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산당화 그늘
  • 깊은 시간으로부터
  • 헬렌 고든
  • 19,800원 (10%1,100)
  • 2023-11-22
  • : 207

작가 헬렌 고든의 책이다. 저자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언어에 대해서 생각하며 보내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문학 출판계에 종사하는 자신에게 지질학은 한눈에 봐도 매력적인 분야였다고 말한다. 책 제목인 [깊은 시간으로부터]란 말은 지질학자들의 시간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작가 존 맥피다. 맥피는 지질학에는 정말로 인문학적인 면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영국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깊은 시간은 생명의 기원과 다양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토대이며 지질학, 물리학, 천체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 개념이다. 저자에 의하면 깊은 시간이란 더 거대하고 더 이상한 규모의 시간을 의미한다. 인간의 시간이 초, 분, 시, 년으로 측정된다면 깊은 시간은 수만 년, 수백만 년, 수억 년의 시간을 다룬다. 


저자는 깊은 시간 속에서 산다는 것은 조금 다른 곳을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깊은 시간 속에서는 지난주, 작년,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일만이 아니라 100만 년 전, 5천만 년 전, 5억 년 전에 일어난 일도 중요하다. 우리가 바로 지금 이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장소에 있는 이유는 그런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의 연속으로 설명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신이 만약 백악 위에 서 있다면 한때 바다였던 곳에서 있는 셈이라 말한다. 저자는 지질학 입문서들을 읽었고, 퇴적 학자 층서학자, 고생물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발굴지와 노출된 절벽면을 조사하는 답사에 참여했고 주변과 발 아래에 있는 암석에 쓰여 있는 깊은 시간의 역사를 배웠다고 말한다. 그러니 [깊은 시간으로부터]는 배움과 대화, 탐사를 거쳐나온 책이다.


지질학자들은 암석층을 읽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과거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법을 익힌다. 각각의 층은 이전에 있었던 하나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 세계는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지다가 사라지고 그 위로 다른 암석층이 덮인다. 저자에 의하면 퇴적암은 암석의 작은 조각이나 생물의 잔해가 주로 물속에서 쌓이거나 바닷물의 증발과 같은 화학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암석이다. 17세기 덴마크의 의사 스테노는 새로운 퇴적물의 층이 점점 두껍게 쌓이려면 그것이 쌓일 수 있는 단단한 층이 이미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더 오래된 퇴적암층일수록 더 새로운 층의 아래에 놓인다는 것이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지질학이 인간 사고의 가장 독특하고 변혁적인 기여를 한다고 말했다. 본문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지질학은 물리학에서 파생된 부정확한 학문에 불과하다고 간주되었다는 내용이다. 과학의 텃세 서열에 따르면 이론 물리학자는 실험물리학자를 무시하고, 실험물리학자는 지질학자를 무시하고, 지질학자는 지리학자를 무시한다. 하지만 지질학은 본질적으로 역사적 차원이 있다는 면에서 순수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과 구분된다. 지질학적 기록은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불완전해서 그 기록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사에 적용되는 것과 비슷한 해석학적 추론이 필요하다. 


지질학은 회색 자료를 해석할 재주가 필요한 학문이다. 불완전하거나 사라졌거나 단편적인 자료의 조각들을 맞춰서 한 편의 이야기를 자아내는 능력, 상상력을 발휘해서 반쯤 있는 그림을 완성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지질학자는 기본적으로 셜록홈즈 같다. 깊은 시간에서는 모든 것이 일시적이다. 뼈는 바위가 되고, 모래는 산이 되고, 대양은 도시가 된다. 현재 우리는 간빙기에 살고 있고 그린란드의 빙상은 지표면의 상당 부분을 하얗게 덮고 있던 지난 빙기의 잔존물이다. 당시 북반구에는 두께가 킬로미터 단위에 달하는 빙하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불과 1만 년 전까지만 해도 얼음으로 덮여 있던 캐나다,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제 얼음이 녹아서 사라졌지만 그린란드에는 아직 남아 있다. 


