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소설을 읽을 때 색안경을 씁니다. 유명한 소설이니 뭔가 있을거야 생각을 합니다. 재미 없어도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재미 또는 감동을 주는 뭔가가 있을까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니면, 내 수준을 탓하기도 합니다.
<스토너> 소설을 읽을 때 내 수준을 탓하면서 읽었지만, 다 읽고 난 후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은 책이 되었습니다. 알라딘 서재에 <스토너> 읽고 쓴 감상문이 있는데, 좋지 않은 평가를 썼습니다. <스토너> 초반부, 중반부 정도까지는 재미있었고, 흥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읽기 전에 기대를 했지만, 엄청난 실망이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 도 좋은 평가를 받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도 나에게 안 맞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소설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그만 읽을까 갈등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초반부는 어린 소녀의 성장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다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남북 전쟁 이야기와 미국 중남부 앨러바마의 1930년대 모습이 간혹 언급 되었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어린 소녀와 그녀의 오빠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양심, 사회적 부도덕,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보았습니다. 어린 소녀와 그녀의 아빠인 변호사가 흑인을 변호하면서 얻게 되는 주변 사람들의 협박, 미움, 유혹 등에 대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의 정치적 갈등이 있는데, 저는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처럼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냥 지인도 아니고, 부모님인데도 말이죠.
진실을 찾아 보려는 노력, 그리고 그 진실을 누군가에게 알려 주어서 옳게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미움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의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과 공정을 외면합니다. 깨어있는 시민이 필요합니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런 말을 합니다. 스카웃이 그의 딸이고, 젬의 그의 아들입니다. 그가 변호하는 흑인이 톰 로빈슨 입니다.
이제 여름이 오면 넌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당면할 텐데 그때도 이성을 지켜야 할 거야… 너와 젬에게 부당하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때로 최선을 다해서 극복해야 할 경우가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건… 글쎄,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너와 젬이 어른이 되면, 어쩌면 조금은 연민을 느끼면서, 내가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되돌아볼 거라는 사실이야.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스카웃,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P. 200)
당시에 흑인 차별과 무시가 심했습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동네 주민들은 거의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상식을 외면하고, 양심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태연하게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바람직한 모습일까요?
종교가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고, 지켜주는 존재로 타락한 사례는 역사에서 많습니다. 기득권 세력 편에 붙어서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탄압하는데 동조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억압 했습니다.
스페인 내전 때 기독교는 파시스트 프랑코를 지지하면서 공화정을 공격했습니다.
히틀러를 지지하면서 그에게 권력을 준 기독교인들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에 유대인을 탄압하고, 학살할 때외면을 했습니다. 십자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그 안에 있던 백만 명의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비단 기독교만의 역사는 아닐 것입니다. 종교의 맹목적인 모습은 다른 종교에서도 나옵니다.
미국 백인들의 모순, 유대인과 흑인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말을 스카웃이 합니다.
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직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냐 말이야. (P. 455)
스카웃의 학교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히틀러와 나치가 유태인에게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단호하게 비난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수업 후 흑인에 대해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위와 같이 말합니다. 멀리 떨어진 유럽의 유대인 탄압, 학살을 비난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흑인에 대한 차별, 탄압에 대해서는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순입니다.
상식과 공정, 양심 이런 말은 단 두 글자밖에 안되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결코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국민의 자유를 빼앗고, 탄압하는 내란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내란 세력을 지지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들은 상식과 공정, 양심이 어떻든 신경쓰지 않았고, 그 세력 중에 교회와 종교인들도 있었습니다.
더 웃긴 것은 기득권도 아니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기득권이 원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점입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배움을 통해 알면, 아는 만큼 보이고,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2025.6.28 Ex. Libris HJK
젬 오빠의 팔이 심하게 부러진 것은 오빠가 열세 살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