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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 욥기와 만나다
  • 마크 래리모어
  • 15,300원 (10%850)
  • 2021-11-03
  • : 887

최근에 이끌고 있는 성경읽기 모임에서 욥기를 읽을 차례가 되었다. 워낙에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하고 해서, 관련 책을 한 권 읽어보기로 결심하고 눈에 띤 게 이 책이었다. 만나다 시리즈로 계속 무게감 있는 책들을 내오고 있는 비아의 책이다.


사실 이 시리즈가 다분히 비평적 관점으로 진행된 연구를 주로 담고 있는지라, 종종 선을 넘기도 한다는 느낌을 주기도하는 데, 사실 그런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와는 별개로 연구의 결과물 자체를 역사적인 연구사로 본다면 읽어볼 만은 하다.


시리즈마다 약간 강조점이 다르긴 한데, 해석사를 차분하게 설명해 가는데 중점을 둔 책이 있는가 하면, 특정한 신학(대개 고등비평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해당 성경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둔 책도 있다. 이 책은 전자 쪽에 가깝다. 조금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서론에서 간략히 이 복잡하고 해석이 어려운 책을 둘러싼 오랜 의견 충돌을 언급한 저자는, 곧 고대의 해석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로 넘어간다. 흥미로운 건 고대에는 욥기의 내용과 비슷한 “욥의 유언”이라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점. 당연히 욥기의 내용과 다른 점도 있었는데, 주인공의 이름은 “요밥”으로 이집트의 왕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오래 전 유대교와 기독교 학자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욥기를 바라보았는데, 욥기에 내재한 난해함을 넘어서는 “진정한 의미”가 있으며, 이를 찾기 위한 영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것. 크게 보면 이런 이해는 종교개혁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중세에는 교회에서 욥기의 일부를 성무일도서에 넣어 정기적으로 낭독하기도 했고, 그와는 별개로 민간에서도 욥에 관한 이야기는 또 널리 사랑받았는데, 욥은 나병 환자와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환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욥의 인내”라는 이름의 대중공연까지 만들어져 오랫동안 수없이 무대에 올려졌다고.





계몽주의의 망치질이 모든 것을 깨부수던 근대에는 다시 한 번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인간이 그분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묻었다면,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정말로 활동하기는 하는지, 그리고 활동한다고 해도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물었다. 욥기는 다시 한 번 난해하고, 불가해한 책으로, 인간은 신의 눈치를 보거나 호의를 기대하지 말고 이성과 자유를 지닌 존재로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재정의된 시기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욥기는 조각조각 찢긴다. 이른바 성서비평의 영향력으로 특별히 구약성경은 최소 서넛에서 때로 수십 명의 저자들이 쓴 책으로, 아니 그냥 그런 문서들을 얼기설기 긁어모은 스크랩북 정도로 평가 절하된다. 무신론의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욥기를 읽어냈고, 이제 욥기는 우정의 실패를, 나아가 하나님의 실패를 묘사하는 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 매우 실용적으로 욥기를 읽어내는 사람들도 있고.



한 권의 책에 관한 방대한 해석사를 읽는 것은 (그 책에 애정을 갖고 있기만 하다면) 꽤나 흥분되는 일이다. 책은 이 역사를 종으로 횡단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작 욥기의 내용에 관한 상세한 분석 같은 건 부족했다는(물론 대략적인 뉘앙스은 언급되지만) 점. 물론 그건 책의 방향성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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