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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 14,400원 (10%800)
  • 2019-06-10
  • : 16,597

시간에 관한 한 편의 서정시같다. 서정시? 마음에 와닿기는 하는데, 무어라고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나는 감동받았어. 하지만 어떻게 설명은 하지 못하겠네. 그냥 좋아. 이 정도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


로벨리 책을 몇 권 읽었다. 최근 과학계에서도 한참 앞서가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있는데, 고전물리학도 잘 모르는 처지에, 양자물리학의 첨단에 서 있는 학자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해한다고? 그렇지도 않다. 무언가가 잡힐 듯한데, 개념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로벨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흐릿하다.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라고 해야 하나. 엔트로피가 낮으면 단순하니, 명확할 수 있겠다. 바로 과거가 그렇다고 한다.


복잡한 일들을 정리해서 단순화한 것. 그것이 과거 아닌가. 그래서 과거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쉽다고 한다. 반면 미래는?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혼란 상태다. 혼란 상태기 때문에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 엔트로피는 증가하지 감소는 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는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계속 복잡하고 혼란한 상태. 그러니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 할 수밖에. 과거를 생각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과는 달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번역했는데, 이는 시간이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절대적인 시간은 없다고 하는 것. 따라서 시간은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선을 따라 곧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고 하는 것. 이렇게 혼란한 지점에 있는 것들을 자신과의 관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시간이라고 나는 이해했는데...


시간은 실체가 아니라 사건이라고... 관계라고. 그러니 언제든 변할 수밖에 없고, 고정될 수가 없다고. 따라서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은 없다고. 다만 다양하게 맺어진 시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알기 위해서이지 않은가. 우리를 알기 위해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데, 시간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이 관계가 사건이고, 이러한 사건들이 시간이라고 하면 될 테니까. 이 책에서 음악을 예로 들고 있기도 한데, 음악에서 각 음표들을 생각한다. 음표들이 실체인가? 그 음표가 홀로 존재할 때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아니다. 각 음표들이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


음표들은 각자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음표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특성을 발현한다. 즉 음표들의 관계가 선율을 만들어낸다. 같은 음표는 없다. 관계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시간도 그렇지 않은가. 음표들의 관계를 사건이라고 하면, 시간은 사건이고, 인간은 이러한 사건들의 총체인 것이다. 사건이라는 말이 좀 마음에 걸린다면 관계라고 하자. 사건이 바로 관계니까. 따라서 이 책은 시간을 통해 인간이 만나게 되는 다양한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주 속 인간...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피상적으로 그렇게 그냥, 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관계가 없다면 나란 존재는 의식도 하지 못할 것이다. 뇌의 작용 역시 관계니까. 그러니 관계가 끊기는 순간이 죽음이고, 이는 내게는 사건의 끝이니 시간의 끝이기도 하겠다. 그 이후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여기까지 나아가면 좀 지나친가? 


아무튼 이 책은 한 편의 서정시와 같다. 마음에 드는데,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가 없고, 또 무어라 설명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울린다. 좋다. 


기억해 둘 만한 문장들...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른다. - P17
눈으로 보기 전에 이해하는 능력은 과학적 사고의 핵심이다. - P19
모든 물체는 자기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한다. 지구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한다. 평지에서 시간이 더 많이 지연되고, 산에서는 덜 지연되는 이유는 산이 지구의 중심과 좀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 P20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해 있는 물체보다 더 짧은 기간을 경험한다. 시계의 초침이 덜 이동하고 식물이 덜 자라며, 아이들은 꿈도 덜 꾼다. 움직이는 물체에서 시간은 줄어든다. - P49
시공간이 중력장이고, 중력장이 시공간이다. - P83
양자역학 덕분에 얻은 발견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인데, 물리적 변수의 입자성granularity과 미결정성, 관계적 양상이다.

- P 89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P105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실제로 잘 살펴보면, 매우 ‘사물다운‘ 사물들은 장기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P106
‘물리적‘인 세상이 사물로, 존재자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 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작동한다. - P107
양자중력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 P127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외부에서 본 세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 P161
세상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것은 에너지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낮은 엔트로피다.- P 167
우주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무질서해지는 과정이다. - P172
미래가 아닌 ‘과거의 흔적만‘ 있는 이유는 과거에 엔트로피가 낮았기 때문이다. ...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의 엔트로피가 낮았다는 것뿐이다. - P173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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