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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나와 인생 사이에는 아주 얇은 유리 한 장이 있다. 뚜렷하게 바라보며 인생을 이해한다 해도, 결코 만질 수는 없다.


(129)

아, 내 안에 살아 있고 내 안이 아니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죽은 과거여! 들판의 작은 집 정원의 꽃들은 오직 내 안에만 있구나! 뜰의 채소와 과일나무와 소나무들은 오직 내 꿈속에만 있구나! 내가 상상한 전원생활과 시골 산책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어라! 길가의 나무와 오솔길과 돌 들, 지나가던 시골 사람들…… 모든 것은 단지 꿈이었을 뿐, 내 기억에 새겨진 채 나를 아프게 한다. 그것들을 꿈꾸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던 나는 지금은 꿈꾸던 순간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사실은 나의 진정한 그리움이자 나를 눈물짓게 하는 과거이고 죽어버린 진정한 삶이다. 나는 그 삶이 엄숙하게 관에 누운 모습을 바라본다.


(138)

모든 것에 지칠 때가 있다. 심지어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것마저 피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그것을 얻으려는 생각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걱정과 아픔 아래에는 낙담한 영혼이 있다. 인간적인 걱정과 아픔을 교묘히 피하고 자신의 권태마저 비켜갈 수 있는 이들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을 입은 이들에게는, 어느 순간 의식 속에서 갑옷 전체가 갑자기 무거운 짐이 되고 인생은 전도된 걱정과 잃어버린 아픔이 되는 일이 별로 놀랍지 않다.


(156)

글을 쓴다는 것은 잊는 것이다. 문학은 인생을 무시하는 가장 유쾌한 방식이다. 음악은 마음을 달래고, 미술은 기운을 북돋고, 연극이나 무용 같은 행위 예술은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문학은 잠에 빠지듯 인생에서 멀어지게 한다. 다른 예술의 경우, 어떤 것은 눈에 보이는데다 살아 있는 형식을 사용하고 또 어떤 것은 인간의 삶 자체를 살아가기에 인생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160)

나는 국가와 인류에 종속되길 거부한다. 소극적으로라도 저항한다. 국가는 나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꼼짝 않는 이상 내게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오늘날 사형제도도 폐지되었으니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나를 귀찮게 하는 정도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영혼을 더욱 단단히 무장하고 내 꿈속 더 깊은 곳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국가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운명이 나를 봐준 것 같다.


(169)

분개하지 않는다. 분개는 힘 있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체념하지 않는다. 체념은 고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나는 힘 있는 자도, 고귀한 자도, 위대한 자도 아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고 꿈을 예술가라서 나의 불평으로 노래를 만들며 놀고, 내 꿈들을 더 아름다워 보이도록 배열하며 논다.


(182)

정말 오랫동안 나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내 마음은 지극히 고요하다. 아무도 나의 진정한 모습과 다른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방금 무엇인가 아주 새로운 일을 했거나 뒤늦게 한 것처럼 숨을 쉬는 나를 느꼈다. 의식을 갖고 있음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일은 다시 나로 깨어나 내 존재의 궤적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더 행복해질지 그 반대일지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길을 걷다 고개를 들고 성벽이 세워진 언덕 위로 차가운 불덩이로 만든 반사경 같은 노을이 십여 개의 창문을 불태우는 모습을 본다. 그 단단한 불의 눈 주위로, 언덕 위에는 하루가 저물 무렵의 포근함이 가득하다. 적어도 지금 나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막 나의 슬픔이, 저 지나가는 전차의 갑작스러운 소음과 젊은이들이 대화하는 소리와 살아 있는 도시의 잊혔던 속삭임과 마주치는 것을-나는 그것을 내 귀로 보았다-의식할 수 있다.

정말 오랫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다.


(192)

어떤 이들은 삶에서 큰 꿈을 품지만 이루지 못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아무런 꿈도 품지 않기에 마찬가지로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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