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친구도 별로 없고 엄마랑 친해서 엄마의 영향이 정말 크기는 한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회복할 수 있는 부분이 뭔지 알고 싶어서 읽었다. 저자 박우란은 정신분석가, 동국 대학교 교육 대학원 상담 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서울 불교 대학원 대학교 상담 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안산 정신과 병원 심리 치료실, 서울시 청소년 상담 지원 센터 등을 거쳐 현재 심리 클리닉’피안‘에서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1만 5,000회 이상의 심리 상담 및 꿈 분석을 진행했고 강의 활동과 정신 분석 집단을 운영했다.
저자는 분석가가 되기 전 , 대학교를 다니다 수도원에 입회해 10여 년을 살며 영성과 심리를 공부했다. 고통스런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며 살았으나, 인간의 삶과 마음에 대해 멈추지 않는 물음에 답을 찾고자 환속했다. 수도원 생활에서도 끝끝내 찾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혼란과 고민의 정체를, 정신 분석을 받고 경험했다. 3년 동안 LPI에서 라캉 정신 분석가 수련을 끝내고, 현재 분석실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다.
저자가 지은 책은 ⟪애도의 기술⟫, ⟪여자의 심리코드⟫,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등이 있다. 저자는 엄마로 살아가는 일이, 딸로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저자는 책에서 엄마와 딸의 거리를 재설정하고, 이 관계 안에서 ’나다움‘, 그저 나로서 중심을 잡고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엄마의 감정적 소외 속에서 자란 딸이 엄마가 되어 자신의 딸을 소외시키는 방법으로 되풀이되는 엄마, 딸, 여자의 완벽한 심리적 결합 현상을 파헤쳤다.
구조적 관점 혹은 가부장적 구조에서 보면, 가정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타인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을 실험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남성(남성아이)을 메워 넣는 방식, 보살피고 결핍을 메꾸는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기도 하는데, 그 보살핌이 온전히 그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여성의 헌신을 그저 희생으로만 볼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성이 타인의 만족을 채우는 식으로 자신의 결핍을 메우고 자신의 존재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지만, 이러한 방식은 특히 아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 딸아이에게는 방식이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저자는 딸아이 친구 엄마들과 몇 차례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는 과정에서 재미난 현상을 하나 목격했다. 간식을 푸짐하게 주문해서 식탁에 차려 놓자, 딸아이들은 자연스레 자기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식탁 주변으로 모여들어 엄마들 곁에서 간식을 먹었고, 시선을 엄마들을 향했다. 그런데 남자아이들은 자기들이 하던 게임이며 놀이를 중단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러한 일이 유난히 몇 사람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 꽤 흔히 벌어지는 광경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마가 아들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여자 아이들이 엄마를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했다면 남자아이들은 놀이, 즉 자기 자신에게 더 몰입하는 경향을 보였다. 남자아이는 엄마를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므로 성인이 된 후에도 아내나 연인을 자신의 일부, 혹은 부분으로 여기면서 그녀의 희생이나 헌신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딸과 아들을 모두 키우는 경우, 엄마의 요구를 딸아이가 재빨리 먼저 알아차리고 맞히는 경우가 많다.
엄마 또한 그것을 매우 자연스런 현상처럼 여기고, 아들보다 딸에게 더 많은 요구와 포기, 양보를 은근히 강요하기도 한다.
여자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거나 지각하기 이전에 엄마라는 대상, 타인의 감정에 자기를 동의시하고 그것을 자기라는 대상, 타인의 감정에 자기를 동일시하고 그것을 자기라고 느낀다. 즉, 엄마의 상태에서 자신을 포함시킨다. 남자아이처럼 좀 더 충족된 내 상태에 엄마를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자아이는 내가 없이 타인인 엄마의 상태에 나를 포함시킨다.
