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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님의 서재
  • 나의 아이들 1
  • 구젤 야히나
  • 16,200원 (10%900)
  • 2023-11-30
  • : 329
디아스포라 문학의 신예 작가라고 하는 구젤 야히나의 <나의 아이들>은 총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권을 다 읽고 나니 2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쁠 만큼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모든 종류의 불화를 힘들어했다는 감수성 예민한 한 남성에게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을 느끼면서 읽기 시작했다.

어떤 연유가 있는 걸까?

내 집안에 덜그럭 소리를 내며 잘 들어맞지 않는 창틀 빈틈도 메우지 않으면서, 더 큰 세계에는 흥미로워하고 귀를 기울이는 ‘바흐’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번개와 천둥이 치는 날 밖으로 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는 일 외에는 삶의 큰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니 분명 뭔가를 갈구하는 것 같다.

러시아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볼가강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이제는 작고 보이지 않는 벽촌이 되어버린 것인가.
그가 사는 곳은 18~19세기에 독일 농민들이 많이 와서 살았다는 볼가강 왼쪽 지역의 독일 식민지 마을 ‘그나덴탈’이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독일 각지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이 섞여 있다 보니, 그들의 말씨가 독일 표준어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책 내용에 앞서 섬세한 묘사에 ‘볼가강 주변의 사계절은 이런 모습이겠구나.’라고 상상하는 시간부터 가질 수 있었다.
아침을 알리는 다양한 소리가 느껴지고 가축에게 어제 길어 온 물 대신, 꼭 볼가강에 가서 실컷 목을 축이게 했다는 문장은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농민들의 노력과 땀이 묻어난다.

강물의 절반 이상이 녹은 눈이라고 하는 볼가강은 눈이 많이 내려도 주민들의 집에는 썰매와 수레가 있어 든든하다.
눈이 올 때 러시아의 겨울용 전통신발 왈렌키를 신고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는 주민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개울물의 차가움과 돼지, 염소똥 냄새도 느껴본다.

이렇듯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변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섬세한 묘사 덕분에 나는 바흐 선생님께서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투박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소박한 의자에 앉아서 코끝은 조금 시려도 가만히 먼 곳을 응시할 때 느껴지는 그 묘한 편안함처럼,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은 이 느낌이 매우 좋다.


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바흐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로 배를 채우게 하고 싶어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런 감성을 전달받기에는 아직은 장난꾸러기 아이들이라 인기 많은 선생님과는 조금 거리가 멀 것 같다.
학교 사택에 사는 서른두 살의 낡은 군복을 입은 이 바흐는 벌써 노화로 인해 주름살이 늘기 시작했다는데, 쇠붙이 냄새 진동하는 교실 안에서의 수업시간을 슬쩍 들여다보니 어째 주름살이 날로 늘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그에게는 쿵쾅거릴 만큼의 기쁨인 저녁 독서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P. 32) 그의 삶은 사소한 기쁨과 작은 근심으로 가득하지만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행복한 삶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은 한 가지 일만 아니라면 꽤 괜찮은 삶일 수 있었다.


어느 날, 바흐는 다른 곳에 모여 사는 식민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열일 곱 살이 되는 자신의 딸에게 독일어를 가르쳐달라는 내용으로 바흐에게 편지를 보낸, 볼가강 오른쪽 지역에 사는 ‘우도 그림’이라는 이름의 한 남성을 만난 것인데, 사실 거의 반강제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그런데 이 바흐가 꽤 쫄보에다가 나름(?) 귀엽다.
사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면 살짝 열불이 터지게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자신에게 공손하게 수업을 부탁해도 시원찮을 판에 무례하게 대하는 험상궂은 우도 그림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찌무룩한 얼굴로 눈 내리깔고 속으로만 부글부글이다. 그야말로 사람이 매우 없어 보일 만큼 초라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너무 웃겼다.
혼자 계속 킥킥거리면서 읽었다.
아, 뭔가 굉장히 짠한 우리 바흐 선생님.

이렇게 바흐가 사는 볼가강 왼쪽지역 그나덴탈 마을 외에도 식민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었는데, 오른쪽 지역으로는 경사가 매우 심해서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왕래가 없었던 것 같다. 넓은 평야와 달리 이곳은 숲 속에 통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가득하고 블랙베리가 보이며, 바위와 이끼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엄격한 수업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나름 준비를 해서 독일어 교재와 괴테의 시집 등을 챙겨 드디어 개인 수업을 위해 강 건너편 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험악한 남성의 딸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
(바흐부터 클라라까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낭만적이다.)

이 마을의 주인으로 불리는 아버지 우도 그림 외에는 아무도 밖으로 나온 적 없이 세상과는 단절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숲 속에서, 클라라가 나이 많은 유모에게 들은 옛날이야기들도 예카테리나 대제 시대 때에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에 멈춰 있었다. 이런 단조로운 일상에서 큰 변화 없이 지낸 클라라에게 측은함을 느낀 바흐는 가르침에 대한 욕구가 샘물 솟듯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이같은 어조의 클라라에게 사투리 대신 고급 독일어를 가르치는 게 바흐가 맡은 일이다. 딸을 독일 남성에게 시집보내려는 마음에 교육을 부탁한 것을 보면, 독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인가보다.

