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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즐의 서재
  • 페스트 (컬러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 알베르 카뮈
  • 10,800원 (10%600)
  • 2025-04-08
  • : 4,260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명화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완역본이 나왔어요.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예순세 번째 책이며, 삶과 죽음을 다룬 명화 15점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페스트》를 더욱 특별하게 만날 수 있어요.

우리는 왜 《페스트》를 읽어야 하는가. 최근 몇 년간 엄청난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고전을 읽으면서 단서들을 발견하는 경험을 했네요. 문학 작품이 지닌 가치는 각 개인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세상을 연결시켜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가 성장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어갈수록 자신의 세계가 커지듯이, 고전문학은 저마다 담을 수 있는 만큼의 깨달음을 건네주는 것 같아요.

카뮈는 1945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체계를 믿을 정도로 이성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나의 관심은 우리가 신神도 이성도 믿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가를 아는 데 있다." 《페스트》는 신도 이성도 무력감을 드러낼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특히 시간의 변화에 따라 페스트 관련 집단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_ <해제>, 유기환 (373p)

《페스트》는 1940년대 프랑스령 알제리 해안 도시 '오랑'에서 발생한 페스트(흑사병)로 인해 점차 도시가 공포와 불안으로 마비되는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이 재난의 연대기를 기록한, 우리에게 들려주는 화자는 의사 베르나르 리외예요. 그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시대를 기록하는 증인으로서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베르나르 리외와 어머니의 짧은 대화였어요.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는가, 그것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결정적 요소라는 것, 리외는 의사로서의 직분에 충실했고, 인간의 사랑을 믿었기에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베르나르?"

"예."

"피곤하지 않니?"

"괜찮아요."

그때 그는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고,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 그가 얻은 것은 단지 페스트를 겪었고, 페스트를 기억한다는 사실, 우정을 경험했고 우정을 기억한다는 사실, 애정을 경험하고 언젠가 애정을 기억하리라는 사실뿐이었다. 기실 페스트와 삶의 내기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인식과 기억뿐이었다." (345p)

이 책에는 삶과 죽음을 다룬 명화 15점이 수록되어 있어요. 표지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프의 <죽음과 삶>(1910-1915년)이고, 두 번째 등장하는 그림은 아돌프 폰 베커의 <잠자는 회색 고양이와 쥐>(1864)예요. 페스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과정마다 에드바르 뭉크의 <병실에서의 죽음>(1893), <불안>(1896), <장례 행진>(1897), <절망> (1892), 그리고 아르놀트 뵈클린의 <흑사병>(1898), <죽음의 섬>(1880), 빅토르 타르디유의 <예방접종>(1923년경), 존 본드 프란치스코의 <병든 아이>(1893), 게리 맬커스의 <설교> (1886),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의 <병든 남자> (1902) 그림을 함께 볼 수 있어요. 명화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감상일 텐데, 《페스트》를 함께 읽으니 소설의 장면과 그림이 겹쳐지면서 생생한 느낌으로 와닿았네요.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팬데믹이 해제되던 시점에 《페스트》를 읽었고, 계엄령을 선포한 내란 우두머리가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시기에 다시 읽게 되었네요. 인간의 내면에는 공존하는 선과 악,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최선의 면을 끄집어내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건 치열하게 불의와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페스트'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입 밖에 나왔다.

... 사실상 재앙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지만, 막상 그것이 자신에게 닥치면 그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는 페스트가 전쟁만큼이나 빈번히 발생했다. 그리고 페스트나 전쟁이나 사람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 전쟁이 발발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가지 않을 거야,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니까."

물론 전쟁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지만, 그렇다고 오래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짓은 언제나 저질러진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점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 그들은 겸손을 잊었다, 그뿐이다. 자신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자신들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전제하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그들이 미래와 여행과 토론을 없애버리는 페스트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아무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55-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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