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검은 안개에 휩싸인 사람은 죽는다?
만약 내 눈에만 검은 안개가 보인다면 어떨까요. 보이기만 할 뿐이지 그 사람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그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 죽음을 보는 눈을 가졌다는 건 일종의 저주 같기도 해요. 이 소설의 주인공 천신한은 스무 살무렵 교통사고 이후에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 검은 안개를 보게 되었고, 직장 동료의 몸을 감싼 검은 안개를 보고도 아무런 경고를 해주지 못한 것 때문에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스물여섯 살 폐인이 되고 말았어요. 늘 공부 잘하던 아들, 모범생으로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던 천신한은 이제 가족의 수치로 전락해버렸어요. 주변에선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 어쩌다 방 안에 틀어박혀 부모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기생충이 되었냐며 수군대고 있어요. 남은 선택은... 죽을 결심을 하게 된 천신한은 실행에 옮기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고,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 공원에 갔다가 난생처음 본 사람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죽으려다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된 거죠. 스스로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여겼던 천신한, 그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에요.
《죽음의 로그인》은 타이완을 대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 우샤오러의 신작 장편소설이라고 하네요.
우선 이 소설은 매우 흥미롭게 사회가 지닌 문제점들을 들춰내고 있어요. 은둔형 외톨이가 된 청년 천신한을 통해 '죽음의 로그인'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아무리 메시지가 훌륭해도, 내용이 지루했다면 덮었겠지만 이 소설은 몰입감과 재미가 탁월하네요. 저자는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불청객처럼 뜬 포르노 광고를 본 뒤로 이런 종류의 범죄를 조사하게 되었고, 한국 'N번방' 사건을 접하게 되었대요. 우샤오러의 소설이 타이완에서 출간된 후 '타이완판 N번방' 사건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비밀 포럼이 적발되었고, 타이완의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저자는 고 이용마 선생님의 책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자신의 신념과 공통적인 면을 발견했다고 해요. "우리는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고 믿어야 한다." (478p) 또한 종종 한국 문학에서 귀중한 생각의 자양분을 얻고, K팝을 들으며 에너지를 충전한다면서, 우리에게 소설을 읽어야 하는 강력한 이유를 알려주고 있어요. "인간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악하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창작 활동을 통해 이런 아름다움과 추악함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는 것뿐이다." (478p) 소설 속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는 천신한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떠올렸어요. 현실이 게임이라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은 특정 유저가 버그를 악용해 불공정한 우세를 점하고 있는 거예요. 게임에서 발생하는 버그가 시스템상의 오류라면 플레이어들은 로그아웃, 새롭게 시스템 정비를 할 때까지 기다리면 돼요. 근데 현실은, 내~란 우두머리의 형사재판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우리의 사법 시스템에 심각한 버그 출현을 재확인했네요. 우리는 로그아웃 할 수도 없고, 버그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으니, 어찌 해야 될까요. 중요한 건 주인공 천신한을 통해 우리는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고, 인간이 우위를 점하면 어떻게 되는지, 반대 입장은 어떠한지'와 같은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는 거예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우리는 권력 구조를 완전히 역전시켜야 한다. 가해자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게 만들어야 한다." (477p) 라는 우샤오러 작가님의 말에 완전 공감하면서, 위기의 순간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켜낸 힘으로 버그 사태를 해결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