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
우리가 추상미술 앞에서 난해함을 느끼며 갸우뚱할지라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미 추상적 이미지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상품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되어 있고, 우리는 그 추상적 이미지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낍니다. 주변의 모든 건축물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을 무척 좋아하고, 심지어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있죠. 21세기에 와서는 누구나 좋아하는 미적 취향이 된 ‘기하학적 추상’. 기하학적 추상에 숨겨져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미적
매력을 누구보다 앞서 또렷이 느낄 수 있는 심미안을 갖췄던 사람.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떳떳이 예술가. 그가 바로 몬드리안입니다.
(37)
그렇습니다. 그림을 꼭 사진 찍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려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있을까요? 그 고정관념을 제거하면, 그림은 평면 위에 화가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장이 됩니다. 이렇게
유럽의 회화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고 벗어납니다.
즉,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화가가 더 자유롭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바로 이것이 피카소와 브라크가 20세기
초에 활짝 연 현대미술 혁명의 요체입니다.
(69)
그렇다면, 몬드리안은 고작 십자 모양(+)으로 어떻게 미의 진리를 회화에 표현한 것일까? 그는 하얀 캔버스
평면 위에 ‘여러 개’의 수직선과 수평선을 직각 대립시켜
그렸을 때 ‘자연스럽게’ 사각형 평명(ㅁ)이 생성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직선과
수평선을 많이 사용할수록 사각형 평면(ㅁ)의 수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더불어, 그 사각형 평면들이 놓인
‘위치’와 ‘크기’ 모두 제각각임을 발견합니다. 몬드리안 화면 전체에 평형상태를 만들기
위해 수직선과 수평선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사각형 평면(ㅁ)의 ‘위치 관계’와 ‘크기 관계’를 조율합니다. 그
목적은 캔버스 화면 전체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화로운, 즉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해 필요하다면 사각형 평면(ㅁ)에 빨강, 파랑, 노랑, 흰색, 회색 등을 채워 ‘사각형
색 평면’을 만들어 ‘색채 관계’를 조율합니다.
(89)
수업이 트렌드에 매우 뒤처져 있다고 여긴 달리가 대학 울타리 안에서 고분고분할 리 만무했습니다. 교수보다 전위적이며 다른 학생보다 훨씬 뛰어난 그림을 그린다고 자신한 나르시시스트 달리는 반바지에 망토를 걸치고
다니며 괴짜 짓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신임 교수 취임식에서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취임식장을 박차고
나사 1년 정학 처분을 받습니다. 그 이후에도 괴짜 기질을
참지 못한 달리는 대학 미술사 시험 도중 심사위원인 교수들에게 “심사위원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내가 더
똑똑하고, 주어진 문제를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심사받기를 거부”한다고 말하며 퇴학당합니다. 이렇게 착실히 학교 다녀 교수가 되리라
믿은 달리 아버지의 꿈은 산산조각이 됩니다.
(128-129)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폭발 이미지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은 달리. 이제 달리의 관심사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원자의 세계가 되었죠. 그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자 속 세계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흥분합니다. 그는 물질세계의 본질을 회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해답이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에 있다고 여기며 원자물리학, 양자역학
공부에 빠져듭니다. 프로이트보다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을 신봉하기 시작하죠.
(204-205)
제가 현대미술사에 기록되는 ‘위대한’ 예술가를 ‘망나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살펴보면 아마 고개가 끄덕여질 겁니다. (정말 쓸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잭슨 폴록의
진짜 면모를 허례허식 없이 전하기 위해) 한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보자면, 폴록은 자신을 아껴준 스승 벤턴의 아내 리카와 불륜을 저지릅니다. 한술
더 떠 25세 폴록은 술에 찌든 상태로 리타로 찾아가 청혼까지 하지만 리카는 거절하죠. 그녀의 거절에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폴록은 벤턴을 찾아가 “빌어먹을
놈, 내가 너보다 더 유명해지고 말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기록하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과 인간성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227)
세상이 돕는 이런 긍정적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체면을 차리고 작업도 더욱 열심히 할 만했지만, 우리의 폴록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벽화> 작업으로 창작의 고통을 느낀 것이 치유하기 어려운 큰 상처가 되었는지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난폭함은
점점 커져만 갔죠. 만취해 술집의 기물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 건 기본.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예삿일. 급기야 술집에서 폴록의 출입을 제한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렇게 뉴욕 술집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는 눈이 오면 취한 채 도로를 나뒹굴며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고, 눈 위에 오줌을 흩뿌리며 전 세계에 오줌을 싸겠다고 고성방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보통 망나니라고 부르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위대한 예술가상과는 꽤 다른 모습입니다.
(233)
폴록의 회화를 살펴보면 여전히 초현실주의 영향이 지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무의식을 활용해 예술 창작을 하고 싶었던) 초현실주의자들이 ‘작은 종이’ 위에 이성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손을 써서’ 그림을 그리는 자동기술법. 그것을 폴록은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손만이 아닌 ‘몸 전체를 써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초현실주의자들과는 꽤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화가가
그림 안으로 들어가 ‘그림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림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며 화가가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림이 자기만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 것. 폴록이 창작 과정에서 중시하는 이런 생각과 느낌은 폴록이 스스로
일종의 샤먼이 되어 그림과 교신하는 행위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점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플록의 특징이죠.
(282)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알리며 미국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명확히 헤게모니를 잡게 됩니다. 그때 뉴욕 미술계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전쟁을 피해 미국에 왔던 유럽 미술가들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버렸고, 미술관과 갤러리 등
제도권에서 미국 미술가들을 차별하는 분위기는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상황은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유럽의 전위 예술가들과 수년간 교류했던 미국 미술가들의
예술 세계가 크게 성숙한 것이죠. 더불어, 승전국이자 세계의
패권을 잡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생긴 자부심은 미국 미술가들 사이에 ‘유럽의 예술을 추종하던 기성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독자성을 가진 진정한 미국적 예술을 창조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310)
“내가 젊은 청년이었을 때 예술은 고독한 작업이었습니다. 갤러리도, 수집가도, 평론가도,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황금기였습니다. 우리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대신 비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다.”
비관적인 연설. 모든 것을 가졌기에 잃을 일만 남아서일까?” 66세의 로스코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비전만이 찬란히 넘쳐흐르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심리 속 로스코의 내면에 남겨진 색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직 검정과 회색뿐이었습니다.
(319)
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다른 시각으로 관찰하면, ‘복제의 시대’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미디어에서 텍스트, 이미지,
영상이 무한히 반복적으로 복제되고 있고, 이제는 그 영향이 오프라인까지 범람하며 ‘무엇이 원본이고 복제본인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죠. 이런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일찍이) 1960년대에 예리하게 간파해 예술에 절묘하게 녹인 예술가가
바로 앤디 워홀입니다.
(339-340)
더 나아가 워홀은 이런 미국의 사회 구조 속에서 하나의 ‘진실’을 발견합니다. 바로 기업이 상품을 ‘반복적’으로 생산하고, 미디어
광고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소비자가 된 미국인은 광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소비를 ‘반복’한다는
진실. 다시 말해, ‘반복 생산, 반복 노출, 반복 소비의 문화’를
발견합니다. 워홀은 미국의 사회 구조 속에 숨겨진 이 진실을 자신의 전매특허 미학으로 승화시키기로 합니다. 한마디로 ‘반복’. 캠벨
수프 캔 하나를 그리던 워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중에 판매 중인 32종의 캠벨 수프 캔을 ‘반복적’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크기도, 형태도, 형식도 모두 완벽하게 표준화된 32개의 <캠벨 수프 캔>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