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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컨드 브레인
  • 에머런 마이어
  • 19,800원 (10%1,100)
  • 2025-02-28
  • : 2,475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뒤틀린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뒤틀린다. 누군가 위를 찢어버릴 목적으로 쥐어짜는 것 같아 잠에서 깰 정도다. 이상한 일이다. 스트레스는 정신의 영역일 텐데, 어떻게 물리적인 기관들이 영향을 받는 걸까?


생각이 모든 걸 좌우한다는 말, 일체유심조라는 이야기에는 가해자의 논리가 숨어있다. 마음의 평온이 결국 나에게 달린 문제라면 외부 조건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모두 헛수고이지 않은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내가 내 마음을 잘 다스렸다면 아무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런 생각은 행동이 필요할 때 명상이나 하자는 비겁한 사람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어리석은 중생들이여,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일일지니, 다투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나 돌아보라. 정말 불쉿이다.


<세컨드 브레인>은 우리의 감정이, 생각이, 마음이라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장 내 미생물이라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 실체가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장과 장 내 미생물군은 밀접한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감정과 통증 민감도,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도 있다. (p.22)


영어로 직감을 gut(내장) feeling이라고 하는데 괜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장과 뇌는 정보를 '양방향'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굵은 신경다발과 혈류를 이용해 소통한다. 이 신경절달경로를 통해 호르몬과 염증성 분자가 부지런히 오가며 뇌와 장을 밀접하게 연결하는 것이다. 장은 고유한 신경계를 갖고 있는데 약 5천만~1억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된다. 이는 뇌-신체 연결의 중추라 불리는 척수와 맞먹는 수치다.


장 신경계가 수집하는 풍부한 감각정보는 뇌에 전달되고, 뇌는 이를 분석해 장의 기능을 조절한다. 우리 몸은 이 과정에서 '감정을 느낄 수'있다. 감정을 감각정보 그 자체로 볼 것이냐, 아니면 뇌가 해석한 결과로 보느냐는 흥미로운 논쟁이긴 하지만 별 의미가 없다. 이는 물질이 먼저냐 생각이 먼저냐를 놓고 수천 년간 싸워온 낡은 유물-관념 전쟁을 연상케 한다. 해봐서 알겠지만 이는 헛수고일 뿐이다. 둘은 미묘하게 얽혀있다. 분명히 밖이라고 생각했는데 걷다 보면 어느새 안이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정말 놀라운 건 장 내 메생물의 관점에서 이 '연결'을 바라볼 때 발생한다. 미생물도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존이 최대 과제이며 자신의 DNA를 가능한 많이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이 미생물들이 번식에 유리한 음식물을 달라고 뇌에게 조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을 먹고 우울감이 감소하는 걸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당분이 장 내 어떤 미생물의 주요한 먹잇감이라면, 이 미생물들이 특정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지나친 상상일까?


과학이 발전해서 좋은 점은 호기심이 해소되서가 아니다. 새로운 질문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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