얼음 코어는 과거의 대기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공기, 물처럼 덧없어 보이는 것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보존된다는 것이 어딘가 환상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만일 그 얼음 코어가 녹으면 50만 년 전에 내린 눈이 녹은 물을 마실 수도 있고 그 얼음 속 기포에서 방금 방출된 50만 년 된 공기를 들이킬 수도 있다. 


지질학자들에게 메카가 있다면 단연 시카 포인트일 것이다. 바위 투성이의 작은 곶인 시카 포인트는 에든버러에서 동쪽으로 63km쯤 떨어진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을 따라 넓게 자리 잡은 베릭셔 카운티의 한 절벽 아래에 있다. 1788년 제임스 허턴이 밝힌 부정합과 관련된 곳이다. 허턴은 지구의 계속적인 형성에 대한 설명은 없고 파괴에 대한 설명만 있는 과학적 통설을 접했다. 창조가 단 한 번 뿐이라는 성경의 가르침도 접했다. 만일 성경이 옳다면 모든 산은 닳아 없어져야 하고 결국에는 땅도 모두 사라져야 맞다. 그러나 허턴은 회복 과정이 있음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허턴은 도대체 어떤 힘이 풍화된 자갈과 모래알갱이들을 새로운 바위로 변모시킬 수 있었을까? 물속에서 형성된 그 암석들은 어떻게 솟아올라서 새로운 땅이 될 수 있었을까? 궁리했다.


허턴은 열(熱)에서 답을 찾았다. 허턴은 침식과 퇴적 과정이 매우 느린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제임스 허턴은 인간의 사고를 얕은 시간의 세계에서 깊은 시간의 세계로 넘어가도록 도왔다. 그의 연구는 태양계의 중심에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있다고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요하네스 케플러의 연구 만큼이나 근본적이고 중대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학설은 그의 생전에는 전혀 널리 읽히지도 않았고 이해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난해하고 산만한 문체 탓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더 허턴을 열렬히 추종하는 플레이페어조차 허턴의 글의 장황함과 모호함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현재 지구에 작동하는 과정들이 지구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는 허턴의 생각은 라이엘을 통해서 동일과정설이라고 알려지게 되었고 지질학도들 사이에서는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말로 요약되어 대대로 전해져왔다. 현재 동일과정설과 격변설 모두 어느 정도 옳은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두 학설을 결합하여 깊은 시간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을 내놓는다. 그 그림에서는 천천히 꾸준하게 일어나는 연속적인 변화 과정 속에 한 지역이나 지구 전체의 재앙을 일으키는 대이변들이 간간이 한 번씩 끼어든다. 


저자는 우리의 손바닥 아래에는 약 3천만 년의 시간이 사라져 있었다고 말한다. 실루리아기에서 데본기로 세상이 바뀌던 그 시기에는 어떤 바위도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곳에 놓여 있던 바위가 풍화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깊은 시간이라는 장부에는 보존되어 있는 것보다 소실된 것이 더 많다. 저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다이아몬드 업계에 4C가 것이 있다면 운석 경매인에게는 4S가 있다는 것이다. 4C는 cut(연마), color(색깔), clarity(투명도), carat(중량)이다. 4S는 size(크기), shape(형태), science(과학), story(이야기)다. 저자는 암석은 시간이 만든 기록이라 말한다. 연대를 결정하기 위해서 방사성 붕괴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유형의 증거는 암석뿐이라는 말을 인용한다. 


저자는 암석 1cm는 1, 000년의 시간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암석은 지구의 역사책이다. 하지만 그 책은 많은 페이지들이 사라지고, 훼손되고, 뒤집히고 순서가 바뀌어 있다. 만약 그 책을 읽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암석 유형의 변화를 고대의 기후 사건과 연결할 수 있다면 지구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궁극적으로 지질 연대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질 시대의 단위는 지구 전체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구분된다. 그런 사건들은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고 암석과 얼음에 기록을 남긴다.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가 나뉘던 시기에 일어난 지구 온난화 사건은 그린란드의 얼음 코어 속에, 공기 조성에 갑작스러운 변화로 기록되어 있다. 


