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안 본것도 많아서 보고 싶어서 읽었다. 미국의 민주주의,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부분도 읽고 싶었다. 요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정책을 보니까 자본주의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잘 보완하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싶다. 나라의 중요한 자리의 몇 명이 나라를 좌지우지 한다는 걸 알고 좀 처참해진다. 정치, 경제, 법에 대해서 잘 알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들이 잘 살게 하는 방법들이 뭔지 정말 궁금하다.
저자 사사키 다케시는 1942년 아키타현 출생으로 도쿄대학교 법학부 졸업, 전 도쿄대학교 총장, 현대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유명한 교수이다. 저자는 1968년 조교수, 1978년 교수를 거쳐,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법학정치학 연구과정을 지냈다. 이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제 27대 도쿄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가쿠슈인 대학교를 거쳐 2022년부터 일본학사원 원장으로 재임 중이다. 저자가 지은 책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플라톤과 정치』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등이 있다.
래스키는 1893년 6월 30일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그는 맨체스터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옥스퍼드대학교의 뉴칼리지에서 수학했다. 재학 중 페이비언어협회와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가했으며, 1914년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등에서 근대사를 강의하는 한편, 홈스와 월터리프맨 등 자유주의자들과 친교를 맺었다. 1920년 영국으로 돌아온 이후,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그레이엄 월러스의 뒤를 이어 정치학 강좌를 담당했다. 또한 이해 페이비언협회 회원으로 가입했고, 영국 노동당에도 입당해 사회주의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래스키는 정치학자로서 『근대 국가에서의 자유』『정치학 입문』 『국가 그 이론과 현실』 『현대 혁명의 고찰』 『신앙⦁이성 그리고 문명』 등의 많은 저작을 발표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의 총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를 거둘 때, 그 당의 집행위원장이었다. 1950년 2월의 총선거때에는 와병 중인데도 노동당을 위해 가두연설에 참가했다가 이로 인해 병이 악화되어 3월24일 사망했다. 『정치학 개론』을 출판하기에 앞선 1917년부터 1921년까지 래스키는 헤겔과 보즌켓 ‘주권적 국가관’ 비판한 ‘다원주의적 국가관’에 관해 이 저술에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했지만 그것이 훌륭한 리더십 때문이라고는 부르지 않았다. 토크빌이 평가한 것은 통치자가 오랜 기간 동안 국민의 이해에 반하는 통치를 할 수 없다는 점, 국민의 이익과 권리 의식 그리고 법에 대한 의식과 공공 의식을 길러 주는 점,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국민의 행동을 활발하게 하며 약동하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위험은 흔히 말했듯이 무정부적 취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 대다수를 배경으로 권력이 무소불위 힘을 갖는 데 있으며, 강력한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와 여론을 지배하고 때때로 압제적이 되며, 특히 때로는 소수의 뛰어난 사상을 지닌 사람들을 압살하는 데 있다.
미국에는 이 같은 ‘다수에 의한 전제’라는 위험이 끓임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방지될 수 있는 것은 먼저 폭압적 정치를 차단할 수 있도록 행정이 분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민중의 일탈을 억제하는 독립적인 사법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법률가는 단순한 소송을 담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정치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지식과 경험을 통해 국민의 이해와 의견의 조정 그리고 제도의 안정을 유지하는 일종의 지적인 아리스토크라시를 형성하고 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유지시키는 일반적 요인으로 지리적 이점과 법제적 요인, 풍습을 꼽았다. 법제적 요인이란 규모가 큰 공화국이 가장 강력함과 작은 공화제가 지닌 장점을 양립시킬 수 있는 연방제와, 다수의 전제를 완화시키고 자유를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지방 자치 그리고 민중의 행동을 억제하는 사법권이다. 풍습이란 국민의 습성과 관행, 의견, 신앙 등을 한데 묶은 것으로,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고 최고의 법 제도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습속과 어긋난다면 정치의 기본 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고 토크빌은 말하며 이를 매우 중시했다.
