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신용과 가공 자본
신용 제도 및 신용 화폐 등을 포함한 제반 수단에 관한 상세 분석은 본 고찰의 범위를 상회한다. 본 장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일반을 규정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요점만을 강조하고자 한다. 따라서 분석의 대상은 상업 신용과 은행 신용에 국한되며, 신용 체계의 발달과 공공 신용의 전개 사이의 상관관계는 논외로 한다.
지불 수단으로의 화폐 기능 및 그에 따른 상품 생산자와 거래 업자 간 채권·채무 관계의 형성 과정은 이미 제Ⅰ권 제3장 제3절 b에서 규명된 바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상업이 유통을 목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신용 제도의 자연 발생적 기초는 점차 확대·일반화되며 완성 단계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화폐는 주로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 곧, 상품은 즉각적인 화폐 교환이 아닌 특정 기일의 지불 약속과 교환되며, 이러한 지불 약속의 총체를 환어음이라 칭한다. 환어음은 지불 만기일까지 그 자체로 지불 수단 역할을 수행하며 실질적인 상업 화폐를 구성한다. 또한 채권과 채무의 차액 결제로부터 상쇄되는 범위 내에서는 실질적인 화폐로 전환되지 않더라도 절대적인 화폐 기능을 수행한다.
생산자와 상인 간의 이러한 상호 대부는 신용의 실질적 기초가 되며, 그 유통 수단인 환어음은 은행권과 같은 진정한 신용 화폐의 근간을 이룬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신용 화폐는 금속 화폐나 정부 발행 화폐의 유통이 아닌, 환어음 유통에 그 근거를 둔다.
요크셔의 은행가 리삼은 저서 『통화에 관한 편지』(1840)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839년 한 해 동안 유통된 환어음 총액은 5억 2,849만 3,842파운드에 달했으며, 이 중 외국 환어음의 비중을 약 1/5로 추산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발행되어 특정 시점에 동시에 유통된 환어음 잔액은 1억 3,212만 3,460파운드 규모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56)
‘환어음은 유통 수단의 기타 모든 구성 요소를 합산한 금액보다 더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3)
‘이 거대한 환어음 체계는 은행권과 금의 총액으로 이루어진 기초 토대 위에 구축된 신용의 상부 구조이며 (!), 경제 상황의 변동으로 인해 이 토대가 과도하게 위축될 경우 환어음의 신뢰성과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구조적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8)
‘통화 총액 (엥겔스: 은행권 발행 총액을 의미)과 잉글랜드 은행 및 여타 지방 은행들의 요구불 부채를 합산한 총규모는 약 1억 5,300만 파운드로 추산된다. 해당 부채는 법률상 금 태환이 보장되어 있으나, 실제 태환 청구에 대비하여 보유 중인 금 준비금은 1,400만 파운드에 불과한 실정이다.’ (11)
‘환어음은 화폐 과잉을 방지하거나 저금리 및 저할인율에 따른 환어음의 과도한 창출과 위험한 팽창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 외에는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는다.
실질적인 매매 거래에서 발생한 진정 어음과, 기존의 환어음을 결제하기 위해 발행되는 가공적 융통 어음, 곧, 통화 창출에서 가공 자본을 형성하는 어음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명확하다. 특히 화폐 공급이 과잉되어 자금 확보 비용이 저렴한 시기에는 이러한 가공적 환어음이 방대한 규모로 증폭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43-44)
보상케트는 저서 『금속 통화·지폐·신용 통화』(1842)에서 런던 은행업자들이 만기 어음과 수표를 상쇄 결제하는 어음 교환소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업일 기준 어음 교환소에서 결제되는 일평균 지불액은 300만 파운드를 상회하나, 이를 위해 실제 소요되는 일일 화폐 준비액은 20만 파운드에 불과하다.’ (86)
‘(엥겔스: 1889년 어음 교환소의 연간 총 교환액은 76억 1,875만 파운드에 달했으며, 이를 연간 약 300일의 영업일로 환산할 경우 일평균 교환액은 2,550만 파운드에 이른다.) 이처럼 환어음은 이서를 거쳐 소유권을 이전시키는 과정에서 화폐 체계로부터 독립된 고유의 유통 수단으로 기능을 수행한다.’ (92)
‘유통 중의 각 환어음이 평균 2회의 이서를 거친다고 전제할 때, 개별 환어음은 만기 도래 전 두 차례의 지불 수단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전제하에 1839년 한 해 동안 환어음은 이서 행위만으로 총액 5억 2,800만 파운드의 두 배인 10억 5,600만 파운드 규모의 소유권을 이전시켰으며, 이는 일평균 300만 파운드 이상의 가치 이전에 해당한다. 결과적으로 예금과 환어음은 현실적 화폐의 매개 없이 소유권을 이전시키면서, 매일 최소 1,8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실질적 화폐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93)
