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에게 돌리는 것이 음악계 전반의 공통된 분위기입니다. 에마누엘 바흐가 새로이실험한 소나타라는 형식이 후대에 가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손에 의해 공고하게 굳어졌다는 게 정설입니다. 베토벤은 소나타 형식이라는 개념을 확장하는 데 자신의 천재성을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슈만과 브람스는 비록 선배의 족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소나타라는 형식적 틀의 의미를 확장한 공이 적지 않습니다.- P237
모든 소나타 알레그로 악장은 시대를 불문하고 제시부-발전부-재현부라는 3부의 얼개만큼은 올곧게 유지합니다. 제시부는 다양한 음악적요소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 만약 제시부가 담고 있는 음악의 내실이 보잘것없다면 발전부가 써먹을 소재 또한 빈약하다는 뜻이될 테니까요.- P242
소나타 형식은 제대로 이해하자면 본디 심리적이고 극적인 형식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둘 이상의 상이한 요소가 공존하는 제시부만 하더라도 주제끼리 서로 우열을 다투는 몸부림의 느낌, 드라마의 느낌이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발전부는 작곡가의 창조력, 상상력이 도전받는 시험 무대와 같은 영역입니다. 심지어는곡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일반인을 가르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발전부를 다루는 솜씨라고까지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극한 표현도 아닙니다. 들어줄 만한 가락을 뚝딱 지어내어 휘파람 부는 정도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선율을 가지고 멋진 발전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작곡가가 가진 기술과 솜씨가 없다면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니까요.- P245
교향곡의 선조는 초창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서곡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신포니아‘라고 부른이 서곡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1660-1725)의손에 의해 완벽한 형태로 다듬어졌습니다. 빠름-느림-빠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서곡은 곧 고전시대 교향곡의 세 개 악장이 취하는 전형적인템포로 이어졌습니다. 1750년을 전후하여 신포니아는 모태인 오페라에서 떨어져 나와 콘서트홀로 진입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P255
그리하여 저 유명한 아홉 곡의 베토벤 교향곡이 걸어야 할 길이 펼쳐졌습니다. 이제 교향곡은 그 근원이 되었던 오페라와의 연결 고리를모두 저버리게 됩니다. 형식은 확장되었고, 담아내는 감정의 진폭도 넓어졌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그때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방식으로 포효했습니다. 베토벤은 오로지 자신만이 부려낼 수 있는 거인을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P257
20세기 들어 진정한 자유 형식에 대한 작곡가들의 관심에 다시 불이 지펴진 것은 드뷔시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드뷔시는 고도로 개성적인시각을 가지고 짤막한 형식을 다뤄냈습니다. 알려진 과거의 모델에 조금도 기대지 않고 지어낸 곡이 스물네 편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전주곡집>입니다. 스물네 곡 각각이 저마다의 독자적인 형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곡은 곧 작곡가가 창조적인 형식에 관해 고민한 결과물이었지요. 따라서 드뷔시가 평생에 걸쳐 발표한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게 이해가 됩니다- P269
표제음악이라 할지라도 오로지 자기두 발만으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음악을 들어도 거기서 얻는 즐거움이 반감되지 않을 테니까요. 환언하면, 이야기는 덧붙은 흥밋거리 이상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은 설령 우리가 그 제목을 모른다 할지라도 차이콥스키의 걸작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P274
교향시를 고안해낸 공로는 보통 리스트의 몫으로 돌립니다. 그가 쓴교향시는 모두 열세 곡이며 그중 일부는 아직까지 연주되고 있지요. 리스트는 시材가 되는 생각을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형식의 굴레 안에 가둬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에 앞서 베를리오즈가 여러 표제적 교향곡에서 시도한 바 역시 어딘가 미흡하다 여긴 것이지요. 그가 내세운 해결책은 단악장 교향시였고, 청중의 이해를 돕기위해 출판 악보 서문에 음악의 씨앗이 된 이야기나 사건을 설명하는 글을 덧붙였습니다. 리스트가 터놓은 길을 따른 후배는 적지 않았습니다.
유명 작곡가만 꼽더라도 생상스Camille Saint-Saëns(1835-1921), 세자르 프랑크, 폴 뒤카Paul Dukas (1865-1935), 차이콥스키, 스메타나BediichSmetana(1824-1884),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1837-1910) 등을 거명할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교향시가 모두 자유 형식에 입각한 건 아닙니다만, 최소한 교향시라는 장르에 대한 원칙은 수립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P276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첫 번째 핵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않은 것입니다오페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례에 묶인 채로 존재하는 장르라는 점입니다.- P283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예술은 곧 현실의 거울임을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거기서 단순히 현실적인 예술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미적쾌락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성에서 비롯되는쾌락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오페라하우스입니다. 구구절절 설명한 것 같지만 압축해서 말하자면 이겁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오페라가 가진 관례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P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