그는 그 가운데 종교를 특히 그러한 것으로 꼽았다. 다만 종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국가와 분리되어 있어야 하며 또한 종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국가와 분리되어 있어야 하며 또한 종교가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는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는 숫자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다수의 추세, 곧 ‘여론’에 굴종하기 쉽다. ‘여론에 대한 신뢰는 일종의 종교가 되면 다수는 그 예언자가 된다.’ 여기에서 ‘다수의 전제’라는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관계나 인간관계도 그다지 엄격하지 않고 대부분의 개인은 물질적으로 충분히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가족 또는 몇 안 되는 소수의 친구로 이루어진 친근하고 마음 편한 작은 서클 속에 갇혀 지내면서 일상생활의 안녕과 복지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공적 사항이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되며, 보다 넓은 시야에서 사물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나아가 야심을 크게 품지 않게 되며, 활력도 쉽게 상실하게 된다.

이와 같이 민주주의와 권력의 집중은 결코 모순되지 않으며 서로 상통하는 것이다. 개인은 그 속에서 자신의 안녕을 국가에 요구하며 생활을 국가에 의존함으로써 인간은 점점 더 왜소해지게 된다. 민주화된 사회에 대한 토크빌의 태도는 좀 더 복잡하다. 그렇지만 이는 민중의 극단적 빈곤과 무지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에 비해 민주화된 사회는 귀족 사회만큼 화려한 사회는 아니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보다 정의로운 사회이다. 결국 토크빌은 보다 정의에 가까운 민주 사회를 인정한다.
토크빌은 결국 미국과 같이 소규모의 정치 현장, 곧 기본적으로 지방 정치와 지방 자치를 확립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공공의 이익과 연결시킴으로써 보다 나은 이익을 실현해 낼 수 있다는 생각나게 된다. 자발적인 결사 역시 이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국가 권력의 비대화를 유효하게 억제할 수 있다. 종교 역시 중요하다. 좁은 범위에 해당하는 신변의 물질적 안녕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보다 넓은 정신적 문제로 시선을 향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정치학과 정치사상이 국가 또는 정치권력의 본질을 문제 삼아 온 데 비해 저자인 메리엄은 사회의 통제 과정에서 정치 권력이 담당하는 역학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 상황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그것은 ‘당위’로서의 정치와 ‘이념’으로서의 정치를 추구해 온 종래의 방향을 전환해서 ‘현실적’인 정치를 파악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과학으로서의 정치학에 관한 방향을 의식적으로 권력 현상의 분석에 적용하고자 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계약론적 입장에서 말하자면, 권력의 모체는 정치 사회 형성될 때 그 구성원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이라고 여겨져 왔다. “권력은 다름 아니라 집단의 통합 현상이며, 집단 형성의 필요성과 유용성에서 생겨난 것이다”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거기에서는 사회의 다양한 집단 사이의 긴장 관계와 집단 구성원의 퍼스낼리티를 조정하고자 나선 지도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권력과 권력 관계란 사회의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반드시 ‘권력집단’의 제 1인자에게만 한정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며, 설령 제1인자라고 해도 그 지위는 끓임없이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따라서 정치권력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고 스스로를 미화시킴으로써 사회적 통합에 관한 자신의 유용성과 우월성을 과시해야 한다. 더욱이 힘의 행사를 통해 사회관계를 조정해 우월성을 과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에는 감추어진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 끓임없는 권력의 추구와 그에 수반되는 ‘힘의 숭배와 힘을 과시하려는 취향’이 그것이다. 권력욕과 그러한 권력욕이 가져온 궁핍화는 권력에 항상 존재하는 양태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정치권력의 뒷면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며 통합 기능이 약해지며 권력의 마이너스 측면이 점점 더 부각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재만 지켜지면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국회의원 매국노들이 중국에 나라를 서서히 넘기는 입법을 취하고 있으니 정말 걱정만 쌓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