투크 (1844)는 신용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신용이란 가장 단순한 의미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하며, 이러한 신뢰에 근거하여 자본 (화폐 또는 특정 화폐 가치로 평가된 상품)이 일정 기간 타인에게 위탁되고 만기 시 상환되는 체계를 의미한다. 자본이 화폐 (은행권, 당좌 대월, 지불 명령서 등)의 형태로 대부될 경우, 자본 사용에 대한 대가로 일정 비율의 이자가 상환액에 부가된다. 반면, 자본이 상품 형태로 대부될 때는 당사자 간 확정된 상품의 화폐 가치를 바탕으로 판매가 이루어지며, 상환액에는 만기까지의 자본 사용료과 위험 수수료가 포함된다. 이러한 신용 거래 시에는 통상적으로 만기일이 명시된 지불 약속서가 발행된다. 양도되는 이 지불 약속서는 대부자가 만기 전 자본을 운용하고자 할 때, 타 서명자의 신용이 더해져 자신의 신용이 보강되면서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차입하거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된다.’ (87)
코클랭 (1842)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일국 내 신용 거래의 대다수는 산업 영역 내부에서 전개된다. 원료 생산자는 제조업자에게 원료를 대부하며 특정 만기일이 명시된 지불 약속서를 수취한다. 해당 제조업자는 가공 공정을 거친 후, 후속 공정을 담당하는 다른 제조업자에게 비슷한 조건으로 다시 대부한다. 이와 같은 신용의 연쇄는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도매상 역시 제조업자나 중개인으로부터 상품을 대부 받아 소매상에게 다시 대부하는 구조를 취한다. 곧, 산업계의 모든 주체는 화폐 또는 상품의 형태로 차입과 대부를 병행하며, 이 과정에서 온갖 방향으로 결합되고 교차하는 대부의 교환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신용의 발달은 이러한 상호 대부의 체계적 확대와 발전을 의미하며, 바로 이 지점에 신용의 실질적인 동력이 존재한다.’ (797)
신용 제도의 또 다른 국면은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하에서 상품 거래업과 병행하여 발달한 화폐 거래업과 맞물려 있다. 제4편 제19장에서 규명한 바와 같이, 개별 사업가의 예비금 보관, 화폐의 수납 및 지불, 세계 결제의 기술적 사무, 금덩이 거래 등은 화폐 거래 업자에게 집중된다. 이러한 업무와 병행하여 신용 제도의 또 다른 축인 이자 낳는 자본, 곧 화폐 자본의 관리가 화폐 거래 업자의 특수한 기능으로 분화된다.
이에 따라 화폐의 차입과 대부는 화폐 거래 업자의 고유한 업종으로 확립되며, 그는 실질적 대부자와 차입자 사이를 중개하는 매개자로 부상한다. 이 관점에서 은행업자의 역할은 분산된 대부용 화폐 자본을 대량으로 집적하는 것이며, 개별 대부자를 대신하여 모든 대부자의 대표로 산업 및 상업 자본가를 상대하는 것이다.
곧, 은행업자는 화폐 자본의 일반적 관리자로 기능한다. 동시에 그는 산업계 전체를 대리하여 차입을 수행하면서 모든 대부자에 대하여 차입 창구를 단일화한다. 결국 은행은 화폐 자본과 대부자의 집중을 대표하는 한편, 차입자의 집중 또한 체계화한다. 일반적인 은행 이윤은 대부 시 적용하는 이자율보다 낮은 이율로 자금을 차입하면서 발생하는 차익에 근거한다.
은행이 운용하는 대부 자본은 크게 세 가지 경로로 유입된다.
첫째, 은행은 산업 자본가의 출납 업무를 대행하면서 생산자와 상인이 준비금 또는 지불금으로 보유하는 화폐 자본을 집중시킨다. 이러한 자금은 은행에서 대부되는 화폐 자본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개별 사업계의 준비금은 공동의 준비금으로 집적되어 필요 최소한도로 최적화되며, 개별적으로 유휴 상태에 머물렀을 화폐 자본의 일부가 대출을 거쳐 이자 낳는 자본으로 기능하게 된다.
둘째, 화폐 자본가들이 예치한 예금이 은행의 대부 자본을 형성한다. 은행 제도가 고도화되고 예금 이자가 지급됨에 따라, 모든 계급의 화폐 저축과 일시적 유휴 자금이 은행으로 집중된다. 개별적으로는 화폐 자본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소액 자산들이 결합하여 거대한 화폐적 위력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소액 자본의 집합은 은행 제도의 특수한 기능으로, 진정한 화폐 자본가와 차입자 사이를 중개하는 매개적 기능과는 구분되는 성격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점진적으로 소비되는 성격의 수입 또한 예금의 형태로 은행에 유입되어 대부 자본의 원천이 된다.
실질적인 상업 신용만을 고찰의 대상으로 할 때, 대부는 어음 할인으로 어음을 만기일 이전에 화폐 자본으로 전환하거나 다음과 같은 각종 방식으로 실행된다. 여기에는 개인의 신용도에 기초한 직접 대출을 비롯하여 이자 낳는 증권, 국채, 주식 등 유가 증권을 담보로 하는 대부, 그리고 선하 증권, 창고 증권 등 상품 소유권을 증명하는 서류를 담보로 하는 대부가 포함된다. 아울러 당좌 대월 또한 이러한 대부 체계의 주요한 방식을 구성한다.