페름기와 트라이아스기가 나뉘던 시기는 기온이 상승하고 정체된 대양이 산성화되고 재앙 수준의 화산활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대멸종 사건으로 인해서 해양에서는 10종 중 무려 9종의 생물이 멸종했고, 육상에서는 10종 중 7종이 사라졌다. 지구상에서 생명이 종말을 맞을 뻔 했다. 이 사건은 탄소 동위원소 비율의 변화, 화산재층, 화석 기록의 급격한 감소를 통해서 입증된다. 각각의 단위에는 고유 색깔이 있다. 지질 연대표의 맨 아래에서 오른쪽에 있는 명왕누대는 지구 표면이 액체 상태의 암석으로 덮여있던 신비스러운 시대로 색깔은 청보라색이 도는 붉은색이다. 이 표의 초기 부분, 생명이 주로 대양에 존재하던 시절인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는 회녹색과 연한 청록색 계열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홀로세를 위해서 지질학자들이 고른 색은 별 특색 없는 분홍색과 갈색이 도는 베이지색이다. 


지질 연대표의 맨 꼭대기에는 떨어진 반창고의 색깔, 칼라민 로션의 색깔, 씹다 뱉은 풍선껌의 색깔이 반듯하게 놓여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리 퀴리,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버지니아 울프, 코페르니쿠스, 붓다가 모두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 얇은 띠 아래에 있는 다른 모든 세계는 우리가 결코 직접 겪을 수 없고 오로지 흔적을 통해서만 단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 세계는 우리가 나타나기 전에 있었던 사라진 세계들이다.


판구조론이 확립되자 지질학은 꽤 그럴듯한 과학이 되었다. 당시까지 지질학은 관찰 위주였고 본질적으로 별개로 보이는 사실들을 수집하는 활동이었다. 판구조론은 지질학의 거대 이론이 되었다. 생물학의 다윈주의, 물리학의 양자역학과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지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판구조론의 발판 위에 확립되었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의 표면에는 맨틀의 최상부와 지각으로 이루어진 두께 125km의 거대한 판들이 모자이크처럼 맞물려서 움직이고 있다. 이 판들은 약 7개의 큰 판과 약 8개의 더 작은 판으로 구성된다. 판들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 것처럼 뜨겁고 무른 암석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여서 지구 전체를 돌아다니고 그 위에 얹힌 대륙과 해양도 함께 운반한다. 판의 경계가 만나는 곳에서는 두 판이 서로 벌어지기도 하고 한판이 다른 판 아래로 파고들기도 하고 슬로 모션으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처럼 두 판이 충돌하기도 한다. 


판이 부딪히면 땅이 구겨진 보닛처럼 휘어지면서 높고 낮은 산맥이 만들어진다. 때로는 한 판이 다른 판의 아래를 파고들어 빨갛고 뜨거운 맨틀로 내려가고 맨 틀에서는 암석이 녹아서 재활용된다. 판과 판 사이의 이런 상호작용은 땅의 형태에서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땅이 변하는 방식,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 지구상의 동식물 분포에 이르기까지 우리 세계가 왜 이런지를 설명해준다. 많은 판의 경계는 물속에 있고 지표면에서 뚜렷한 흔적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매우 드물다. 그런 장소 중 한 곳이 북아메리카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샌앤드레이어스 단층이다. 밤낮 없이, 천천히 깊은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판의 움직임은 단층을 통해서 슬며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단층은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암석에 응력과 변형이 축적될 때 만들어진다. 암석은 움직이는 판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아 휘어지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단층 파열이 일어나면 격렬하게 부서진다. 우리는 이것을 지진이라고 부른다. 샌앤드레이어스 단층에 항상 지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이 특별한 판의 경계 근처에서 살아가면서 감수해야 하는 결과 중 하나다. GPS 덕분에 우리는 이제 판의 경계에서뿐 아니라 판의 내부에서도 암석의 변형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안다. 일부 과학자들은 판의 충돌로 인해 암석들이 부서지면서 방출된 중요한 영양소들이 캄브리아기 대폭발 같은 생물 진화의 주요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약 5억 4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났을 때에는 오늘날과 같은 생명체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의 오브리 저클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판 구조가 필요하다는 점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맨틀과 지각 사이에서 물질을 재활용할 방법이 없다면 탄소, 질소, 인, 산소처럼 생명의 중요한 원소들이 암석에 갇힌 채로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판구조라는 컨베이어 벨트는 탄소를 많이 포함한 암석을 맨틀 속으로 끌어당겨 녹임으로써 해로운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쌓이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판 구조의 도움으로 우리가 숨을 쉬는 셈이다.(111 페이지) 


