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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고듣고쓰고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순수미술을 전공함과 동시에 생물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SF소설을 집필하고 이를 조각으로 표현하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진 ‘오묘초‘라는 분의 글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본문에 수록된 이 분의 생각이 상대적으로 평범한 나같은 독자에게는 나름대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이 분의 스타일(?)을 간단히 언급하자면 기존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닥 아무런 비판적인 의식 없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보게 만드는 분이라고나 할까? 좀 색다른 각도에서 현실을 조망하고자 하는 분인듯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SF소설을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라 말하기가 살짝 조심스럽지만 장르의 특성상 다소 비현실적인 내용들을 종종 접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오늘 읽은 이 칼럼을 통해 SF장르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다. 처음 밑줄친 두 문장이 그 증거다.

"SF는 미래를 발굴하는 고고학이다." _미국 철학자 프레드릭 제임슨- P190
미래를 그리는 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P190
우리는 오랫동안 이렇게 믿어왔다. 생명은 개체로 존재하고, 사고는 뇌에서 이루어지며, 기억은 저장되는 정보라고. 그러나 과학은 종종 이 믿음들이 필연이 아니라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은 주입된 기억인지도 모른다.- P180
과학이 무엇을 증명했는가 보다, 그 증명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전제를 어떻게 무너트리는지가 더 흥미롭다.- P180
사람들은 종종 인간의 종말을 곧 세계의 종말로 여긴다. 그러나 인간의 부재는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 P180
기억은 정말로 하나의 정보로 뇌 속에 각인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정의해 왔을 뿐일까?- P182
만약 기억이 정보가 아니라 몸이 환경에 적응한 흔적이라면 기억은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축적된다. 그것은 데이터가 아닌 새겨진 주름에 가깝다. 지워지기보다 형태를 바꾸며 남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기억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몸이 세계와 관계 맺은 결과물에 가깝다.- P182
남미 일부 지역에 서식하는 보킬라(Boquila trifoliolata)라는 덩굴 식물 ...(중략)... 보킬라는 자신이 기대어 자라는 대상의 잎 형태를 그대로 모방한다. 자신이 감은 나무의 잎이 둥글면 둥글게, 길게 갈라져 있으면 그 결을 따라 자란다.- P183
인간에게 시각은 특정 기관의 기능이다. 그러나 보킬라에게 인식은 몸전체에 분산된 과정이다. 그렇다면 인간 이후의 지성체에게 사고와 감각 역시 하나의 중심에 모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물학적 시각과 사고는 특정기관에 집중될 수도 있고, 감각 전체로 흩어질수도 있다.- P183
지상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지성체들에게는 더 많은 가능성이 생겨난다.- P183
바다, 특히 심해는 여전히 인간이 거의 탐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지구 해양의 80퍼센트 이상이 아직 탐사되지 않은채 남아 있으며, 해양 생명체의 90퍼센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P185
미래 생명체들의 미션이 ‘극한환경에서의 생존‘이라면 심해 생명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P185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인 마리아나 해구의 바닥에 도달한 사람은 2018년까지 단 세 명(돈 월시, 자크 피카르, 제임스 캐머런)뿐이었다.- P183
관해파리는 수많은 개체가 유닛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통합된 유기체처럼 살아간다. 각 개체는 소화, 이동, 생식처럼 서로 다른 하나의 기능만을 담당한다. 각자의 기능을 단순화해 심해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연대를 통해 기능을 확대한다. 개별 생존 방식을 버렸기 때문에 생존의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가운데 전체를 통제하는 중심은 없다.- P185
환경이 극단적으로 제한되면 우리가 생명의 기본 조건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개체성과 자아 역시 일종의 사치가 된다.- P187
심해에서 살아남는 것은 스스로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극한의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기능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나‘라는 개념은 특정 환경에서만 유효한 구조일지도 모른다.- P187
형태는 언제나 조건 이후에 도착한다- P187
미래에 살아남는 존재들은 더 진보한 존재가 아니라, 수없이 변화된 조건을 먼저 통과해 온 존재들일지도 모른다고.- P189
어떤 존재를 조각으로 만든다는것은, 그 존재가 이 세계 위에 한 번은 실제로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비록 그것이 실재하지 않았던 존재일지라도, 중력 아래 놓였고, 빛을 반사했으며, 누군가의 몸 앞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그 존재는 잠시나마 현재의 일부가 된다.- P189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나에게 무대 연출이란 텍스트라는 데이터를 입력하여 배우와 조명이라는 연산 과정을 거쳐 관객이라는 결과로 도출하는 논리적인 프로세스처럼 보였다.- P194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결과의 거대한 편차를 만드는 나비효과가 무대 위에서 매일 벌어졌다.- P195
내가 믿었던 결정론적인 세계는 우주의 아주 얇은 표면에 불과했다.- P195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내가 딛고 선 땅과 그 땅을 공유하는 이들을 알아야 했다. 나는 왜 이 마을에 살고 있으며, 왜 이곳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ANT)으로 이어졌다. 라투르는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 기술, 제도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도 평등하게 연결망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P195
라이다(LiDAR) 기술 : 레이저를 쏘아 사물과의 거리를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통해 공간을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기술- P197
연극은 태생적으로 휘발되는 예술이다.- P197
뉴턴이 말했듯이, 우주는 결정되어 있는 거야.
