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AAAAAAAA

 "굉장하네!" 후터키가 고개를 저었다. "난 어땠는지 알아? 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고...." "에이, 설마!"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종소리? 어디서?" "그걸 모르겠더라니까. 게다가 두 차례나 한 번 들리고 또 한 번." 슈미트 부인도 고개를 저었다. "정신이 나가려나 봐." "아니면 나도 그게 다 꿈이었으려나."- P18
. 후터키는 문가에 기댄 채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집 밖으로 도망쳐 나갈지를 궁리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 보였다. 밖으로 나가려면 부엌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창문에서 뛰어내리기엔 그는 너무 늙어 기력이 없었다.- P19
 이 농장이 조성되고 2년이 지난 뒤에, 지금으로부터는 7년 전에 이곳이흥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처음 왔을 때처럼, 다 해진 바지에 빛바랜 윗옷을 걸치고 굶주린 빈털터리 신세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P20
 "여보게, 아무도 없나? 슈미트!" 그는 목청껏 부르며 혹시라도 슈미트가 도망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재빨리 문을 열었다. 집을 빠져나가려고 막 부엌을 나온 슈미트 앞에 후터키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어허, 이것 봐라!" 그가 비웃듯이 말했다. "우리 이웃께서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려고?"- P20
 음침한 목소리로 후터키가 말했다. "돈을 들고 튈 작정이었지! 안 그래? 내 말이 맞지?"- P21
슈미트가 몸을 숙이며 왼손으로 식탁 가장자리를 움켜잡았다. "자네가 최근에 나한테 말이야, 여길 뜰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으면 내가 이런 부탁도안 하지. 여기선 자네가 돈을 쓸 데도 없지 않겠나. 꼭 1년만이야.... 겨우 1년이라고! 우린 여기서 떠나려고 해. 알아. 떠나야만 한다고. 그런데 2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벌판의 단칸집도 못 산다고. 1만이라도 빌려주게, 응?" "내가 알바 아니지." 후터키가 화를 참으며 대꾸했다. - P22
그는 죽음이 절망적이고 영구적인 종말이 아니라 일종의 경고라고 확신했다. "그냥 달라는 게 아니란 말이야." 슈미트가 자기도 지겹다는 듯이 말했다. "빌려달라는 건데, 이해가 안 돼? 차용하는 거지. 정확하게 1년 후에 한 푼도 모자라지 않게 돌려준다니까." 식탁의 두 사내는 의기소침했다.- P23
 후터키도 으르렁댔다. "자넨 크라네르와 작당을 해서 둘이 함께 해 뜨기 전에 튀려고했지. 그래놓고 나더러 믿으라고?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바보다 이거지?" 둘은 침묵했다. 화덕 앞에서 슈미트 부인이 접시를 딸그락거렸다. 두 사내는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P24
 후터키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종일이나 남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떡하고? 헐리치나 교장 말이야." 슈미트는 의기소침해져서 손가락을 비벼댔다. "나도 모르지. 헐리치는 아마 하루 종일 잠이나 잘 거야. 어제 호르고시네서 엄청 마셔댔거든. 그리고 교장? 지옥에나 가라지 신경 안써! 만일 그자가 우릴 훼방 놓으면 먼저 무덤에 들어간 빌어먹을 그의 엄마 곁으로 내가 보내버릴 테니까 진정하라고."- P25
"남쪽으로 갈 거야." 내리는 비를 응시하며 후터키가 말했다.- P25
 안쪽에서는 윗부분에 손가락 굵기로 난 틈에서부터 흘러내린 빗방울이 점점 고여 창틀을 메우고는 창턱까지 흐른 뒤 다시 방울방울 후터키의 무릎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먼곳을 떠도는 상념에 빠져 자기 옷이 젖는 것도 알지 못했다.- P26
 유리잔과 침대, 아카시아 가지, 차가운 바닥. 그는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따뜻한 물 한 대야! 아, 젠장! 난 날마다 족욕을 할 거야." 그의 등 뒤에서 슈미트 부인이 가만히울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괴로운 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섰다.- P27
"저기 헐리치 부인과 크라네르 부인, 교장과 헐리치가 가고 있어." "크라네르네가?" 슈미트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어디?" 그가 창가로 다가갔다. "극장에 가는 거겠지." 후터키가 확신하듯 중얼거렸다.- P28
 "영수증이야. 내가 자넬 속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거야." 후터키는 목을 비스듬히 하고 재빨리 종이를 읽은 다음 말했다. "셈하자고!" 그는 손전등을 슈미트 부인의 손에 쥐여주고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슈미트가 뭉툭한 손가락으로 식탁 가장자리에 내려놓는 지폐를 노려보았다.- P30
 후터키는 지팡이를 찾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탁자에 주저앉았고, 슈미트는 헛것이 보이나 싶었다. "대체 뭐하는 거야!" 그가 소리 죽여 윽박지르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후터키는 개의치 않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불기 남은 성냥을 흔들어 끄며, 그만 포기하고 자리에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P31
일순 후터키와 슈미트는 말문이 막혔다. "장거리 버스 차장이 시내에서 두 사람을 봤다고 했다." 슈미트 부인은 이렇게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걸 봤대. 날씨가 이렇게 엉망인데! 차장 말로는 두 사람이 엘레크로 가는 갈림길에서 농장 쪽을 향해 가더라는 거야."- P33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가 눈을 빛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슈미트가 퉁명스럽게물었다. "하지만 둘 다 죽었잖아!" "그래도 사실이라면..." 이번엔 후터키가 슈미트 부인의 말을 이어가듯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호르고시의 아들놈이 예전에 거짓말을 한 게지."- P34
"그들은 1년 반 전에 죽었는데, 1년 반 전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런 사실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지.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돼! 이건 덫이야. 알겠어? 덫이라고!" 후터키는 듣고 있지 않았다. 벌써 외투의 단추를 잠그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걸 보게 될 거야."- P35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난 갈 테니까, 당신은 마음대로 해." 후터키가 코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들이 정말로이곳에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자네는 이리미아시에게서 도망칠 수 없을 거야. 그렇지?"- P36
그녀는 빗물에 얼룩지는 유리창 너머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두 남자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차바퀴 자국이 깊게 난 길의 웅덩이를 피해 걸으며 술집으로 갔다. 후터키는 담배를 말아 물고 흡족하고 희망에 부푼 기색으로 연기를 뿜었다. 모든 긴장이 사라졌다.- P37
사나운 빗줄기 속에서 슈미트의 욕설과 후터키의 기대에부푼, 기운을 북돋아주려는 말이 뒤섞였다. 후터키는 말하고또 말했다. "짜증 내지 말라고. 보란 듯이 잘살 수 있게 될 테니까! 흥청망청 마음껏 즐기며 살 거야!"- P38
2

