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3년 만에 팀 오브라이언 작가의 <줄라이, 줄라이>를 다시 펼쳤다. 한 140쪽 정도 읽었었나. 나머지는 단 이틀 만에 다 읽었다. 나의 책읽기는 그런 것이다. 사실 앞 부분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뭐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3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서 완독에 성공했다. 뿌듯하다. 그리고 팀 오브라이언의 <카차토를 찾아서>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 책은 5년 전에 산 책이더라.
서른 번째 다턴 홀 대학동창회(1969년 동창들)를 기념해서 만난 친구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68혁명세대이자, 베이비부머 세대인 미국의 청년들에게 1960년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동시에 지구 저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베트남 전쟁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문득 오래 전에, 보스턴에서 만났던 베트남전 참전 베테랑 노숙자 아저씨의 말이 기억이 났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징집되어 베트남에 파병되었는데, 소싯적 친구들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서 복귀하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그의 삶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고. 전쟁은 그런 것이다.
빌리 맥맨은 1969년 7월 1일인가 징집을 피해 캐나다 위니펙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면서 캐나다 시민이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아가씨와 결혼해서 살았다. 그가 행복했을까? 아니다. 빌리는 미국 고향에 자신의 애인 도러시 스타이너가 있었다. 도러시는 빌리를 따라 위니펙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고향에 남아 론과 결혼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유방암에 걸려 자신의 한쪽 가슴을 절제하기 전까지는. 과연 도러시는 빌리에게 어떤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빌리의 아내는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아내를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당사자가 자신의 회사에 취직해서 그 사실을 고백한다. 그녀와 썸을 타기도 하지만, 둘의 관계는 잘 이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상처를 가해자에게서 속죄하듯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설사 둘이 다시 연애 혹은 결혼 관계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목사님 폴렛 하슬로는 유부남을 사랑했다. 나중에 사랑하는 남자가 죽은 뒤, 자신이 그에게 보냈던 편지를 되찾으러 남의 집에 불법으로 침입했다가 일자리와 명성 모두 잃게 된다. 그것도 과연 그럴 만했던 행동이었을까? 그런 불법적인 행동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다가 오기 마련이다. 고인의 미망인에게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을까. 그냥 도덕적으로 그러면 안될 텐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닐까. 사랑했지만 선을 넘지 않았으니 그냥 인정해 주어야 하나.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정말 무 자르듯 그렇게 딱 떨어지는 관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죽은 친구 둘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은 살해되었고, 또다른 치과의는 불륜 상대와 몰래 여행을 떠났다가 익사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가정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결국 나중에 엘리는 자신의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 놓는다. 그렇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으면서 속죄를 하고, 고뇌로부터 벗어나는데 성공하지만 남편의 용서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캐런 번스는 살해당했다고 하던데, 내가 3년 전에 읽은 부분에 나오던가. 조금 궁금해져서 다시 찾아보고 싶긴 한데 또 귀찮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데리고 멕시코 여행에 나섰다가 알고 보니 버스 드라이버가 무언가 석연찮은 밀수업에 종사한다는 걸 알게 되었던가. 치매기 있는 어르신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죽일 거라고 계속해서 떠들어 대고 말이지. 아니 진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었나.
문득 팀 오브라이언들이 들려주는 베트남전쟁이라는 일대 사건을 정통으로 관통한 미국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중년에 접어들어 겪는 위기들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아니 어쩌면 젊어서 읽었다면 그네들의 감정선에 도달하지 못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런 걸 보면 책과의 만남도 어느 정도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줄라이, 줄라이>도 무려 3년을 묵혔다가 그렇게 다시 만나지 않았던가.
데이비드 토드는 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귀향했다. 그런 그와 결혼한 말라 뎀프시. 그 둘이 과연 행복했을까? 경제적 곤궁을 데이비드의 가구 사업을 돌파하는데 성공했지만, 데이비와 말라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데이비는 자신의 다리와 죽은 친구들을 베트남 정글에 두고 왔다고 해야 할까. 당사자가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데이비를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빗자루와 대걸레 사업을 하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이혼남 마브 버텔은 새로 사귀게 된 여자친구에게 하필이면 자신이 소설가라는 허풍을 떨었던가. 한 번 시작한 거짓말은 모름지기 되돌리기가 어렵다. 완벽하게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거짓말에 거짓말을 보태야 한다. 뚱보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마텔은 완벽한 거짓말의 노예가 되어 살이 걷잡을 수 없이 그렇게 빠진다. 적당한 무명작가를 팔 것이지, 말도 안되게 자신을 유명 작가로 포장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그야말로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더 매혹적이란 말이지.
팀 오브라이언의 <줄라이, 줄라이>를 다 읽고 나서 역시 나는 산 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다 읽는다는 나만의 원칙을 고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뿌듯했다. 왠지 언제 여유가 된다면, 언제고 다시 한 번 읽어야 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