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서로 끌어안았다.
한 사람은 괴로움으로 안았고, 또 다른 사람은 불안감으로 안겼다.
이들의 모습은 각자 지독한 불행의 무게로 균형을 잃고 위태롭다.
모든 게 붕괴될 것만 같다.
<용의자X의 헌신>과 <악의>에 이어 세 번째 만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이번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데 나처럼 저자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않은, 그래서 가가 형사 시리즈를 꾸준히 읽은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읽는재미를 위해 줄거리는 간략하게만!!
‘야스요’는 자신의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할 ‘유리코’라는 여성을 친구로부터 소개받는다.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마저 두고 집을 나왔다고 말하는 이 여성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만의 사정이 있을 테니 야스요는 더 묻지 않는다. (자신의 단순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의 과거를 들추려 하지 않는 면이 참 맘에 든다.)
유리코가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아 야스요는 아주 만족스럽다.
어느덧, 유리코가 야스요의 가게에서 일한 지도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몸이 좋지 않았던 유리코는 가게를 그만두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그녀의 건강이 염려되었던 야스요가 유리코의 집을 찾아갔다가 이미 사망한 상태의 그녀를 발견한다.
심부전으로 보인다는 의사의 소견에 더 일찍 검진을 받도록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야스요.
유리코가 가게 손님이었던 ‘와타베’라는 남성과 연인 관계라는 걸 알았기에 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유리코의 아들인 형사 ‘가가 교이치로’의 원룸 주소만 알려준 채, 자신은 잊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일가친척도 없이 외로웠을 유리코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 참 잘됐다 싶었는데 이렇게 외면을 당하다니.
망연함을 머금은 채 야스요는 유리코의 장례를 치른다.
쉽지 않은 일을 해 준 그녀가 참 고맙다.
유골과 유품 인수를 목적으로 야스요는 가가에게 편지를 썼는데 다행히도 뒷일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전화를 걸어와 이 둘은 함께 유리코가 살던 집으로 향한다.
가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물품을 정리하기 위해 옷가지들을 주워담는다. 냉철하지만 따뜻한 면이 있는 가가 형사의 고통스러웠을 삶과 기구하게 살다가 홀로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의 삶 또한 가슴이 먹먹해진다.
야스요로부터 어머니의 연인 와타베의 이야기를 듣게 된 가가.
그는 형사답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어머니의 방 안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그 후,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한 아파트에서 타살로 추정되는 ‘미치코’라는 여성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고시카와 무쓰오’ 라는 남성의 아파트 벽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미치코. 용의자로 의심되는 고시카와는 행방이 묘연했다.
청소를 해주는 업체에 근무했던 미치코의 직장동료의 기억으로는 그녀가 “주말에는 사치 좀 부려볼까?” 라고 했다는데 과연 무슨 일인 걸까.
수사를 맡은 경시청 수사1과 소속 형사 ‘마쓰미야’는 이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느껴지는 또 다른 사건을 떠올린다.
남의 아파트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미치코의 사건과 다른 관할 서 사건인 오두막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노숙자의 사건에서 인상 깊은 중요한 요소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언제라도 죽음을 맞이할 각오가 되어 있는 듯이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바로 ‘하루살이’와도 같은 사람들의 죽음이었다는 것.
노인들을 골라 살해한 요양 보호사의 이야기인 일본 영화 <로스트 케어>처럼 타인의 도움이 절실한 빈곤층에 대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다룬 듯한 느낌을 받고 있던 즈음, 미치코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으로 추정되는 동창생 ‘히로미’가 등장한다.
미치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각본가,연출가로서 여러 대표작을 남길 만큼 연극계에서는 꽤 이름을 날리고 있던 히로미.
하지만, 히로미에게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과거가 존재했었다.
수사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형사 마쓰미야는 한 남성을 만나러 향한다. 슬슬 느낌이 온다.
이쯤되면 가가 형사가 나와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마쓰미야의 사촌 형이자 경시청 수사 1과 선배이기도 한 가가 형사가 다시 등장했다.
이 만남에서 마쓰미야는 가가에게 히로미의 이야기를 듣는다.
검도 경력이 있던 가가는 현재 근무지인 니혼바시 서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서에서 운영한 검도 교실에서 강사를 맡고 있었다. 이때 아역배우의 검도 훈련을 위해 찾아온 연출가 히로미와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P. 116) “마음에 깊은 어둠을 품은 여자일 거야.”
행동이 묘연한 아파트 주인과 히로미, 그리고 죽은 미치코까지.
과연 이들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
그리고 왜 가가는 경시청에서 근무하다가 니혼바시 서로 가게 된 걸까?
험난한 사건을 맡아온 가가 경부보가 이제는 동네 사람들의 사소한 사건들까지 맡으며 거리 구석구석까지 마음을 쓰는 모습에 마쓰미야는 뭔가 그에게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과 함께 착잡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살인사건 피의자가 어느 정도 굳혀가던 이때, 미치코가 발견된 그 아파트에 걸려있던 달력에 적혀있는 메모와 필적과 내용이 같은 메모가 등장한다. 그건 가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그리고 가가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가담하게 된다.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과 상황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크게 동떨어진다 볼 수도 없어서 불편함이 이내 착잡함으로 변화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여러 장점이 있기에 찾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를 가장 자극했던 부분은 쓸쓸함이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그 짙은 쓸쓸함이 계속 생각나게 한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외로움을 타고난 존재라고는 해도, 등장인물의 몸에 깊게 밴 고독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 상황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 안에 가벼이 다룰 수 없는 사회문제들을 꾸준히 이야기함으로 그 무게감이 확실히 끌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하다.
저자의 또 다른 소설 <용의자X의 헌신>의 주인공 이시가미는 생을 마감하려는 그 절망적인 순간에 다정한 모녀의 인사 하나로 기적처럼 다시 삶을 살기로 했었다. 고독감을 느끼며 사람들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모른 척할 수 없었기에 더욱 가슴 아프게 들여다본 소설이었다. 말 그대로 다정함이 기적을 낳은 것인데, 난 절대 이게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던 시기가 분명히 내게도 존재했었고, 그럼에도 사람으로 인해 또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문제들로 편견에 쌓인 시선을 받거나 그 모습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등장시키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 왔으며,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다 알지는 못해도 딱 한 가지 선명하게 느낀 것은, 결국 우리 삶 너머, 행복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외면하지 않는 우리들의 시선이 머무르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