알려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집에도 또 아이들이 있는 어린이집, 학교에도 감시카메라나 또 스마트폰과 연동이 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위험이 될 것 같은 요소는 아예 다 없애버리고 있지 않은가. '안전한 놀이터'라는 말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이 때, 오즈의 마법사는 그런 현대인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여기저기 모험을 하면서 친구를 만나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것. 그래서 도로시는 낯선 존재를 만나도 거부하지 않고 그 존재의 장점을 보려고 한다. 친구가 되려 한다.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 먼저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도로시가 보여주고 있다.
이 편에서는 다른 것을 떠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여우 나라에서는 여우 머리가 가장 아름답고, 당나귀 나라에서는 당나귀 머리가 가장 아름답다. 그렇다고 다른 존재들에게 자신들의 머리를 선물이랍시고 달아주면 되는가. 그것이 아름답다고, 네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그러면 안 된다. 여우 머리를 달게 된 빛나는 단추도, 당나귀 머리를 달게 된 털북숭이 할아버지도 자신의 본래 머리를 좋아하지 새로 단 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즉 내가 좋다고 남에게도 좋다는 생각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이 편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그런 것을 깨달아간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해야지 남의 것을 가져와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
오즈에 있는 '진실의 연못'에 들어가자 이들은 본래의 머리를 되찾는다. 그렇다. 본래 자신의 모습을 지니고, 그것을 가꾸는 것이 '진실'이다. 이렇게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찾은 사람은 다른 단계로 나갈 수가 있다.
털북숭이 할아버지가 오즈에 남을 수 있게 된 것도, 빛나는 단추가 자신의 부모 집으로 갈 수 있게 된 것도 이러한 진실의 힘인 것이다.
이 편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오즈로 가기까지의 모험과 오즈에 도착해서 친구들을 만나고 즐겁게 지내다 헤어지는 장면이다. 즉 즐거움,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모험을 해야 한다는 것. 모험을 회피해서는 그러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는 환상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현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