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우리 사이를 지켜주지
기진맥진 2025/06/0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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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이에는
- 신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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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 2025-05-22
: 1,305
인간관계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이제 일반적이고 타당한 상식처럼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표현했느냐에 따라서 '당연한 말 왜 해'가 될 수도 있고 새삼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책은 당연히 후자다.
이 책을 읽으며 맞아 그렇지 하고 다가온 구절을 두 개 적어본다면 이렇다
"너와 나 사이에는 '사이'가 있어.
우리가 친구 사이여도 그래.
아무리 사이좋은 친구라도
네가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네가 될 수 없으니까."
"우리 사이에 사이가 있어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어.
바위와 바위 사이에 틈이 있어서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내릴 수 있는 것처럼."
두 주인공은 양과 늑대다. 보통은 먹고 먹히는 관계로 나오지만 이 책에서 둘은 친구다. 그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건 조미자 작가님의 귀여운 그림 때문이다. 단순히 귀엽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한, 예술적 귀여움? 신순재 작가님의 글이 절반의 아름다움을 담당한다면 나머지 담당은 조미자 작가님이다. 수채화의 자연스러운 붓터치와 번짐이 눈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아름답다. 언젠가 보았던 오래된 그림책에서 느꼈던 느낌이 나는 것도 같다.
"너와 나 사이에 ~~~가 있어."
라는 문장이 자주 반복된다.
딸기넝쿨이, 나비가, 길이, 시냇물이.....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 라는 문장도 의미가 깊다.
가장 새롭게 느껴진 문장은 이것이다.
"우리 사이에는 또다른 사이들이 있어.
먼 사이도 있고 가까운 사이도 있지.
아무리 사이가 많아도 너와 나 사이는 변함없어."
관계에 성숙한 사람은 이 '사이'의 존재를, 그리고 그것의 복합성을 알고 이해한다. 하지만 그걸 인정 못하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은 그 관계 자체마저도 산산조각을 내어버린다. 어른들도 많을테지만 나의 관심사는 주로 학생들이다. 특히 사춘기에 들어서서 또래관계가 가족관계보다 더 중요해진 아이들의 관계.
여기에서 집착은 금물이다. 소유욕 또한 그렇다. 잘못하면 지배욕, 조종욕구로까지 나아가는 비틀린 마음들을 많이 보았다. '사이'를 인정하지 않고 포개어지고싶어 안달하는 태도는 많은 무리수를 낳는다. 결국은 '사이'조차도 남지 않아 홀로 서서 울부짖거나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분을 삼키며 살아간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 책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층위대로 즐기고 해석할 수 있는 책이다. 직업적 눈으로 본다면 고학년 교실에서 관계 지도를 할 때 이 책을 도입으로 하면 참 좋을 것 같다.
- 너의 친구가 네가 될 순 없어.
- 너와 그 아이는 엄연히 다른 존재야. 포개질순 없어.
-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선이 있어. 친하다고 함부로 넘어선 안 돼.
- 혼자 있고 싶은 마음도 존중해 줘야 돼. 그럴 땐 흔쾌히 떨어져서 기다려.
- 세상에 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수많은 관계에 얽혀 살아가는 거야. 복합적인 다른 관계도 존중해 줘야 해.
- '내꺼' 라는 생각 금물이야. 내꺼가 못될 바엔 누구것도 될 수 없다라는 마음이 든다면 비극의 시작이야. 아니 범죄의 시작이랄까.
이상은 이 책과 달리 전혀 문학적이지 못한 나의 표현이다. 그래도 마무리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하자.
"별과 별 사이 캄캄한 어둠이 있어서
별이 더 밝게 빛나는 것처럼!"
이 별들의 빛남을 소중히 지키는 우리가 되길. 이 그림책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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