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시시하다'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시시하다. 시시하다. 시시하다.' 이렇게 몇 번을 되뇌다 보면 멋진 시구가 술술 풀려나올 것만 같고, 세상 심각하게만 여겨지던 일도 '그까짓 거' 하면서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은 만트라도 없을 성싶지만 어떤 종교도 '시시하다'는 말을 경전에 넣을 리는 만무할 터, 나는 이 말을 바지 뒷주머니에 허술하게 찔러 넣었다가 언제든 필요할 때면 용돈처럼 꺼내 쓰곤 한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어느 명사의 연설을 들을 때도 나는 '시시하다'는 말을 입속에서 굴리며 엄숙한 시간을 이겨내곤 한다. '시시하다'는 말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몇 번을 굴리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눈 쌓인 경사면을 내려오는 어느 개구쟁이의 눈썰매처럼 빠르게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바라보고 마주치는 모든 순간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사소한 사건도 중요해질 것이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될 거예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지 마세요. 방법을 알려드렸으니, 그냥 하시면 됩니다. 그럼 정말 그렇게 될 거예요." ('마지막 순간' 중에서)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과거 어느 시기에 나는 포토 에세이에 한동안 빠져 지냈다. 변종모나 이병률 등 이 분야의 대표적인 작가뿐만 아니라 사진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행 에세이도 무작정 사서 읽었다.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풍광의 사진과 그 한 켠을 차지하는 달큰한 글귀가 메말라가는 감성을 자극하곤 했다. 팍팍하고 메마른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작은 도피처를 제공하고 때로는 깊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삶의 한 시기가 훌쩍 지나고 나는 한동안 포토 에세이와 담을 쌓은 채 살았다. 일부러 피했던 건 아니다. 책에도 유행이 있는지 이상하게도 그 많던 포토 에세이가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윤두열의 포토 에세이 <우리는 모두 아름답게 사라지는 거야>가 반가웠던 건 과거의 기억이 아련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강으로 향하는 길에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면서, 오늘 노을은 좀 아쉽다고 말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이토록 멋지고 완벽한 곡선을 만났으니까. 우리의 삶과 인생은 때때로 이런 선물을 받는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줄기에 옷과 양말이 젖어도 기쁘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연을 여러 번 겹치고 포개어 인연으로 만드는 일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 중에서)
사진이 주는 감성은 여러 갈래로 뻗어간다. 힘들고 외로웠던 기억으로 이끌기도 하고, 세상 모든 것을 손에 쥔 듯한 벅차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이끌기도 한다. 한 페이지를 넘겼을 때 십수 년 전으로 회귀하게도 하고, 오지 않은 먼 미래를 꿈꾸게도 한다. 말하자면 포토 에세이는 독자의 나이와 감정을 제멋대로 휘저어놓는다. 윤두열의 에세이 <우리는 모두 아름답게 사라지는 거야>를 읽는 동안 나는 사진에는 없는 쨍한 추위와 휘몰아치는 바람과 꿈꾸는 듯한 햇살과 침잠하는 어둠을 읽었다. 나의 시선은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오래 머물고, 끝없이 서성였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을 꿈꾸고, 부족함을 채우려는 부지런한 사람들 사이에 자꾸 나를 데려다 놓는다. 바쁘고 싶지 않은데, 바빠야 잘 산다는 착각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지내고는 있지만 충전이 없으면 방전은 당연하다는 것을 깨닫는 밤. 비록 성과는 없을지라도 성취는 있길 바라면서." ('성취' 중에서)
발 디딜 틈 없는 만원 지하철에서 내린 젊은이의 축 처진 어깨를 볼 때마다 나는 '시시하다'라는 말을 달빛 뒷면에 큼지막하게 써서 용돈 대신 그의 뒷주머니에 찔러 주고 싶은 심정이다. 자신의 반지하 자취방 좁은 창문으로 스며드는 여린 달빛에 기대어 '시시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사는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까. 낡은 출근 가방에 챙겨 넣을 서류 뭉치와 함께 달빛에 딸려 온 작은 용기도 그곳에 잘 갈무리하면 내일 아침 출근길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시시하다. 시시하다.' 주문처럼 몇 번 되뇌다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