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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모든 소년이 파랗지는 않다
  • 조지 M. 존슨
  • 15,300원 (10%850)
  • 2022-12-05
  • : 369

흑인이자 퀴어인 남자 이야기.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대와 자신의 성향이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어떤 선택을 할까?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 이 책의 저자인 존슨은 1985년 생이다. 그렇다면 지금 40이라는 말인데, 그가 살아온 시대라면 흑인도 퀴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아니다. 그는 흑인이자 퀴어라는 이유로 언제 어떻게 배제되고 목숨을 잃을지 몰라 두려워 한다. 


하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두려워 하는 세상이라면 그건 잘못된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세상이라면 그건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남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기를 두려워하던 존슨. 그렇다고 자신의 성적 지향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줄넘기를 좋아하지만 미식 축구도 하고, 육상 선수로 나서기도 하는 등 소위 남성성이 강하다고 하는 운동에도 즐겨 참여한다.


성적 지향에 따라 좋아하는 운동과 잘하는 운동이 따로 있을 수가 없지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구분하기도 하니... 그 역시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밝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었음에도.


따스하게 감싸주는 가족들에게서 자란 존슨에게도 세상은 위험한 곳이었다. 경찰이었던 아빠는 그것을 더 잘 알았을 것이다. 흑인 경찰이지만, 흑인 경찰의 아들에게는 언제든 경찰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이 책에는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흑인 남성들 이야기가 나온다. 병으로 죽는 경우도 있지만 폭력으로 죽는 경우도 있으니...


그렇지만 가족의 지지는 삶을 살아가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어려움을 건네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존슨은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것을 축복이라고 한다.


게이 자식을 두느니 죽은 자식을 두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면서 자식을 살해한 사람 이야기도 있는데, 존슨에게는 자신을 자신으로 인정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그냥 친구로- 친구가 되는데 성적 지향성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것은 그에게 축복이었다.


이런 축복을 그는 자신의 축복만에 그치게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쓴 이유가 그것이다. 여전히 성적 지향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것을 밝히기를 꺼리는 청소년들도 많다는 것.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들려줌으로써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


그래, 세상이 하나로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다양성이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고 하면서 유독 성적 지향성이나 피부색으로 사람들을 차별하는 경우는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의 개념을 반려동물이나 인공지능 로봇까지로(사이보그) 확장하는 시대에 그래도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인 인간을 왜 구분하면서 내치려고 할까?


이런 시대에는 오히려 더욱 더 함께하려고 해야 하지 않나. 다르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다름이 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고...


저자가 주장하듯이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사회 아닌가.


여전히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활성화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이 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저자의 이 말을 명심했으면 한다.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커뮤니티에 공평과 평등을 부여할 때, 피해를 보는 사람은 억압자뿐이다.' (126쪽)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당신은 억압자이냐고? 왜 약자들에게 공평과 평등을 부여하면 안 되냐고?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흑인다움과 퀴어함, 그 밖에 정체성을 누르는 억압에 맞서 싸울 때 가장 든든한 도구는 바로 제대로 된 교육이다.' (93쪽)


흑인다움이나 퀴어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미 강자들은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언급을 하지 않는 것. 백인이 강자인 사회에서 백인다움을,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이성애자임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으니, 여기서 흑인다움과 퀴어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미 차별받는 소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함의 주장이다.


그만큼 '주류 사회는 순전히 다름을 억압하려고 '정상' 개념을 세운다'(13쪽)는 말이 여전히 통용되는 것이다.


흑인 남성이자 퀴어로서 살아온 존슨의 회고록, 여전히 소수자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이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또 앞으로 살아갈 세대들이 이것을 의식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 점을 명심하자.


흑인여성이자 퀴어인 오드리 로드의 [자미], 백인여성이자 퀴어인 재닛 윈터슨의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도 같은 맥락의 책이다. 다들 소수자지만 그들 또한 다른 상황, 다른 삶을 살았으니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준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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