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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 14,220원 (10%790)
  • 2023-06-05
  • : 1,661

귀신 이야기는 곧 사람 이야기다. 귀신을 꼭 사람으로만 보지 않아도 결국 귀신 이야기는 사람 이야기로 귀결이 된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신을 보는 존재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귀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귀신을 보고 그것의 존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다. (지금 현재로는. 우리는 둘리틀 박사가 아니기 때문에 동물들 말을 알아들을 수 없고, 또 외계 존재는 아직도 만나지 못했기에...)


이번 소설은 연작소설이다. 공간적 배경이 같다. 연구소다. 연구소 하면 먼저 감성보다는 이성을 생각한다. 이성이 작동하는 것,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려 하는 곳이 연구소다. 따라서 연구소에는 비합리적인 것들이 들어서기 힘들다.


그런데도 연구소를 배경으로 삼은 것은 비합리적인 것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 또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것도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증명하기는 힘들지만 존재한다면 그것에 대해서 이성을 작동하는 것이 인간 아니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귀신 이야기는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 귀신은 그냥 귀신이 되지 않는다. 귀신에 홀리는 사람은 그냥 홀리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있다. 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면 그것은 비합리, 비현실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현실적이 된다.


귀신 이야기가 사람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다. 정보라 소설은 이렇게 비현실을 현실로 바꾸고, 귀신을 사람으로 바꾸어준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는 선배다. 그런데 선배는 앞을 볼 수 없는 인물로 나온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주로 예지력이 있는 사람에게 이런 경향이 있다. 즉 눈에 보이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존재가 된다. 선배 역시 연구소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 


또한 이 소설집에서 귀신에게 도움을 받는 존재들은 약자들이다. 사회에서 배제된 존재들, 그러나 남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은 존재들, 그런 존재들은 귀신이 해를 주지 않고 도움을 준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말이 현실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 소설을 통해서 그러한 현실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소설집을 읽으면 우선 재미있다. 귀신 이야기는 늘 흥미롭지 않은가. 오죽하면 21세기에도 '심야괴담회' 같은 방송이 인기를 끌겠는가. 영화에서도 공포물에 주로 귀신이 등장하기도 하니, 귀신 이야기는 우선 우리의 호기심을 끈다.


무서워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귀신 이야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과 비슷하지 않은가. 무서워하면서도 귀신에 끌리는 존재들... 그런 호기심을 지나면 이제 우리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도박에 빠져 가족을 내팽개치는 사람, 산재를 당했는데 그 산재로 인해 능력이 있음에도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양의 침묵)이 나오는가 하면, 귀신을 단지 자신을 알리는 흥미거리로 삼는 사람(저주 양)도 나오고, 금기를 어겨 고난을 겪게 되는 사람(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자신의 욕심만을 추구하는 사람(손수건)과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가 없이 상대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푸른 새), 제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거기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고양이는 왜)도 나온다.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아니라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인물, 사건을 통해서 그런 인물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이 잘 되거나 못 되는 모습을 이번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귀신 이야기가 그렇듯이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양의 침묵'을 보라. 연구소 부소장 이야기인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 사회에서 배제 당하지만 그럼에도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존재들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 삶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대로 '저주 양'에서는 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이 아니다. 자신을 알리려는 수단으로 연구소를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양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같은 양이지만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귀신 역시 마찬가지라면 위안이 될까?)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고양이는 왜'에서 살인이 밝혀지지 않아 살인자로 잡혀가지 않지만 그에 대한 벌을 받는다) 모습이 이 소설집에 나오고 있다.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여름에 이 소설을 읽으면 시원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예전에 '전설의 고향'이란 방송이 한여름에 납량특집이라고 해서 방송되기도 했으니...


여름을 나는 방법으로 이 소설을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더위도 잊고, 또 나름 귀신과 사람을 생각하기도 하고. 적어도 이 소설을 읽으면 '귀신은 뭐 하고 있나? 저런 인간 잡아가지도 않고.'라는 말을 왜 옛날부터 했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나 한다.


정작 그러한 귀신도 시한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 소설 '햇빛 쬐는 날'에서 보여주고 있지만, 이는 원한이라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 주변에 원한이 있는 존재, 무언가 풀지 못한 문제가 있는 존재가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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