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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 귀족 시대
  • 임승휘
  • 17,820원 (10%990)
  • 2024-12-13
  • : 1,961

민주주의는 특권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잘났든 못났든, 키가 크던지, 얼굴이 못생겼는지, 정치의식이 바르든지, 아니면 왜곡되고 심지어 삐뚤어진 사고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모두가 한 표씩 행사하는 제도니까. 물론 사실 엄밀히 말하면 모두에게 한 표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법률에 따라 선거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으니.(주로 범죄관련)


하지만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는 이런 종류의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특별한 계급, 나면서부터(이점에서는 시대에 따라 다른 관점들이 좀 있지만) 평민들과는 다른 이른바 고귀한 계급이 있다고 생각했다(적어도 그런 척 했다). 바로 귀족이다. 이 책은 유럽의 귀족에 관한 다양한 상식들을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책이다.





1부는 가볍게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흥미를 돋우고, 2부에서는 귀족들의 일상을, 3부에서는 유명한 귀족들의 이야기를 몇몇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놓는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4부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전반적으로 교양역사서라고 할 만한 구성 가운데서 그나마 조금은 학술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부분이다. 어떻게 귀족이 되고, 귀족이 된 후에 했던 일은 무엇인지 같은 내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 그들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피를 따로 타고났겠는가. 오히려 그렇기에 블루 블러드니 프랑크족 전사의 혈통이니 하는 것들에 집착을 하고, 엄청난 양과 진기한 향신료를 들이부은 음식을 준비해 파티를 열고, “수준”을 맞추기 위해 과시적이고 소비적인 삶을 살고 하는 것들은 그런 허구를 둘러싸서 깨지지 않게 하려는 포장재였던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그 안에는 단순히 허위의식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가치들, 이를테면 명예와 충성,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책임감과 자선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까지 함께 내다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우리 시대의 문제는 다분히 왜곡된 겉치레를 버리면서 그 안의 선한 가치들마저 무시하는 데 있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외피가 이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귀족”들이 민주사회 안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귀족의 특권이라는 건 국가의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받고, 범죄를 저질러도 종종 무마되거나 가벼운 처벌로 넘어가고, 자기들만의 혼맥과 학맥을 통해 특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계급을 공고화 한다는 부분일 것이다. 우린 이런 무리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 귀족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혈통에 따라 전통적으로 귀족으로 인정되었던 이른바 대검귀족이고, 다른 하나는 국왕의 임명으로 주로 법관이 됨으로써 귀족계급의 문 안으로 들어갔던 법복귀족이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얼마 안 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소수의 친일파들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 국민이 노예화되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대검귀족에 해당되는 신분은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이제 그 자리를 막강한 권력을 지닌 새로운 법복귀족들이 차지한 것 같다.


당연히 이런 존재는 민주공화정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요소들인데, 이들을 해체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제 혈통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자본에 기반해 그들의 권력은 점점 더 공고해져만 가는 것 같다. 중세의 귀족 이야기야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겠지만, 우리 시대의 귀족들의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넘어갈 수 없으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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