하지만 단 한 가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어.
바로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
그것도 계획되지 않은 사람에게 끌린다는 거.
「아르카디아」 (톰 스토파드 작)- P199
결국 내가 왜 연극에 끌렸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과학도 그걸 밝혀주지는 못할 것 같다. 우주는 결정되어 있을지 모르나, 내가 연극에 끌리고 무대 위에서 누군가와 연결되는 그 찰나의 순간은 뉴턴의 공식으로도 계산되지 않는 계획되지 않은 끌림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나는 연극을 하고,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살아가는 건 아닐까?- P201
무작위해 보이지만 그 안에 엄격한 질서가 있고, 엄격한 질서 안에서 예측 불가능한 도약이 일어난다.- P201
결국 모든 원리는 같아.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과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함께 모여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되는 거니까. 이렇게 자연은 스스로를 창조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행복하다니까. 처음, 아무것도 몰랐을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P201
물방울이 불규칙하게 떨어지면 다음 물방울이 언제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잖아. 그렇게 미래는 알 수 없고, 규칙이 없어.- P202
미래의 문이 열렸다고 앞으로는 다 알 수 있을 거라는 혁명의 순간이 지금까지 몇 번은 찾아왔을거고, 앞으로도 올 거야. 그런데 그중에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다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아르카디아>- P202
나는 연출가로서 무대라는 실험실 위에 수많은 점을 찍는다. 그것이 완벽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 믿으며 시작하지만, 결국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아르카디아의 대사처럼, 그 틀리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아름답다. 규칙이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그 지점에서 비로소 연극은 스스로를 창조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P202
라이다로 기록하고 싶었던 그 수많은 포인트클라우드 데이터들도 결국은 현상의 기록일 뿐이다. 그러나 그 불완전한 기록들이 모여 과거와 현재를 잇고, 평행 세계를 상상하게 하며, 우리가 왜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 P203
과거와 지금의 내가 한 공간에서 공명하는 그 신비로운 무질서를 사랑하기로 했다.- P203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틀렸음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무대 위에는 새로운 우주가 열리기 때문이다.- P203
A4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위아래로 반을 접고 다시 좌우로 반을 접어. 짧은 쪽을 칼로 한 번 가르면 여섯 페이지의 공책이 금세 만들어지지. 산책을 나갈 때 그 공책과 연필을 들고 가. 즉흥으로 책을 만드는 놀이를 하는 거야. 산책이 끝날 즈음 손안엔 숲의 책이 들려 있어.- P207
숲 안쪽은 단지 공간의 안쪽일 뿐 아니라 숲 의식의 안쪽이기도 할까?- P208
우리는 바깥으로 나간다고 하는데, 실은 거기가 우리보다 더 큰 존재의 ‘내부‘일 수 있다는 것.- P209
왜 인간인 내가 가장 위에서, 혹은 뒤에서 전체를 보는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P210
새는 우리로 하여금 올려다보도록 한다.- P210
새가 우리보다 높은 곳을 보게 하여, 우리가 땅의 눈높이에 있다는 것을 환기한다는 사실이 무언가를 말해주는 것 같다.- P211
19세기 독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숲속의 정경(Waldszenen)>은 아홉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피아노 모음곡이다. 제목을 좀 더 쉽게 풀어본다면 숲에서 본 것, 숲의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평가들은 그 숲이 실제 숲이 아니라 당시 그가 좋아하던 소설가 E.T.A. 호프만 (E.T.A. Hoffmann)의 환상문학이나 낭만주의 시에서 영감 받은 숲이라고 설명한다. 객관적인 숲이 아니라 ‘주관적인‘ 숲, ‘환상‘의 숲이라는 얘기다. 숲 안쪽에서는 숨어서 기다리는 사냥꾼이, 호른 소리가, 피를 마시고 자란 붉은 꽃이, 예언하는 새가 등장한다. 불안하고, 긴장되고, 불가사의한 숲의 면면들이 이어진다.- P213
상상하는 것, 꿈을 꾸는 것은 인간이 대상을 이해하고 관계짓는 실제적 방식이자 현실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P213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였던 그림 형제가 채록한 많은 원형적 민담들이 바다처럼 깊고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P213
코랄(합창)- P214
예전부터 새는 여러 문화권에서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존재, 정령과 소통하는 존재로 생각되곤 했다.- P214
차원(dimension)은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의 개수이다.- P221
물리학과 수학은 0차원은 점, 1차원은 선, 2차원은 면, 3차원은 입체로 차원을 설명한다.- P221
유클리드는 "입체의 단면은 면이다. 면의 단면은 선이다. 선의 단면은 점이다"와 같이 0, 1, 2, 3차원을 정의한다. 유클리드의 차원 정의를 이용해 푸앵카레는 차원을 새롭게 정의한다. "단면이 0차원이 되는 것을 1차원, 단면이 1차원이 되는 것을 2차원, 단면이 2차원이 되는 것을 3차원, 단면이 3차원이 되는 것을 4차원이라 부른다."- P221
물리학이나 수학의 설명은 때로 다른 분야의 현상이나 본질을 설명한다. 차원은 축구의 전술흐름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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