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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전국칠웅
  • 리산
  • 27,550원 (5%830)
  • 2016-11-30
  • : 52
이 한국어판이 9년 전에 나왔고 원저는 중국 학자가 쓴 대중서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 저자들의, 현지에서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가 한국에서도 많이 번역, 출간되었는데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리산 교수는 이 책의 전편 격으로 <춘추오패>를 내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고 그 책도 읽고 리뷰를 올리겠습니다. 춘추오패나 전국칠웅이나 오래 전부터 중국사의 특정 정치 단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된 말들이며, 한국 중고교 교과서에도 지도와 함께 가르쳐지는 항목들입니다. 이런 흔한 토픽을 두고 저자가 현대의 독자들에게 자기만의 무슨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원래 한, 위(魏), 조는 진(晉)나라 안에 포함되던 영역인데 실력 위주의 풍조가 퍼짐에 따라 제후들이 각기 분립하여 등장한 국가들입니다. 그러니, p73에 나온 대로 셋이 바싹 붙어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었는데 춘추 시대 진(晉)이 얼마나 풍요롭고 광대했으면 그로부터 갈라져나온 세 나라들이 모두 이렇게 칠웅 안에 들기까지 했는지 놀랍습니다. 전국시대 중국 땅에 칠웅만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의 문후에 대한 고사가 소개되는데, 문후는 한(韓)이 조(趙)를 칠 때에도 조가 형제라면서 정중히 거절했고, 조의 요청에도 "한은 형제"라는 명분을 들었다고 합니다(출처: <전국책>). 사실 이건 말이 모순되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셋은 근원이 같았으며, 나라 간 평화를 위해 일종의 거중조정을, 문후가 이런 식으로 시도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경솔하게 분쟁에 끼어들기는 쉬워도 이성적으로 다툼을 말리기는 무척 어려우니 문후의 이런 처신은 매우 훌륭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 있어 정보의 중요성(p151)은 매우 큽니다.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인재란 1등급과 2등급의 차이가 매우 크며, 이는 하늘이 정해 주는 것이라 생각없이 불평할 게 아니라고 합니다. 방연과 손빈 사이의 대결은 유명한데, 과연 손빈의 자질이 뛰어나긴 했는지 방연이 그 부족한 지략과 수완 때문에 어디서 죽을 것까지도 정확히 예측하여 나무에다 글자까지 미리 새겼다는 고사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손빈이 미리 여러 군데에다 저런 표식을 마련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를 향한 저런 티배깅 사인까지 세팅하는 사치를 부린 걸 보면 그 증오감이 어지간히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뭘 글씨 같은 걸 어디에 미리 새겼다가 상대가 눈치라도 채면 내 전술이 다 읽히지 않겠습니까. 하긴 방연의 주변머리로는 내가 뭘 해도 손을 못 쓰리라는 현격한 기량 차이에 대해 손빈은 확신이 있었을 수도요. 책 곳곳에 방주(傍註) 형태로 개념 설명을 이렇게 해 주는 편집(책에서의 명칭은 "확대경"입니다)이 좋았습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요.." 이는 원전이 <효경>이며, 이 구절은 주자의 제자 유자징(劉子澄)이 <소학>을 편찬할 때 삽입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중종 때, 점필재의 제자 나헌 김전(金銓) 등이 <소학>을 우리말로 옮겼고, 이것의 일부가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저희 세대가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원래는 머리 깎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이 책 p259에도 나오듯 몸에 형벌을 받아 영구히 그 흔적(의 일부)이 남게 하는 일이 없게 하라는 증삼(曾參)의 가르침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즉 죄를 지어 어디 끌려가서 형사전과 생기는 인생 살지 말라는 게 본연의 취지죠. 여기서 저자가 하려는 말은,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유가와 법가에 같은 거리를 두며 상군(상앙)의 인품이 여튼 그리 좋지는 않았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한다는 점입니다.

제(齊)는 원래 태공망 여상의 영지였으나 이 역시도 가신 전화(田和)가 역적질을 해 뺏은 후에는 전씨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국시대는 이처럼 타고난 신분보다는 개인의 실력이 출세 여부에 더 크게 작용하는 세상이었는데 이런 걸 마냥 좋다고 할 것도 아니어서 혼란과 쟁투상이 극에 달했습니다. p379를 보면 저자가 전단(田單)을 소개하며 성씨만 봐도 제나라 왕실의 종친임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의 예도 그랬지만 먼 종친은 종친도 아니어서 말단관직에 머물러야 했던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한명회도 청주 한씨 명문가의 혈통이요 개국공신의 손자였지만 초년에 고생을 많이 하고 앙앙불락하다 출세를 꿈꾸고 큰 사고를 쳤지요. 이 대목에서는 전단이 화우진(火牛陣)을 써서 제나라를 망해 가던 국면에서 일단은 살려낸 고사를, 카르타고의 한니발 사적에 빗대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제나라는 이미 망조가 들었던지라 전단 아니리 혹 제갈량을 몇 백 년 앞당겨 쓸 수 있었다 해도 결국 다른 수가 없었을 텝니다.

다양한 전거로부터 고사(故事)들을 뽑아 저자 특유의 입담으로 재미있게 들려주는 흥(興)이 뛰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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