1800년대 초 윌리엄 스미스는 최초의 지질도를 만들었다. 암석의 연대와 쌓인 방식 등을 기록했다.(135 페이지) 스미스의 지도는 산업혁명 동안 영국의 과학과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그 지도는 공장의 동력이 될 석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암석과 점토를 어디에서 캐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또한 납과 주석, 구리 광산이 있을 만한 곳, 수로와 철도를 가장 쉽게 놓을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지도 나와 있었다. 사암, 석회암 등은 연암(軟巖)이고 화강암, 현무암 등은 경암(硬巖)이다. 방해석은 변성암인 대리암 만큼 단단하지만 연암 지질학에 속한다. 오늘날 백악(白堊)이 발견되는 지역의 물에는 코콜리스(cocolith)라고 하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크기의 유기체 잔해'가 가득하다.


백악은 영국 남부 해안에서 영국 해협 아래로 내려갔다가 또다른 해안 절벽으로 다시 나타난다. 프랑스인들은 코트달바르트(설화석고 해안)라고 하고 영국인들은 별로 입에 올리지 않는 이 하얀 절벽은 모네, 피카소,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많이 남아 있다.(142 페이지) 본문에 나오는 여러 암석 가운데 백악과 플린트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캄피 플레그레이(Campi Flegrei)는 불타는 들판이란 의미의 말로 칼데라를 지칭한다. 화산이 분화한 뒤 분화구가 무너져 내리면서 만들어진 거대 그릇 형태의 지형이다. 복합 화산이 분출이 일어나는 위치가 화산 꼭대기인지 옆면인지를 알 수 있다면 칼데라에서는 대단히 다양한 위치에서 분출이 일어날 수 있다.(156 페이지) 


화산이란 지표면 아래의 끊임없는 교란이 격렬한 방식으로 지표에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판구조의 움직임이 캄피 플레그레이를 만들었다. 깊은 시간의 판구조 운동 과정이 인간의 시간 속에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157 페이지) 화산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오늘날 지표면에서 활동하고 분출하는 현대의 화산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화산들은 관찰과 측정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깊은 시간 동안 지구의 어디에서 어떻게 화산이 폭발했는지 알기 위해서 암석 기록을 조사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화산학 더 일반적으로는 지질학에 변화가 일어났다. 거의 순수하게 관찰 위주의 과학이었던 지질학은 그 무렵 수학적 규칙을 찾고 모형을 만드는 더 정량적인 학문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분출은 지구의 지각이 늘어나고 파열될 때 일어난다. 마그마는 지표 쪽으로 이동하고 마그마가 들어갈 공간이 생기려면 지각은 팽창해야 한다. 고무줄을 상상해보자. 고무줄은 어느 정도까지는 잡아당길 수 있지만 어떤 한도를 넘으면 끊어진다. 지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지각이 끊어지면 분출이 발생할 것이다.(168 페이지) 화산재는 보기에는 밀가루 같지만 기본적으로 암석이기 때문에 잘 털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기계나 전기 장치 속으로도 들어가고 화산재가 많을 때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다. 용암은 일반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물론 예외는 있다. 따라서 우리는 뛰어서 도망갈 수 있고 심지어 걸어서도 용암을 피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용암류가 마을과 항구를 피해서 흐르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반면 화산쇄설류가 특정 방향으로 흐르도록 유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화산쇄설류는 섭씨 200~700도의 뜨거운 기체와 암석 입자가 시속 96km에 달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그야말로 매우 위험한 흐름이다. 이보다 암석이 조금 더 적고 기체가 조금 더 많으면 화쇄난류라고 부른다. 무르고 짙은 색을 띠는 라임 레지스의 절벽은 쥐라기에 형성된 블루 리아스라는 지층의 일부이다. 연한 회색의 갈비뼈 같은 석회암층과 두툼한 청회색 셰일 덩어리가 번갈아가며 쌓여 있는 절벽은 조악한 화질의 초음파 영상처럼 보였다. 서로 다른 두 층이 쌓였다는 것은 이 쥐라기의 바다가 탁한 진흙탕(셰일층)에서 맑고 따뜻한 얕은 바다(석회암층)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생물체가 죽으면 그 몸은 해체되고 다른 생명체나 부패 과정에 의해 분해된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는 화석화가 일어나고 몸의 일부분인 껍데기나 뼈 같은 단단한 부위가 광물로 치환된다.유기물은 무기물로 바뀌고 뼈는 암석이 된다. 극히 일부의 생명체만이 화석이 된다. 그 확률은 엄청나게 희박하다. 한 종이 대략 200-500만 년 동안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현생누대 5억 년간 나타났다가 사라진 후생동물은 약 10억 종에 달한다. 그 중에서 기재되고 명명된 것은 30만 종에 불과하다. 1000분의 1이 안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몸이 연해서 화석화될 가능성이 낮고 어떤 동물은 단순히 수 자체가 적었다. 육상의 고지대에서는 침식이 잘 일어나기 때문에 한때 그곳에 살았던 동식물의 흔적이 잘 남지 않는다. 


