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한테 편의점이란...
기진맥진 2025/06/1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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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해결사 깜냥 5
- 홍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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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냥 시리즈를 4권까지 읽고 멈췄었다. 1,2권이 나왔을 때 교실 아이들에게 읽어주자 아이들이 집에 가서 사달라고 졸라 “그 읽어주신 책 제목이 뭔가요?” 라고 학부모님에게 문의가 오기도 했었다. 이후로는 이 책이 엄청 유명해지고 도서관에도 빠짐없이 들어오고 하니 읽은 아이들이 많아 굳이 내가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다 얼마전 7권이 학교도서관에 들어온 것을 보고 다시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내가 어디까지 읽었더라? 아, 5권 읽을 차례구나. 5,6,7권을 한꺼번에 대출했다. 1권은 아파트 경비실, 2권은 피자집, 3권은 태권도장, 4권은 눈썰매장이더니 이번은 ‘편의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우리반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고 살짝 마음이 찔리기도 했다. 지난 한달 남짓 우리반 2학년 어린이들은 <마을>이라는 교과서를 공부했다. 참 진행하기 어려운 단원이었다. 특히 우리 학구처럼 대도시 변두리의, 녹지도 거의 없고 다가구 주택들이 밀집된 동네는 딱히 이렇다할 특징이 없었다. 기본조사를 위한 질문에 아이들의 답변은 거의 ‘편의점’ 일색이었다. 예를 들면
- 우리 마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써 보세요 (우리 마을에 편의점은 몇 개인가요?)
- 우리 마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써 보세요. (편의점)
- 우리 마을의 자랑거리를 하나 써 봅시다. (우리 마을에는 편의점이 많아요)
이런 식이었다. 나는 이 상황이 좀 안타깝고 답답해서 집에 가서 딸한테 푸념을 했다.
“2학년 아이들이 젤 좋아하는 장소가 편의점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 어휴.”
그러자 딸이 말했다.
“엄마, 엄마 학교 다닐 때 추억의 장소는 학교 앞 분식집이잖아. 요즘 애들한테는 그게 편의점인가부지.”
이 책을 읽고 보니 딸 말이 딱 맞았다. 편의점을 찾는 아이들의 상황과 마음을 작가님은 나보다 훨씬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셨던 것이다. 간편식이나 인스턴트를 주로 사먹는 편의점에 어린이들이 몰리는 것은 다소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거기엔 또 요즘 아이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님은 다섯 번째 장소로 편의점을 선정하신 게 아닐까.
밥값하는 츤데레 우리의 깜냥이 한 편의점 탁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탁자에 앉은 깜냥의 등장에 주인아주머니는 난감해 했지만 매정하게 내치지는 못했다. 그때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깜냥 특유의 그 제안,
“혹시 조수가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원래 일 같은 건 안 하지만 친절하신 분 같아서요.”
결국 주인에게는 급한 일이 생겼고, 깜냥은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이야기.
5권에서 독특한 만남은 깜냥보다 훨씬 먼저 그 동네에 터를 잡았던 하얀 고양이 ‘하품이’다. 늘 숨어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지만 깜냥 덕분에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동네를 잘 알고 개개인의 특성까지 잘 알고 있어서 깜냥에게도 도움을 많이 주는 캐릭터.
그리고 깜냥이 만난 편의점 손님들. 전편들에서도 그랬듯이 처음 만나는 인물은 어른이지만 결국 깜냥은 어린이들의 친구다. 풍족하지 않지만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그래서 그 손님들에게는 원 플러스 원 같은 행사 상품들이 아주 중요했다. 하긴 돈 버는 나도 편의점 가면 그것부터 살펴보니까. 동생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주고 행복해하는 아이. 그 오누이의 모습은 참 애틋했다. 부모님이 아주 바쁘시고 생활도 넉넉하지 않아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빈 곳을 메우는 가족일 것 같다.
킥보드를 타고 등장한 두 소녀 이야기는 재밌다. 편의점 풍속도를 제대로 그려냈다고 할까. 매콤볶음면과 참치마요 삼각김밥의 환상 짝꿍을 포기할 수 없던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그 조합을 무사히 먹게 될까? 덕분에 깜냥도 킥보드를 신나게 타봄.^^
생일파티 에피소드도 흐뭇했다. 그렇구나. 장소도 없고, 돈도 얼마 없는 아이들은 친구를 위해 이렇게 편의점을 이용하기도 하는구나. 우리반 아이들의 편의점 타령에 한숨을 쉬던 나는 이 대목에서 살짝 찡해짐.
손녀가 좋아하는 과자를 냥이들 덕분에 사간 할머니는 손녀딸 떠주고 남은 실로 냥이들 목도리를 떠 오시고.... 이렇게 마음을 주고받는 이야기가 펼쳐져 따뜻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깜냥은 갈 때가 되면 미련없이 떠난다. 깨끗이 정리하고, 바퀴달린 여행가방을 끌고.
요즘 책이 통 눈에 안들어오던 참인데 이번주에는 깜냥을 완독하며 보내야겠다. 다음 장소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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