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다녀온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여행기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일본근대문학 사조들 가운데 낭만주의 혹은 여유파 작가로 분류되는 모리 오가이는 도쿄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의 군의총감을 지낸 의사라는 점이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모리 오가이는 이와미(岩見) 지방의 쓰와노(津和野)번에서 번주의 시의를 지내던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통적인 가풍에서 엄격하면서도 각별한 배려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따로 도쿄로 온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도쿄의학교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육군 군의부에 들어가 군의관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입신출세와 가문의 번영을 일구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됴쿄의학부에서 보내주는 국비유학생 자격을 얻지 못했던 그는 결국 육군성 파견 유학생으로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에서 4년 공부했습니다.
그의 단편집 『아베 일족』에는 「아베 일족」, 「무희」, 「기러기」, 「다카세부네」 등 네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무희」와 「기러기」는 그의 경험에서 얻은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것이고, 「아베 일족」과 「다카세부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기러기」는 도쿄의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들은 일을 소설로 꾸민 것입니다. 화자의 친구인 오카다는 칸트처럼 하루 일과가 정확한데, 매일 정확한 시간에 산책을 나가는 오카다는 무엔자카에 사는 여인 오타마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오타마는 시나브로 순경의 첩으로 지내다가 본처가 쫓아와 난리를 치는 바람에 홀로되었던 것인데, 학교 기숙사에서 사환을 지내면서 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기 시작하면서 고리대금업에 눈을 뜬 스에조가 웬만큼 먹고 살만하자 오타마를 첩으로 들이게 되었습니다.
스에조의 첩으로 지내게 된 오타마는 세월이 흐르면서 무료함을 느끼게 되면서 집 앞을 지나는 오카다에게 눈길을 주게 되지만, 연을 맺을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지내던 중입니다. 오타마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결심한 날 오카다는 화자와 함께 산책에 나섰고, 호숫가에서 이시하라가 권하는 대로 호수에서 놀고 있는 기러기를 돌팔매질로 맞추어 잡게 되었습니다. 기러기를 요리하여 술을 마시던 중 오타마는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오타마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오카다와 이별을 하게 된 셈입니다. 우연히 던진 돌팔매에 맞아 죽고 만 기러기처럼 말입니다.
「무희」는 기러기보다 뒷날의 이야기입니다. 꿈꾸던 독일 유학에 나선 오타가 베를린에서 만난 유학생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데, 아마도 모리 오가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가난한 무희 엘리스를 만나 도움을 준 인연으로 동거를 시작하고 임신시키지만, 이런 사연이 유학생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본국에서의 지원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베를린 주재 특파원으로 일하던 중에 친구가 상관을 모시고 베를린에 오면서 통번역을 부탁하게 되는데, 이렇게 만난 상관은 그의 능력과 성실함에 매료되어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권하였고, 결국은 엘리스를 버리고 귀국길에 오르는 선택을 했고, 엘리스는 실성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리 오가이가는 「무희」를 통하여 일본 전통의 가문과 공명심을 쫓는 자아를 버리고 서구 방식의 자유를 즐기면서 깨닫게 된 개인을 위한 자아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 것 같습니다. 모이 오가이 역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을 때 독일에서 찾아온 엘리제를 돌려보냈고, 해군중장은 야카마쓰 노리요시 남작의 장녀 도시코와 결혼을 했다가 「무희」를 발표하면서 이혼했다고 합니다.
「아베 일족」은 봉건시대의 무사도 정신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군이 죽을 때 순사를 허락받지 못한 무사가 주변의 따가운 눈길에 순사를 결심하지만 새 주군은 주변인물의 간계에 넘어가 남은 가족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남은 가족들이 불편한 심사를 표출한 것으로 두고 군사를 보내 가문을 몰살시킨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쇼군의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탓에 벌어진 일로 막부시대의 인사관리체계가 주먹구구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군의 명을 받은 자가 아닌 삼자의 개입을 금하는 전통을 깨고서, 새 주군이 토벌군을 보내던 날 이웃에 살던 친구가 아베가문에 난입하여 친구와 대결을 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입니다.
역시 역사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다케세부네」의 경우에 자결한 동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손을 쓴 남자가 살인의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다카세부테는 교토에서 죄인을 호송하는 배를 이른다고 합니다.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는 기스케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 같습니다.
모리 오가이는 메이지 유신을 몸소 겪은 세대로 서구문명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전통과는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주로 다루었다고 합니다. 그는 적극적이지는 못했지만 문학을 통해 관료주의와 절대권력을 비판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문학은 자아를 실현하는 공간이었고, 현실의 모순으로부터의 탈출구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