심해저에 기록된 것은 섭입에 의해서 지워진다. 하나의 생물이 화석이 되고 그 화석이 인간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통계적으로 있음직하지 않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야 한다. 우선 몸이 온전한 상태로 죽어야 한다. 유난히 강한 폭풍처럼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서 충분히 두꺼운 퇴적층에 그 온전한 몸이 빨리 덮여야 하고 그 퇴적층이 암석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퇴적암에 지하 깊은 곳의 열과 압력이 가해져서 심한 변형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 그런 다음 지표로 올라와서 그 생물이 죽고 수백만 년쯤 흐른 뒤에 다시 빛을 보아야 한다. 이 마지막 단계는 화석 채집가들이 자주 출몰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일어나야 하고 깊은 시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좁디좁은 구간 동안에 벌어져야 한다.(194, 195 페이지) 화석은 깊은 시간 속에 살았던 과거의 생물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증거, 과거의 정경을 가장 잘 떠오르게 하는 증거이다. 


과거의 풍경을 암석을 통해서 추론해야 하는 곳에서 화석은 즉각적으로 만지고 조사하고 경험할 수 있는 실체이다. 저자는 화석 기록이 예전에 우리 행성에 살았던 생물의 세세한 모습을 극히 일부만 보여주듯이 역사적 기록도 극히 불완전하다고 말한다.(200 페이지)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공부하던 한 연구자는 "나는 데본기를 보면서 이 시기에 식물에서 또 다른 대폭발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아무런 개념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시기에 세상은 매우 단순한 식물이 있던 곳에서 거대한 숲이 있는 곳으로 바뀌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구 역사에서 데본기는 이 세상이 처음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시기다. 이 시기에는 처음에는 식물이, 그다음에는 동물이 물에서 뭍으로 대규모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헐벗은 채였던 바위에는 초록이 드넓게 덧입혀졌고 오래전에 사라진 늪과 해안의 부드러운 진흙에는 최초의 발자국들이 찍혔다. 공룡 뼈와 달리 식물 화석은 3차원적으로 보존되는 경우가 드물다. 대개 탄소로 이루어진 섬세한 검은색 선으로 된 식물 화석은 암석 속에 납작하게 눌려 있어서 암석에서 분리하기가 불가능하다. 


