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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굳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가 있다. '긁어 부스럼'이라고나 할까. 안 해도 될 일을 공연히 나서서 시작하는 바람에 없던 화를 자초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는 경우. 우리는 그럴 때 일을 시작하기 전 상태로 되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미 시작된 일이라 섣불리 발을 뺄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을까, 후회가 막심하지만 살다 보면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경우는 너무나 흔해서 나도 모르게 제 머리를 쥐어박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히 둘로 나누어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하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각박할 것이며, 또 얼마나 재미가 없을 것인가. 그랬더라면 아마도 예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만 예를 들어보더라도 모든 소설의 출발은 주인공의 비이성적인 실수 혹은 우연으로 빚어진 실패에 의해 꾸려지는, 평범하지 않은 삶이 소재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는 결실도 비이성적인 행동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 까닭에 예술의 흔한 소재인 사랑은 삶의 우연인 동시에 예술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시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공연히 저질러서 얻게 되는 실패담 혹은 그에 대한 후회나 아쉬운 감정을 읊는 것이 대부분이고, 자주 읽히는 산문 역시 우연으로 빚어진 여러 에피소드의 집합일 뿐이다. 인간의 삶이란 본디 8할의 '긁어 부스럼'인데 100%의 완벽함 혹은 100%의 이성적 행동을 요구하는 자기계발서를 따라 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이란 다분히 운에 의해 이루어진 바람직한 결과라고 이해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다만 내가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에 연루되어 시간적으로 혹은 금전적으로 약간의 손해를 보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 일은 하지 말라는 말씀.


그러나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직접 경험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 실패든 성공이든 경험 자체가 소멸하는 것이다. 크리스틴 로젠이 쓴 <경험의 멸종(The Extinction of Experience)>은 이와 같은 세계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


"인간의 미덕을 되찾고 가장 뿌리 깊은 인간의 경험을 멸종의 위기에서 구하려면 기술 예찬론자들이 제안하는 극단적인 변혁 프로젝트에 기꺼이 한계를 두어야 한다. 혁신을 억압하는 수단으로써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한계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육신이 있는, 기발하고 모순적이며 회복력 있고 창의적인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p330~p.331)


날씨가 무덥다. 이러한 '무덥다'는 느낌도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어느 순간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체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직접 체험이 가능한 현실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만남은 오직 SNS를 통한 간접적인 것에 그칠 뿐 얼굴을 맞대고 앉아 종일 수다를 떨거나 오늘처럼 무더운 날에 기꺼이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는 일은 우리의 경험 체계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세상이 오면 예술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역시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직접 경험이 없는 인간에게 어떤 쇼킹한 장면이나 사건도 별 감흥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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