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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와서 느끼는 이 미묘한 감정은 울며 이별했던 그 감정들이 아주 찰나의 감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은 분명 진심이지만, 진심이라기엔 아주 찰나에 불과한 진심이었던 것이다.
- P36
나는 우리 사이의 그런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나의 미운 마음을 숨기기에 딱 좋은 관계였기때문이다. 그런데 혜란이 내게 속삭이듯 석이의비밀을 털어놓은 순간,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바로 그 마음, 미운 마음이 불쑥 솟아 올라왔다. - P48
"누군가의 죽음에 그렇게 쉬운 방식으로 비극과 우연이라는 단어를 맥락 없이 갖다 붙이면서 단순한 사고라고 얘기해버리는 게 너무 의아해."
- P61
결국 나와 혜란의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석이의 마음과 고통을 함부로 가늠하려고 했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이해하는 것과 가늠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20대를 훌쩍 지나 30대가 되어버린 석이가 이전과 어떻게 다른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렸을지 이해하려 애쓴 적이단 한 번도 없었다. 
- P65
저한테 그런 말을 했거든요. 때때로 잊히지 않는 것이 바로 영원이라고.
- P66
그러니까 기억을 추적하는 과정은 고통 그 자체이지만, 그 고통 너머에 존재하는 희미한 마음이 있다. 건너보는 마음, 살펴보는 마음, 그 기억을 안고 내일을 살기 위해 다짐하는 마음들. 
- P69
나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던 것들이 최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기억. 그 기억은 집요하게 파고들수록 쪼개져 나를아프게 했다. 하지만 파고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잊을 수는 없으니까. 기억하지 않으면 그냥 잊어버리겠다는 것인가? 엄마가 그토록 두려워한 것이 영영 잊히는 것이었는데.
- P70
그러니까, 산다는 게 어떻게 보면 그 자체로 무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혜란이 말했다.
"사실, 나도 내 삶을 누군가에게 짐 지운 채로 평생을 살아왔어."
- P83
그러자 석이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믿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고. 죽은 사람이 좋은곳에 간다고 믿어야만 산 사람이 살 수 있는 거라고, 나는 그 말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다. 
- P93
내가 묻자 석이는 웃으며 어깨를 들썩거리며 말했다.
"평생 모른 채 살고 싶으니까."
나는 그제야 이들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P101
알고 보니 석이는 다른 사람에게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함부로 그것을티 내지 않았다.
"나는 어떤 일이건 간에 깊게 몰두하는 경향이있어. 그러니까, 온 마음을 쏟는다는 뜻이야."
- P104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절실한 만큼 쉬쉬하기에 바빴다. 훗날의 관계를 위해서는 우리가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됐음을 그때는 몰랐다.- P110
"나는 슬픔을 믿을 거야."
처량하고 처절하고 절실한 것들을 믿을 거야.
- P113
한 사람의 궤적이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이라고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궤적은 온 사람의 궤적이되고 그 궤적은 종내 알 수 없는 문양을 한 채로 우리 모두를 잡아끈다. 나는 지금 그 궤적의 현장을바라보고 있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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