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저자 조경엽은 글로벌 통화정책, 외환시장 전략 등 국제 금융의 구조적 변화를 날카롭게 해석해온 전문가다. 매일경제신문사와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서 국내외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자본시장, 부동산 증 경제∙금융과 연관된 분야에서 일했고, KB금융 소장을 역임했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부터 세계 금융위기와 코로나 국면까지, 시장이 요동쳤던 시대를 지켜봤다.
평소 실물에 걸맞는 금융의 역할을 기대하고, 원칙과 창의에 바탕을 두고 신기술과 사회 변화를 수용하는 금융시장과 금융업이 돼야 한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청소년과 사회초년생의 금융 학습에 관심이 많다. ⟪금융강국, 머니워킹코리아⟫, ⟪G2시대∙미국에 맞서는 중국의 초강대국 전략⟫,⟪세상 친절한 금리수업⟫, ⟪세상 친절한 환율수업⟫등을 함께 기획하고 펴냈다.
미국과 중국은 곳곳에 서로 파열음을 내고 맞짱을 뜨기 일쑤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지 오래다. 미국 내 공화당이나 민주당 할 것 없어,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정부와 민간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 외교, 안보와 경제 관계는 따로 돌아가지만 시진핑 3기와 트럼프 2기 시대가 맞부딪치는 글로벌 양강 구도 속에서 외교와 경제는 한데 얽혀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두 나라는 상호 협력에서 불신으로, 파트너에서 라이벌을 넘어서 ‘가상의 적’으로 규정하고 상대를 무너뜨리거나 발목을 잡을 정책과 전략을 펼치고 있다.
양국은 앞으로도 때로는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게, 때로는 물밑에서 치열한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중국의 금융 패권 전략은 두 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2027년까지 위안화를 아시아 지역 통화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이고, 2단계는 2049년까지 미국 달러에 버금가는 세계기축통화의 위상을 확보하는 것이다. 2049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바로 중국 공산당이 치열한 내전에서 승리해 신중국을 세운 지 100년이 되는 해이자,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중국몽’이 완성되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시점이다.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삼겠다는 의지는 단순한 경제 전략을 넘어, 국가적 꿈과 맞닿아 있다. 중국의 전략은 매우 신중하다. 위안화가 국제화로 공식화된 것은 2009년이며, 2021년 14차 5개년 계획에서는 ‘신중하고 안정적으로 추진,’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는 ‘질서 있게 추진’이라는 표현으로 조심스럽게 진화했다. 이후 아시아에서 보편적 통화로 자리잡은 다음, 장기적으로는 기축통화 역할까지 바라보는 로드맵이다.

현재 세계 경제와 금융을 지배하는 기축통화는 미국 달러다. 그 위력은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하지만 달러는 역시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다. 영국 파운드에서 패권을 넘겨받았고, 그 이전엔 네델란드의 길더화가 지배적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달러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위안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지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달러는 중국에게 가장 정확한 롤모델이다.
중국은 미국이 달러를 중심으로 쌓아올린 국제 금융체제를 거의 그대로 따라 하면서 위안화 체제를 구축해왔다. 위안화 국제화 전략은 두 갈래로 진행됐다. 첫째, 각국과 일대일로 협약을 체결하거나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고, 런던 같은 금융허브에 위안화 직거래시장을 개설했다. 스와프는 주로 신흥국 중심, 직거래시장은 선진 금융기구 중심으로 확장됐다. 둘째, 중국은 여러 나라와 함께 새로운 국제금융기구를 설립하거나 대체 결제망을 구축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에는 유럽 주요국 참여했고, 전 세계 은행이 사용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 맞서 국경간결제망을 개설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지배하는 글로벌 카드 네트워크를 대체하기 위해 유니온페이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기존 체제도 적극 수용하고 활용한다. 세계은행과 IMF체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발언권을 높이고 있다. 위안화는 IMF의 특별인출권에 포함되었고, CIPS도 SWIFT와 연동되어 운용된다.