우리는 부활한다
We Are Resurrected


머리 위의 시계가 벌써 10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그들이 달리 무엇을 기다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P41
어지러운 생각들이 몇 분 동안 소용돌이치다가 허약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쓸모없는 문장들이 만들어져 나온다. 그것은 급조된 다리처럼 세 걸음만 걸으면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그 다음 내딛는 마지막 발걸음에 와장창 무너지는 것이어서, 결국에는 지난밤 관인이 찍힌 소환장을 처음 받았을 때 빠져들었던 소용돌이 속으로 거듭해서 휘말려 들고 마는 것이다.- P42
"비와 나뭇가지라." 그는 마치 오래 묵은 와인을 음미하고 몇 년산인가를 알아맞히려는 것처럼 그 말을 혀에 올려 따라 해보지만 단지 시늉을 할 뿐이고 그로서는 어떤 말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P44
"봐, 저자들은 일부러 이러는 거야. 말하자면...." 큰사내가 맥없이 웃는다. "오줌 지리지 말고 귀나 세워 다시 처졌잖아."- P45
귀가 처진 사내는 불쾌한 듯조금 떨어져 앉고, 그의 작은 머리통은 외투 깃에 가려져 거의보이지 않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잖아." 그가 자존심 상한 듯이 웅얼거린다.- P46
 마치 방문자가 당황한 나머지 잘 손질한 외투 밖으로 남루한 멜빵바지를 노출하거나 신발 밖으로 구멍 난 양말을 드러내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P47
상관은 기운없이 뒤로 몸을 기대고 두 사람을 천천히 훑어본다. 그러다 표정이 밝아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쪽 벽의 작은 문을열고 들어가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기다리게 허튼짓하지말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몇 분 뒤, 키가 훌쩍 크고 대위 계급장을 단 파란 눈의 남자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P49
"잠시만요!" 그는 주머니에서 소환장을 꺼내 의기양양하게 들어 보인 뒤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대위가 그걸 힐끗 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호통을 친다. "글도 읽을 줄 몰라요? 맙소사! 여기가 몇 층입니까?" 두 사내는 뜻밖의 갑작스러운 호통에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아, 그렇지요." 작은 사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P50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