공룡 멸망에 대한 가설 중 공룡이 운석 충돌 이전부터 쇠퇴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있다. 과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백악기 말에 해수면의 높이가 낮아지면서 생긴 서식지의 변화 때문에 공룡 집단 사이에 다양성이 부족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동물 집단은 다양성이 낮을수록 열정이 더 취약해진다.(241, 242 페이지) 대리암 석판과 기둥을 통해서 우리는 수만 년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밝은 색의 광맥은 원래는 석회암이었던 암석의 틈새로 특이한 광물을 잔뜩 머금은 뜨거운 열수가 스며든 자리이다. 대리암의 기질 속에 들어 있는 각양각색의 결정들은 그 암석의 어두운 지하의 열과 압력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고 변성되면서 수천 년을 보냈다는 증거이다. 암석에 새겨진 깊은 시간 내 친필 서명인 셈이다.(270 페이지) 


존 에릭 로빈슨(John Eric Robinson; 1929- 2025)는 도시지질학(Urban Geology)의 개척자이다. 화성암인 화강암의 조리에 들어가는 기본 재료는 장석, 석영, 운모이다. 런던의 도로 연석(緣石)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광을 내면 화강암은 갖가지 색을 띤다. 워털루 옆 바닥의 콘월(Cornwall) 화강암은 오트밀 색이, 블랙 프라이어스 다리 북단에 있는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 좌대를 이루는 에버딘셔의 피터헤드(Peterhead) 화강암은 1970년대 요리 책에 실린 아스픽처럼 짙은 빨간색과 연어 색이 돈다.


캄피 플레이그레이 칼데라를 만든 화산분출 사건인 캄파니아절 응회암 대분출로 인해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지역 고유의 암석인 피페르노가 만들어졌다. 밝은 회색의 화산재가 압축되어 형성된 피페르노 속에는 스코리아(화산에서 튀어나온 현무암질 용암) 또는 피아메라고 알려진 검고 납작한 조각들이 섞여 있다. 단단하고 무거운 피페르노는 가끔은 건물의 외장재로 쓰여서 나폴리의 제수누오보 성당의 으스스하고 요새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웅장한 정문이나 장식용으로 이용된다. 이 돌은 때로 어떤 방향으로 잘렸는지에 따라서 작고 검은 불꽃들처럼 건물 표면에서 깜빡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기체에 의한 지층의 교란을 의미하는 생물 교란(bioturbation)이라는 말은 흥미롭다. 생물이라는 단어와 섭동(攝動)의 영어 표현인 퍼터베이션(perturbation)을 통합한 단어로 보인다. 저자는 인류세 개념은 인간을 다시 세상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 것이라 말한다. 수백 년 동안 우리의 자리라고 믿은 바로 그 자리로 말이다. 그리고 그 대가가 비록 환경 재앙이라고 해도 우리는 어느 정도는 그런 생각에 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297 페이지) 그러나 나는 중심이 뭐 그렇게 대단한가? 묻고 싶다. 더욱 부정적인 중심임에랴. 


본문에 나오는 생명의 대폭발로 유명한 캄브리아기는 생명이 보이는 시기를 의미하는 현생누대(顯生累代)의 첫 시기다. 물론 이는 화석이 남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저자는 영국을 남동에서 북서로 잇는 즉 이스트앵글리아에서 하일랜드 서부로 이어지는 대각선을 따라서 이동한다면 쌓인 지 얼마 안 되는 이스트앵글리아의 제4기 퇴적층에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해서 런던 분지의 고제3기 점토, 노스다운스의 백악기 상부 백악, 코츠월드의 쥐라기 어란석, 페나인 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트라이아스기의 사암, 레이크 지방의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 암석들, 그램피언스 산맥의 캄브리아기 노두를 거쳐서 하일랜드 북서부와 헤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가장 오래된 암석들에 이른다고 말한다.(327 페이지) 


[깊은 시간으로부터]는 문학인인 저자가 여러 “대단히 박식하고 너그러운” 전문가들이 시간을 내어 유익한 안내를 해주어서 나온 책이지만 지질학 비전공자가 쓴 책임을 감안하면 놀랍다. 다만 마지막 문장에 언급한 영국을 남동에서 북서로 잇는 대각선 경로에 대해 더 상세하게 풀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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