딸을 보는 엄마의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 홀대 받으면서 자랐다면,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딸에게 투영시켜 자신의 부모와 같은 방식으로 딸을 홀대하기도 하고 소외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딸아이에게서 발견할 때는 불안해지고 어떻게든 그 부분을 없애려 한다. 또 엄마가 결핍이 많으면, 지나치게 퍼붓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상하기도 한다. 엄마가 딸아이를 타인으로 대하지 않고, 어린 자신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를 자기 대상으로 삼을 때, 딸아이는 고유한 자기를 경험할 순간을 놓치기 쉽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없게 되어 타인의 감정과 상태를 살피기에 급급하며 살아간다. 아무리 자기 아이를 소중하게 대해도 이렇게 누군가가 함부로 아이에게 정신적 폭력을 가하면 대책이 없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다.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사회이고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이유 없이 당하는 폭력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 부모가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아이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분별하기 더욱 어렵다. 엄마나 아빠 고유의 생각과 경험의 틀 안에서 들으면 아이의 말이나 신호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부모는 힘들어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게 힘이 든다. 상처 없이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만, 상처를 피할 수만은 없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믿을 수 있는지 경험하고 그것을 겪어 낼 수 있는 단단한 정서적인 맷집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엄마인 자신이 생각하는 관심이 아니라 아이가 필요로 하는 관심을 세심하게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는 매우 달라졌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지고, 얼마나 많은 전문적 지식과 양질의 정보들이 우리에게 제공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그럼에도 정작 내 상태를 가늠하고 찬찬히 들여다본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감지하지 못한 많은 부모들은 육아, 아이와 관계 맺기 등을 책에 의존해 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느 순간에 참기 힘들고, 어느 순간에 정말 만족감과 흡족함을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무수한 질문을 해야 한다. 내가 나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아이나 배우자에게 던지며 그들이 그 답을 찾고 해결하길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멈추어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엄마의 말과 태도, 비언어적인 메시지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가로막고 딸에게서 아버지를 지우기도 한다. 많은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의 남편이다. 상담실에서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는 여성이 많다. 엄마만 생각하면 그 삶이 너무도 안쓰럽고 애틋하여 눈물부터 나고 목이 메인다고 한다.
“우리는 트라우마나 나쁜 기억이 생기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품고서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 저자는 항상 고군 분투하며 열심을 다해 살았지만, 어느 순간 멈추어보니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충분히 회고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원 생활 10년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님에도 수도원을 나와 정신 분석 공부에 몰두하는 동안, 저자는 그 10년을 밀쳐놓고 있었다. 오직 정신 분석 이론과 현상에만 집중하고, 그 틀로만 저자를 해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시간을 과도하게 미화할 필요는 없지만, 분명 ‘있었던’ 그 시간을 저자는 왜 충분히 내 안에서 재해석하고 소중하게 상징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싶었다.
믿을 만한 분석가를 찾아 자신을 언어화를 해본다.하는 일이다. 여러 실제적인 사건과 자신 속에 있는 충동, 상상과 환상을 언어화하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재구성하고 상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성, 남성할 것 없이 치료자, 분석가라 불리는 전문가 중에는 자신이 믿고 있는 이론의 틀에 증상과 현상을 끼워 맞춰 해석하고 판단하려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집요하게 과거를 찾아내고 유지하고 보수하며 현재를 이해하고자 한다’.
자기 글쓰기를 해야 한다. 이것은 혼자 할 수 있는 방식이면서도, 좀 더 많은 자기 통제와 수련이 필요하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루에 한 줄씩이라도 내 안의 것들을 그저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에 익숙해지고 탄력이 붙으면 분석가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의식의 흐름이 자유로워지고 의식보다 자신의 글이 앞서서 써 내려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글을 수정하는 일은 글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자신과 나누는 대화의 과정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끓임없이 본인정화의 과정처럼 느껴지도 한다. 저자가 많은 사람들과 대화로 분석을 이어 가다 보면, 강박적일 정도로 본인 안에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고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글을 써야 한다. 난 엄마가 윤리도덕 기준이 높고 걸어다니는 성경처럼 살고 공부와 책에 파묻혀서 사는 박사라서 엄마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래서 엄마가 우주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니까 불만이나 부족함을 잘 느끼지 못하고 그게 나한테 선한 영향을 주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