디지털 위안화를 이용한 다국간 결제 프로젝트인 ‘엠브릿지’ 는 처음부터 국제결제 은행과 협력해 기술과 제도 표준화를 함께 진행했다. 중국은 마치 ⟪손자병법⟫을 현실에 적용하듯, 초기에는 조심스레 체제 안으로 들어가 입지를 다진 뒤 점차 독자적 체제를 구축해왔다. 겉으로는 협업과 공조인 것 같지만, 실상은 치밀하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오월동주’전략이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WTO에 가입해 결국은 세계화의 수혜를 오롯이 누린 그간의 중국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위안화가 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지극히 가능성이 낮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양강구도는 강력하고 가시적일 것이다.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중국은 우선 아시아권의 주도적인 통화 지위를 노린다. 여기서 더 나아가 브릭스라는 새로운 경제블록에서 통화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중국은 달러 체제로 돌아가는 글로벌 경제 속에서 위안화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라와 외화 유동성이 고갈되면 얼마나 허무하게 미국과 서구 열강에 휘둘리는지 똑똑하게 지켜봤다. IMF를 앞세운 미국,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에 가혹한 구조조정과 금융시장 개방을 강요했고, 이는 ‘경제식민통치’에 가까웠다. 그러한 상황에 빠져들면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중국 정책의 배경에 짙게 깔려 있다.
일대일로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현대판 실크로드 프로젝트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고대 동서양을 연결한 교통로인 실크로드를 현대에 재현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담겼다. 실제로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인프라 개발을 추진해왔다. 도로, 철도, 항만 등 건설뿐만 아니라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거나 디지털 분야 정보가 추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일대일로는 시진핑 주석의 꿈인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외 정책의 큰 그릇이자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 내용만 봐도 그 핵심은 자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들이 추진 중인 공동통화 구상에 대해 “달러를 대체하려는 통화를 만든다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공식적인 정책을 발표한 바는 없지만, 그가 관세율 ‘100%’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브릭스 공동통화가 미국입장에서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미국이 어느 나라에 부과했던 관세보다도 훨씬 더 징벌적인 수치로,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관계 단절을 불사하겠다는 메시지로 읽는다. 미국은 그간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어떤 시도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대응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크 저커버그가 주도했던 글로벌 디지털 화폐 리브라 프로젝트다. 페이스북 메신저,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수십억 명이 사용하는 플랫폼과 연계해 디지털 공간에서 간편하게 결제, 송금할 수 있는 리브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비춰졌다.
하지만 미국 의회와 정부는 이 계획을 달러 기반의 기존 결제시스템을 위협하는 시도로 간주했고, 저커버그는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강도 높은 질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리브라 프로젝트는 전 세계 단일 디지털 화폐가 아닌 각 나라별로 디지털 화폐를 만드는 것으로 후퇴했고, 이름도 디엠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규제와 정치적 반대에 부딪혀 2022년 아시아 외환위기 초기에 일본은 아시아통화기금을 창설해 위기에 처한 아시아 국가들을 구제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달러 패권이 미국 정부와 기업, 금융회사, 그리고 미국인들에게 주는 이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하다. 우선 단순하게 보더라도 미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국채를 발행해 메우고, 월가 금융회사들은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큰 돈을 벌고, 미국인들은 달러 중심의 움직임이라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아주 초기에 제거하는 원천봉쇄 작전을 펼친다. 달러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개인들의 정치적 성향, 어느 경제 주체를 막론하고 일치단결하는 모양세다.
미국의 달러 패권 수호 전략은 이제 디지털 세계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개발, 발행, 유통,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국은 대체로 CBDC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실용화, 국제결제은행의 CBDC보고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적극적인 개발 등 다른 흐름이 보이자 미국 내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미국이 소외된다면 달러 패권이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에 바이든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2022년, 디지털 자산에 대한 ‘책임 있는 개발’을 내세운 행정명령을 발표하면 CBDC관련 보고서를 내놓았고, 증권거래위원회 등이 다양한 관점에서 CBDC는 금융 안정성, 소비자보호, 국가 안보 등 여러 이슈와 연계되어 중요한 정책 과제로 부상했다. 이 책을 보니까 화폐전쟁에서도 어떤 스탠스를 잡아야 할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