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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밤이 오면 우리는
  • 정보라
  • 12,600원 (10%700)
  • 2023-09-25
  • : 661

소설의 배경은 기후 재앙이 일어나는 때다. 세계 각국은 기후 재앙을 과학기술로 풀려고 한다. 인공 태양을 만드는 것. 그러나 태양은 수소폭탄과도 같으니, 또다른 수소폭탄을 만든다고 오해하는 나라도 나온다. 이것을 제어하기 위해 로봇을 만든다. 로봇이 판단하게 한다. 무엇이 위험한지, 그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서.


하지만 로봇은 판단한다. 인간이 위험요인이다. 인간을 제거해야 위험이 사라진다. 그래서 로봇은 인간을 제거한다.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종을 위한 최선의 안전장치는 인류 문명의 종말이었다.'(21쪽)


이 소설에는 세 부류가 등장한다. 주인공인 흡혈인. 본래 인간이었으나 흡혈인이 되어 로봇에 맞서 싸운다. 이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자신을 인간이라 믿는 로봇 빌리. 그리고 인간. 인간은 다시 로봇에 대항하는 인간과, 로봇을 추종하는 로봇의 노예 역할을 하는 인간으로 나뉜다.


여기에 지나가는 것처럼 흡혈인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성폭력의 위협에 놓인 여성을 이야기한다. 여성 화장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서 보는 남성들. 여성을 자신들의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남성들. 인간이 로봇에 의해 멸망해 가는 와중에도 여성의 화장실을 몰래 보려는 성적 욕구에 지배당하는 남성들. 그 남성들을 물어뜯는 화장실의 여자. 그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흡혈인의 유래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사실 소설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다만,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폭력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 역시 디스토피아니, 그런 디스토피아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그런 짓을 하는 인간들을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 되는 것.


기후 재앙 역시 비인간적 폭력 아니던가. 자신이 폭력을 저지르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하는. 그래서 본질적인 개선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기술로 상쇄하려는 모습. 지금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자세 아닌가.


여기에 맹목적으로 기계를 추종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합리성은 없다. 그들은 노예에 불과하다. 어쩌면 과학기술이 인류가 지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을 보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겠지만, 진실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만을 밀어붙이는 특정 종교집단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들에게 소수자들의 삶은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악에 물든 행위라고. 그런 사람들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런 종교인들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 기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기계를 위해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 인간들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인간들과 달리 로봇으로 만들어졌지만 인간이라 생각하는 빌리는 "인간의 기준이 뭐죠?"(65쪽)라고 묻는다. 그렇다. 빌리는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이때 흡혈인인 나는 대답을 하지 않다가 나중에 '나는 빌리가 질문했던 인간의 조건을 생각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액체가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인간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눈물, 땀, 피, 혹은 진물이나 오물.'(83쪽)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몸의 약 70%가 물로 이루어졌다면 적절한 때에 적절한 액체가 나오는 것이 당연해야 한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도 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인간성(이것에 대한 정의는 거의 무한하다)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여기에 그러한 인간성을 지닌 존재라면 인간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인간에 대한 정의의 확장. 갑자기 해러웨이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그래서 나는 빌리의 죽음에서 '기계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은 존재가 있었다'(124쪽)고 말한다. 빌리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을 생물학적인 존재로만 규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 그것이 현대인이 생각하는 인간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흡혈인인 나와 로봇인 빌리는 디스토피아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로봇에 대항해서, 비인간성에 대항해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인간성을 지닌 존재로 살아가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 아니겠는가.


기후 재앙의 위기에 있고, 각종 과학기술이 인간을 위협하기도 하는 이때,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 무엇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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