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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mile
  • 예언자의 노래
  • 폴 린치
  • 16,200원 (10%900)
  • 2024-11-20
  • : 8,482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2023년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타임 셸터>라는 책을 이야기했었잖아. 그 책을 살 때 2023년 맨 부커상 본상 수상작인 폴 린치의 <예언자의 노래>라는 책도 같이 샀단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바로 폴 핀치의 <예언자의 노래>라는 책이란다. 2023년 맨 부커상을 받은 폴 린치는 아일랜드 작가로 아빠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란다.

책 소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단다. 국가 비상 사태를 다룬 소설이었단다. 지은이는 시리아 내전 소식을 접하고, 그 상황이 자신의 모국 아일랜드에서 일어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라는 가정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했단다. 몇 달 전 일어난 우리나라 비상계엄과 내란 소식을 지은이가 접했다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완전한 내란 종식을 위해서는 다음주 대선이 무척 중요하단다.

 

1.

래리 스택과 아일리시라는 평범한 부부가 있었어. 그들은 열일곱 살 마크를 첫째로 몰리, 베일리, 벤 이렇게 아이가 넷이었어. 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갓난 아이였단다. 아일리시는 미생물학자로 연구소에서 일하고, 래리 스택은 아일랜드 교원 노조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어. 소설 속 아일랜드는 비상대법권 상황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비상 계엄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조그마한 의혹에도 경찰에 연행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상황. 래리 스택은 어느날 경찰 출두의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왔어. 경찰서에서 무혐의로 나와도 계속 GNSB(치안국 비밀 경찰)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었어. 다른 노조 간부는 체포된 뒤 면회도 안 되는 경우도 있었어. 래리도 당분간 조심을 하겠다면서 집에서만 생활했단다.

반정부 시위가 있던 날, 아일리시는 래리를 만류했지만, 래리는 자신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위에 참석했단다. 하지만 그 시위에서 래리는 체포되었고, 연락 두절이 되었단다. 어디로 잡혀가서 조사를 받는지도 몰랐어. 정부 기관에 재판을 받도록 요구해 보려 했지만 방법도 없었고 그런 걸 요구하면 오히려 그 사람도 구속될 수 있다고 했어. 국가는 국민연합이라는 정당이 정권을 잡고, 비상대법권이 발동된 상태였어. 외국에서도 엄청 비난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 국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정당은 소설 속이나 현실에서나 암튼...

아일리시는 래리와 함께 구금된 사람의 아내와 만나 이야기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단다. 정부기관에 편지를 보내봤지만 묵묵부답. 아일리시 가족은 신원조회에 보안위험인물로 분류되어 여권도 만들지 못했어. 아일리시는 혼자 사시면서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 있는 아버지 사이먼도 돌봐야 하고 네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남편은 연락 안되고.... 악몽 같은 시간이었단다. 그리고 17살 밖에 안된 마크에게 입영통지서가 나왔어. 상식 밖의 일들이 계속 벌어졌어. 17살 밖에 안된 아이들에 입영통지서가 나오다 보니, 학생들과 부모들이 시위를 시작했단다. 흰옷에 양초를 들고 평화 시위를 했지만, 경찰들은 강경 진압을 했고 수천 명이 체포되었단다. 시위에 참석했던 마크도 체포되었다가 며칠 만에 집에 돌아왔어.

아일리시는 마크를 군대 보내느니, 국경 밖 북아일랜드로 대피시키려고 했단다. 그러나 마크는 엄마 몰래 저항군에 들어가려고 집을 나섰단다. 얼마 후 아일리시는 직장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일로 연좌제로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야. 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테러로 파손이 되었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버스 타고 학교에 다녀야 했단다. 그런데 며칠 뒤 베일리의 담임 선생님으로 전화가 왔는데, 베일리가 학교에 자주 결석한다는 거야. 아버지 사이먼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점점 심해졌어. 아일리시 혼자가 네 아이와 병든 아버지를 보살피는 것은 역부족이구나. 남편이 사라진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단다.

 

2.

저항군과 정부군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생필품을 살 때를 제외하고는 통행 금지령이 내려지고, 학교도 휴교령이 내려져서 집에만 있어야 했어. 전기와 물도 자주 끊겼어. 아일리시 집 근처에도 정부군들의 전선이 구축되었단다. 딸 몰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신적으로 점점 힘들어했단다. 정부군이 밀려 물러나고 반란군, 아니 저항군이 동네에 들어왔단다. 그래서 낮 시간 동안은 동행이 허용되어, 아일리시는 아버지를 데려오기 위해 아버지 집으로 갔어. 그 전에도 몇 번이나 아버지를 모시고 오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혼지 지내는 것이 편하다고 거절했어. 하지만 이번에는 강제라도 모시고 오려고 했어. 이번에는 아버지는 막무가내셔서 결국 혼자 집에 돌아왔단다.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왔는데, 캐나다에 살고 있는 동생이 보낸 사람이었어. 가족들을 나라 밖으로 빼내주겠다고 온 사람이었어. 하지만 아일리시는 남편 래리와 마크가 마음에 걸려서 갈 수 없다고 했단다. 며칠 뒤 아버지에 들렀는데 아버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단다. 인근 마을을 다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캐나다에 살고 있는 동생이 사람을 보내 아버지를 안전한 곳으로 모셨다는구나. 다행이구나.

