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빛남과 함께했던 시절
기진맥진 2025/05/1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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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학교의 최우수 선생님
- 윤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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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 2024-12-01
: 650
초등교사라는 직업이 상당히 획일적일 것 같지만 의외로 다양성이 충만하다. 경력 33년째에 이제 퇴직을 꿈꾸는 나도 어떤 상황에 던져지면 “이 일이 내가 일하던 직업이 맞나?” 마치 새로운 직장에 취직한 것 같은 낯선 상황에 당황할 수 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큰 움직임없이 근처로만 이동하며 근무해온 나는 다양한 지역, 다양한 상황에서 근무하신 선생님들의 경험을 들으며 내 경험이 오래되기만 했지 얼마나 미천한지 깨닫는다.
이 책은 민통선 지역의 학교, 이제는 폐교되고 없는 마현초등학교에 신규 발령을 받았던 최우수 선생님의 경험을 동화로 엮은 것이다. 읽어보니 거의 실화 수준인 것 같다. 아무 정보 없이 읽었는데, 마지막 작가의 말에 보니까 모델이 된 선생님이 내가 아는 선생님이잖아!! 만나뵌 적은 없지만 헌신적인 활동으로 유명한 분이고 페친이기도 해서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주인공 이름 ‘최우수’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끝까지 읽고서야 알게 됐네.ㅎㅎ
마현초등학교는 검색해보니 강원도 철원군 마현리에 실제로 있었던 학교이고 2007년에 학생수 감소로 폐교했다고 한다. 민통선 마을에 있던 학교니 원래부터 학생수가 많지는 않았겠다. 최우수 선생님도 발령받자마자 5,6학년 복식학급을 맡게 되었다.
마을 자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어서 검문을 받고 들어가는 장면, 가로등 하나 없는 동네라 밤이면 암흑천지가 되는 장면, 관사에서 거주하는 상황 등이 정말 낯설었다. 불편한 걸 질색하는 나에게 학교 관사란.... 어우,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곳이다. 집이면 집이고 직장이면 직장이지, 직장이 집이라니 너무 싫다.ㅎㅎ 게다가 오래된 관사는 허술하고 고장도 잘 나고 심지어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까지 났다. 게다가 벌레는 아주 기본이고 동네에 뱀이 우글우글.... 나는 절대 못해. 지금은 이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외따로 있는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은 지금은 중견 교사인 한 선생님의 젊은시절 좌충우돌 성장기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러 겹의 의미로 엮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민통선 마을이란 일종의 전쟁의 잔재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휴전의 잔재. 휴전선이 있기에 비무장지대가 있고, 거기에 딸린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 있는 것이니까. 수십년이 지났고, 그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부모들도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지만 (당시 기준 조부모님 정도가 전쟁을 겪은 세대) 전쟁의 상흔은 아직까지도 아이들의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이러한데 하물며 지금 전쟁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의 어린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상처를 안고 외딴 마을에서 살아가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의 밝음은 어떻게든 어둠을 뚫고 나온다. 그 어린이들의 삶에 함께 하신 최우수 선생님의 그 시절은 비록 서툴고 실수도 많았을지언정 아름답고 빛났다. 노련함과 노하우로도 덮지 못하는 눈부심이 있던 시절. 다시 돌아가라면 싫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긴 있었네....
최우수 선생님 외 조연 선생님들의 캐릭터도 아주 매력적이다. 가장 압권은 병설유치원의 강하리 선생님. 나같은 사람은 나가떨어질 그 환경에서 최강의 생존력을 보여준 씩씩한 선생님. 너무 멋졌다. 그리고 나무득 교장선생님. 일꾼인지 교장인지 못알아볼 정도로 몸소 일하시는, 무뚝뚝하지만 자상한 어른. 그 외 다른 복식 담임 선생님들도 다들 좋은 분이셨다.
나는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교사모임에도 거의 나가지 않지만, 이렇게 다양한 환경의 교사들이 경험을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다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 요즘같이 소진된 시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지 않는다는 게 슬픈 점이지만.... 중견의 교사들 마음속에 다들 한자락씩 갖고 있는 그때 그시절 이야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며 더불어 교사도 성장하던 그때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다시 되살아났으면 한다.
160쪽 정도의 분량에 두께가 꽤 있어서 대출할 책으로 뽑아들었는데, 도서관에 앉아있던 짧은 시간에 다 읽어버려 대출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림도 좀 있고 줄간격도 넉넉한 편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가독성이 유난히 좋은 책이었다. 내가 같은 직종이어서 그런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쭉쭉 잘 읽히는 책이라 권해주기에도 부담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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