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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아무튼, 데모
  • 정보라
  • 10,800원 (10%600)
  • 2024-03-25
  • : 3,250

정보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환상소설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 환상이 곧 우리 현실이라고 느끼곤 했다. 또한 작가의 말에서 대놓고 '복수'를 이야기하는데, 왜 그런가를 이 책을 통해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이런 활동을 하는 작가라면 세상의 불의를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터. 불의에 항의하기 위해 직접 서명을 받고 행진을 하고 오체투지까지 한 작가니, 작품을 통해서 불의, 악을 응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모라고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는 거창하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니다. 정보라 작가의 데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하는 것뿐이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또 자신들이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정보라 작가는 데모 현장에 함께한다.


이 함께함이 바로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길이다. 유토피아가 저기 있다가 아니라 그렇게 함께 가는 길이 유토피아임을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고, 또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으니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함께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며, 내가 바라는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이다.


엄숙하고 무거울 것 같은, 데모라는 말에서 풍기는, 적어도 80년대 데모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그러한 행위가 이 책에서는 결코 무겁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리저리 잴 필요가 없이 그냥 해야 할 일을 할 뿐이기 때문에 무겁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발랄함, 그렇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불의를 없애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경쾌하고 발랄하게 참여한다.


데모가 축제가 되는 것. 그것은 정보라 작가의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이미 작년 12월부터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던가. 응원봉이 등장하는 데모라니... 데모는 우중충한 행위가 아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세상을 미리 만나게 해주는 유토피아가 펼쳐지는 곳, 그곳에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얻게 되는 행복하고 즐거운 장이 바로 데모 현장이어야 한다.


물론 슬프고 무겁고 어두운 데모 현장도 있다. 이 책에 나온 고공농성장이 그렇다. 땅에 발 붙이고 살아야 할 사람을 땅에서 가장 먼 곳으로 보내 자신의 주장을 듣게 하는 것.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다 내려오면 경찰이 출동해 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하게 하기보다는 체포부터 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현장. 이런 현장이 결코 발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현장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데모를 하는 이유도 그렇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아직도 데모를 사회를 혼란시키는 이기적인 자기 주장만을 펼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왜 데모를 하는지, 그리고 데모가 과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인지...


가령 이런 것이 있다. 차별금지법을 생각해 보자. 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자는데 반대를 하지?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이 책에 나온다.


'2020년 여름 국회 앞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오체투지를 하러 갔을 때 확성기를 든 어떤 사람이 차별은 꼭 필요하다며 "사람은 차별을 당해야만 노력해서 극복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59쪽)


이런 사람들이 꼭 있다. 자신은 차별당한 적이 없기 때문. 차별이라는 말이 어떻게 삶을 왜곡하고 힘들게 하는지를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


정보라 작가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타인의 몸을 경험할 방법은 없으니까.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경험하는 세상을 정말 전혀, 하나도, 결단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배우거나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81쪽)고 하고 있다.


이러니 차별이 뭔지, 그것이 삶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지 못한다. 차별이 없다면 들지 않을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그 비용을 왜 약한 사람이,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지불해야 하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차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삶은 형벌이 아니다. 게다가 피부색이나 출신 국가나 가족 상황 등은 내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 봤자 바꿀 수 없는 걸 바꾸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기본적인 존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노력이라기보다 차별로 인해 소모되는 비용일 뿐이다. 확성기 든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그런 주장을 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에게 그런 '차별 비용'을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59-60쪽)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니 작가가 데모를 할 수밖에 없다. 데모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므로.


이러한 정보라 작가의 모습, 데모에 관한 글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혹시 그동안 데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면, 데모를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리라. 정보라 작가가 데모에 대해서 경험하게 해주었으니까.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했구나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래서 이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하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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