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한글깨치고리뷰쓰기
  • 콘클라베 (영화 특별판)
  • 로버트 해리스
  • 19,800원 (10%1,100)
  • 2025-02-27
  • : 15,600

로멜리는 교황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었다. 요직인 국무원장을 역임했으나 이제는 뒷방으로 밀려나 허울뿐인 추기경단 단장직을 맡은 게 전부였다. 국무원장에서 내려올 때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교황은 거절했다. 아직 바티칸에는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로멜리는 그 말이 달갑지 않았다. 대단한 평가를 바란 건 아니었다. 그래도 관리자라니. 고작 그 정도 크기였을 뿐인가. 하나님의 품 안에서 크고 작은 그릇은 없는 법이지만 그래도 사람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조차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원망하지 않았던가.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후보는 아데예미, 트람블레이, 테데스코, 그리고 벨리니였다. 몸놀림이 신중하고 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이었으며 늘 품위를 챙겨 '교회의 왕자'라 불리는 아데예미에게는 아프리카의 동족들이 있었다. 그는 마음속에 우주 역사 최초의 '흑인 교황'이라는 불꽃을 지닌 남자였다.


트람블레이. 프랑스계 캐나다인. 잘생긴 외모에 날씬한 몸. 북미인 특유의 가식만 제외하면 괜찮은 남자였다. 그에겐 아시아를 비롯한 비주류의 지지가 있었다. 아! 비주류. 영원히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이들은 늘 자신을 대신할 대표자가 필요했다. 트람블레이는 그들의 열망을 연료로 콘클라베를 달릴 준비를 마쳤다.


테데스코는 여러모로 추기경답지 않았다. 우선 돼지 같은 외모가 그랬다. 열 다섯 남매 중 막내로 자랐기 때문일까? 게걸스러운 식성은 안 그래도 떨어지는 품위를 짓이겨 밟았다. 그래도 전통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추종자가 적지 않았다. 그는 가톨릭 극우파의 수장이었다.


로멜리는 벨리니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교황이라는 성좌보다는 신학자의 책상이 더 어울렸지만 현직 국무원장이 아닌가. 흑인 교황은 너무 급진적이었고 캐나다인 교황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웠으며 테데스코는 꼴통이었다. 벨리니의 강점은 딱히 결격 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치란 무엇인가. 끌어내릴만한 손잡이를 달지 않는 것이다. 로멜리는 벨리니야 말로 진정한 교황의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로멜리는 자기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에 늘 벨리니의 이름을 썼다.


로멜리는 첫 투표에서 5표를 얻었다. 테데스코 22표, 아데예미 19표, 벨리니 18표, 트람블레이 16표, 기타 38표였다. 처음에 로멜리는 감개무량했다. 이중 다섯 명이나 자신에게 최고의 영예를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두 번째 투표에서 9표를 얻자 점점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그의 손에는 이상하리만치 운이 좋은 카드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앞선 주자들을 나락으로 끌어내릴만한 비밀들이.


여섯 번째 투표에서 로멜리는 40표를 얻었다. 일곱 번째에는 52표였다. 로멜리가 선두였다.


주님의 가여운 양, 바티칸의 관리자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