(P. 90) 그녀의 천진난만한 입술에서는 괴테와 실러의 발라드가 이상하게 변했는데, 천사 같은 억양 덕분에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놀랍게도 부도덕한 뉘앙스를 띠었으며, 가장 무사 무시한 장면도 그 사랑스러운 억양을 거치면 어두운 분위기가 몇 배는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흐와 클라라는 서로의 대한 애틋함이 커지고 번개로 장식하는 강력한 뇌우 말고는 삶의 큰 흥분을 느끼지 못했던 바흐의 심장은 클라라를 향한 사랑으로 펄펄 끓기 시작했다.
순수하면서도 애틋한 이들의 수업시간과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은 온 세상이 무지갯빛 비눗방울 떠다니듯 했다.
바흐에게는 뭔가를 갈구하는 느낌을 초반부터 받았었는데 아마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날, 온 식구가 독일로 떠나게 된 클라라는 독일행 기차에서 가족들까지 버리고 몰래 빠져나와 바흐의 집을 찾아온다.
축복을 받으며 그나덴탈에서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길 머릿속에 그리며 꿈에 젖었을 클라라.

주민들에게는 그저 타락한 선생과 나이 어린 소녀였나 보다.
독일어로 ‘복을 가져다주는 골짜기’라는 뜻의 그나덴탈은 아쉽게도 바흐와 클라라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주민들의 질책과 따가운 시선에 외출도 어려울 만큼 논란의 대상이기만 했던 그 둘은 어쩔 수 없이 사택을 떠나 볼가강의 오른쪽 강변 마을, 세상과 단절된 우도 그림의 마을로 떠나게 된다.

험난한 길을 뚫고 바흐에게 온 클라라가 보여준 엄청난 용기가 바흐가 지닌 두려움을 모두 없앨 수는 없었던 것일까.
바흐는 죄책감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숲에서의 생활은 멈춘 시계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웠으며,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고 살아나가게끔 해줬다.
더는 감수성 예민하고 노동에 서툰 바흐가 아니었고, 선생님께서 들려주던 이야기에 꺄르르 웃기만 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클라라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한계에 다가서며 서서히 변화를 쌓아오다가 삶에 맞서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힘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의 중심에는 분명 클라라의 현명한 요령과 더불어 침착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세상속에 스며들고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었을 클라라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는 바흐는 단 하루라도 그녀를 다시 그나덴탈에 데리고 가고 싶었다.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혼자 무작정 그나덴탈로 향한다.

그런데,
바흐와 클라라가 자신들의 삶을 숲 속의 세계에 맞춰 지내고 사는 동안 이 곳, 그나덴탈은 떠나오기 전의 북적거림과 풍요로움을 잃고 폐허가 된 집들로 가득해 있었다. 깨끗한 색을 띠던 얼음 조각은 이제 검붉은 색과 선홍색을 띠었다.

바흐는 참혹함을 따라가 본다.

(P. 148) 불가강의 왼편에 있는 스텝 지역이 열정적인 튤립과 양귀비꽃 색깔로 막 변하고 투명한 하늘이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들과 별들까지 활짝 문을 열어놓았을 때, 바로 이 스텝 지역을 낯선 이들의 발자국이 어지럽히고 하늘은 쇳덩어리 새들이 어지럽혔던 것이다.


독일지역의 빈농들은 거리적으로 인접했던 러시아 지역의 비옥한 평원지대로 이주를 택했다. 이민을 장려하기 위해 예카테리나 2세는 이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병역면제의 혜택과 더불어 언어, 문화 등의 보존을 약속했었다.

시간이 흘러 첫 번째 러시아 혁명 이후 발생한 분열과 갈등의 내전 속에서 볼가강 강물을 타고 식민지 마을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기근을 겪고 굶주림에 목숨을 잃었으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탄생이라는 큰 줄기가 만든 새로운 이념과 지도자 밑에 손님처럼 살아야 했다.

독일로 돌아간 사람들도 그나덴탈에서 살아나간 세월이 있기에 분명 독일어 사용의 어려움과 문화 차이로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떠올려진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소개 글에 ‘약속된 땅’을 향한 갈구와 좌절이라는 문장이 더 처연한 마음을 들게 하는 것 같다.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또한 분명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과 사랑이었는데, 그 책임감과 사랑이 강인함과 열정으로 느껴지기보단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내쉬는 숨결이 느껴질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로 읽는 재미가 넘쳐나 행복했고,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던 잔혹함이 가슴을 조이게 하여 고통스러웠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목이 메여오고 따끔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나약해진 몸과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머릿속을 얼음 떠다니는 볼가강 차디찬 강물에 집어넣고 흔들어봐도 소용이 없을 만큼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는 상황들에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무력감을 느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바흐가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는데, 이제 그나덴탈은 소련이라는 명칭이 붙고 사람들은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었다.

(P. 218)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얼굴이 매우 축축했다. 그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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