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예년에 비해 날씨가 짓궂었던 탓인지 피는 꽃들이 비실비실 생기가 없고, 언제 피었다 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금세 지고 만다. 그런 느낌이 든다. 봄의 절정을 알리는 벚꽃의 개화기에도 한두 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미처 감상할 새도 없이 서둘러 지고 말았고, 아카시아 꽃이 만개한 요즘에도 잊을 만하면 비가 내려서 버선발 같은 꽃잎이 하얗게 쏟아지는가 하면 더러는 줄기째 떨어지기도 하여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게다가 화려한 자태를 오랫동안 뽐내던 철쭉과 영산홍도 올해는 그 기한이 어찌나 짧던지 지금은 메마른 꽃잎만 겨우 매달고 있다.
오늘도 아침부터 흐렸던 하늘에선 간간이 비가 내렸고, 주말의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우르릉 쾅!' 벼락이 치기도 했다. 그나저나 대선이 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재명 후보의 워낙 일방적인 우세 탓인지 선거 분위기는 과열되거나 격화되지 않고, 그저 차분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란을 주도했던 정당이 해산도 되지 않은 채 다시 또 후보를 낸다는 것도 지극히 비정상적인데, 그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미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더구나 내란 우두머리였던 자가 지금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그가 속한 정당에서도 그를 내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다들 미쳐 돌아가는구나' 싶은 것이다.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고 있다. 얼마 전에 구입한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을 아직 들춰보지도 않은 채 작가의 산문집을 인근 도서관에서 빌렸다. 나는 종종 이런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다. 그러다 보니 구입한 책은 그 순서가 마냥 뒤로 밀려서 숫제 읽지도 않은 채 책꽂이에 꽂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나의 변명은 이렇다. 책을 구입할 당시에는 바로 읽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에 가 보면 읽고 싶은 책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몇 권의 책을 덥석 빌린다. 구매한 책은 반납 기일이 없지만, 대여한 책은 언제나 기일이 정해져 있는 까닭에 대여한 책을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 구매한 책은 결국 순서에서 밀리고 밀리다 때론 잊히기도 하고, 구입한 지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겨우 읽히기도 한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된다.
"오늘 아침 창밖엔 사늘한 빛이 설핏하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전기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인다. 집 안 여기저기에 놓인 사물들에는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밤새 차가워진 공기를 데우기 위해 전기난로를 켜고 식탁 겸 책상에 앉아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신다. 조금 있으면 소란을 떨며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부드럽게 게을러도 괜찮은 겨울의 끄트머리다." (p.193)
백수린 작가의 글은 따뜻하다. 소설에서나 산문집에서나 작가의 부드러운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신의 글에 자신이 지닌 본래의 성품을 담는다는 건 삶 자체가 그렇다는 뜻이다. 자신의 글과 삶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글이 추구하는 방향에 배치되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작가의 인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