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는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고 강대국들에 의해 국토가 분할됐다는 점도 그렇다. 이들의 역사를 읽고 있으면 폴란드인들이 겪었을 분노와 원통이 고스란히 밀려들어와 감정을 깊이 이입하게 된다. 우리는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한때는 초강대국이었다는 점도 같을까? 싸움에 관한 한 우리 역사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고구려를 갖다 놓으면 얼추 짝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국가다. 중동부 유럽의 드넓은 평원이 모두 그들의 것이었고 귀족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강대국들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볼 만큼 호화로웠다. 폴란드 귀족들은 서민을 위해 초호화 서비스를 제공했다. 말발굽에 금박을 입혀, 말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떨어지는 금 부스러기들을 사람들이 주워가게 했던 것이다. 외국을 여행하는 폴란드인에겐 이 골드쇼가 일종의 유행이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정치 체제는 참으로 신비했다. 세습 군주가 대대로 국가를 통치한 게 아니라 무려 투표로 선출했다. 18, 19세기의 얘기가 아니다. 중세를 이제 막 벗어난 시점부터 그랬다. 소수의 귀족들만 참정권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슐라흐타라고 불리는 귀족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심했고 직업상의 상하관계도 존재했다. 가진 건 몸과 괭이 밖에 없는 가난한 농부도 대지주도 모두 슐라흐타 일 수 있었다. 그들은 법적으로 완전히 평등했다.
물론 전 국민이 참여하는 오늘날의 선거와는 달랐다. 전체 인구의 8% 정도였고 그마저도 전부 참여하지는 않았으니 많이 모일 땐 수만 명 수준이었다. 선출되는 사람을 보면 더 재밌는데 전 국왕들의 후광을 입은 친척들도 있었지만 아예 외국인 군주가 뽑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쯤 되면 사실상 국왕은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고 크고 작은 자치 도시들이 비슷한 문화를 기반으로 연합한 도시 국가 정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강력한 중앙 정부가 없다는 사실은 다양성과 분열이라는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왔다. 당시의 폴란드는 현대의 미국과 버금가는 민족과 인종의 용광로였고 큰 박해와 장애 없이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원하는 삶을 추구할 자유가 있었다. 오죽하면 전 세계에서 박해받는 유대인들이 한 몸이 되어 몰려들었겠는가? 한때 폴란드는 전 세계 유대인의 대부분이 거주하는 국가이기도 했다. 아유슈비츠가 괜히 폴란드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러 완전히 빛을 잃고 만다. 각자의 이해는 너무나 달랐고 민족적 다양성은 오히려 그 민족의 침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요소로도 작용했다. 격변의 시간을 거치며 폴란드는 유럽 열강의 군침 돋는 먹잇감이 됐고 급기야 그 넓던 영토가 갈가리 찢겨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폴란드의 역사는 제삼자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너무 닮아 효과적인 교육자료가 된다. 특히 위기를 다루는 방식에서 배울 것이 많다. 흥미로운 건 고금을 막론하고 민족을 가장 먼저, 가장 쉽게 배반하는 게 늘 특권층이었다는 사실이다. 잃을게 많은 그들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저항과 민족적 자부심은, 늘 서민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