….

정부군과 반란군의 전투가 심해지면서, 포탄이 그들의 집 근처에도 떨어져서 집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어. 베일리가 작은 파편이 뒷머리 박히는 부상을 입게 되었단다. 몰리와 벤은 집에 두고, 아일리시는 베일리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갔어. 베일리는 병원에 맡겨 주고 집에 있는 아이들 때문에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다음날 베일리 상태를 보기 위해 병원에 갔는데, 베일리가 사라졌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거야. 아니, 보호자한테 말도 안하고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일리시는 병원에서 이야기해준 다른 병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베일리는 없었단다. 아일리시는 미친 듯이 베일리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시신안치소에서 찾을 수 있었어. 시신 상태는 엉망이 되어 있었는데, 사인은 심장마비였단다.

아일리시는 얼마나 분노가 치밀고 황망했을까. 하지만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했어. 아일리시는 결국 탈출하기로 했단다. 몰리와 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고난의 탈출길이 시작되었는데, 그들이 보트에 탑승할 때까지 조마조마하면서 읽었단다. 끝내 래리와 마크는 돌아오지 못한 채, 남은 가족이 보트에 몸을 싣고 바다로 나아가면서 소설은 끝이 맺었단다.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기냐고 할 수 있지만, 실패하기는 했지만 비상 계엄과 내란을 경험한 사람으로써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란이 실패하지 않고, 현재 우리나라가 총칼을 앞세운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보렴. 이 소설 속의 일들이 일상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지난 12월은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단다.

아직 내란 수괴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그들을 동조하는 세력들이 국가기관 여기저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구나. 아직도 불안해 죽겠구나. 얼른 다시 안정적인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밤이 왔고 창가에 서서 정원을 내다보던 그녀는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책의 끝 문장: 바다가 삶이야.




아일리시, 다른 때였다면 불법 구금으로 고등법원에 고소했을 겁니다, 래리를 꺼내왔을 거예요. 하지만 국가비상법 때문에 인신보호영장(불법 구금 방지 목적으로 행하는 구속적부심사 제도)이 중지됐어요, 국가가 특별 권력으로 사실상 사법부의 입을 틀어막았어요. - P54
날씨에 기억이 있다. 하늘에 무르익은 봄이, 날렵한 제비가, 온통 새까만 칼새가 있다, 돌아온 새를 보면서 세월이 흐르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열매를 당연하게 여겼던 순수한 시절이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누군가 내미는 열매를 받아서 맛을 보지도 않고 깨물어 먹었고, 아무 생각 없이 씨방을 버렸다. 아일리시는 피닉스 공원에서 혼자 걸어 다니며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눈앞에 자기 생각밖에 보이지 않는다. 잎이 넓은 나무들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위를 올려다보며 저 나무들 밑에서 흘러간 시간을, 나무들이 나이테로 기록하는 세월을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가고 그녀는 붙들 수 없다, 세월이 계속 흘러가지만 떠나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끌고 간다. - P164
인생이라는 세월에 먼지가 쌓이고, 그 세월이 서서히 먼지로 변한다, 무엇이 남을까,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겠지, 한쪽 눈만 감아도 우리 모두 사라질 것이다. 바로 그때 래리가 곁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지만 마주치는 것은 그녀의 슬픔이다, 아일리시는 양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캐럴의 말이 사실일 리가 없다고, 이제 무엇이 진실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말하고 또 말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고, 다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여움은 희망이라는 옷을 입은 슬픔이다.- P210
아빠는 늘 너와 함께 있어, 아일리시가 말한다. 떠나 있어도 마찬가지야, 그게 그 꿈의 의미야, 아빠는 항상 여기에 너와 함께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집에 온 거야. 왜냐면 아빠는 늘 네 마음속에 살아 있으니까, 아빠는 지금 여기서 팔로 너를 감싸고 있어, 아빠는 항상 여기 있을 거야. 왜냐면 어렸을 때 우리가 받은 사랑은 우리 안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아빠는 너를 너무 많이 사랑했어. 너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빼앗거나 지울 수는 없어, 나한테 설명을 묻지는 말고 그냥 진실이라고 믿어, 그게 진실이니까, 그게 인간 마음의 법칙이야.- P235
예언자들의 노래는 그 어느 때나 항상 반복되던 똑 같은 노래임을 깨닫는다, 칼의 도래, 불에 삼켜지는 세상, 정오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태양, 어둠에 잠긴 세상, 곧 눈에 보이지 않도록 쫓겨날 사악함에 대해서 예언자가 길길이 날뛸 때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신의 분노,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 세상은 어느 곳에서는 늘 끝나고 또 끝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은 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상의 종말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고 당신 동네를 방문하고 당신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머나먼 경고, 짤막한 뉴스, 전설이 되어버린 사건들의 메아리일 뿐이다.-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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