그런데 은행업자가 제공하는 신용은 각종 형태를 취한다. 여기에는 타 은행 앞 어음과 수표, 신용 한도의 설정, 그리고 발권 은행의 경우 해당 은행의 은행권이 포함된다. 은행권은 본질적으로 은행업자가 개인 어금을 대신하여 발행하는 일람불 어음에 불과하다. 이러한 신용 형태인 은행권은 일반 대중에게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신용 화폐가 상업적 유통만이 아니라, 일반 유통 영역에서 실질적인 화폐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수의 국가에서 은행권을 발행하는 주요 은행들은 국립 은행과 민간 은행이 결합된 형태를 띠며 국가 신용을 담보로 하기에, 그 발행권은 통상 법화로의 지위를 갖는다. 이 과정에서 은행권이 유통되는 신용의 징표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은행업자의 업무 본질이 신용 취급에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그러나 은행업자는 현금 예탁금을 대부하는 행위 외에도 여타 각종 형태의 신용을 병행하여 운용한다. 실질적으로 도매 거래에서 환어음이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비교할 때, 은행권은 소액 결제를 위한 보조적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예금이 은행업에서 항상 가장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스코틀랜드의 은행 체계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사례를 제공한다.
특수한 형태의 은행을 비롯한 여타 신용 기관들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본 논의의 목적상 생략한다.
‘은행업자의 업무를 다음과 같은 두 영역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자본의 유통으로, 유휴 자본을 수집하여 실질적인 자본 수요자들에게 분배 및 이전시키는 기능이다. 이는 자본의 집중과 분배라는 측면을 포괄한다.
둘째는, 통화 (유통 수단으로 화폐)의 유통으로, 고객들의 수입에서 기인한 예금을 관리하며 그들의 소비 지출 수요에 맞추어 지불을 수행하는 기능이다. 이는 주로 특정 지역의 목적을 위한 통화 관리와 직결된다.’ (투크, 1844: 36, 37)
(엥겔스: 해당 논의는 제28장에서 재차 다루어질 예정이다.)
『상업 불황에 관한 비밀 위원회 제1차 보고서』 (1848, 이하 『상업 불황, 1847-1848』) 의 증언 기록에 따르면, 1840년대 런던의 환어음 할인 시장에서는 은행권 대신 특정 은행이 타 은행을 지급인으로 하여 발행한 21일 만기 어음이 빈번하게 통용되었다 (지방 은행가 피즈의 증언, 제4636호 및 제4645호).
해당 보고서는 화폐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은행업자들이 이러한 종류의 어음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관습화되었음을 지적한다. 고객이 실물 은행권을 필요로 할 경우 해당 어음을 재할인해야 했으며, 이는 은행 측에 사실상의 화폐 창출 특권을 부여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존스 로이드 은행은 화폐 부족으로 이자율이 5%를 상회할 때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불을 이행해 왔으며, 고객들은 개인 어음보다 공신력이 높은 은행 발행 어음을 선호하여 이를 기꺼이 수용하였다. 이러한 은행업자 발행 어음은 유통 과정에서 때때로 20-30인의 이서를 거치며 폭넓게 사용되었다 (같은 보고서: 제901-905호, 제992호).
이러한 신용 형태들은 모두 지불 청구권의 이전을 이룬다.
‘신용이 어떠한 형태로 제공되든 화폐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그 형식이 은행권이든 환어음 또는 은행 수표이든 그 본질적 과정과 결과는 동일하다.’ (풀라턴, 1845: 38)
‘은행권은 소액 거래를 위한 신용 수단이다.’ (51)
다음은 길바트 (1834)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은행의 운용 자본은 투하 자본과 차입 자본으로 구분된다.’ (117)
‘은행 자본 중 차입 자본을 수입하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예금의 수취, 둘째는 은행권 발행, 셋째는 어음 발행이다. 예컨대 무상으로 100파운드를 대부 받아 이를 타인에게 연 4%의 이율로 다시 대부할 겨우 4의 이익이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은행이 발행한 지불 약속서를 고객이 수용하고, 연말에 그 대가로 4%의 이자를 지불하며 이를 반환한다면 은행은 동일한 수익을 얻는다. 또한 고객이 21일 후 특정 지점에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자금을 예치할 경우, 해당 기간 발생하는 모든 이자 수익은 은행의 이윤이 된다. 이는 예금, 은행권, 어음으로 은행 자본이 창출되는 과정과 은행 업무의 실질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117)
‘은행업자의 이윤은 통상 자신의 은행 자본, 곧 차입 자본의 규모에 비례하여 결정된다. 실질적인 은행 이윤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총이윤에서 투하 자본에 대한 기회비용 이자를 공제해야 하며, 그 잔액이 비로소 순수한 의미의 은행 이윤을 구성한다.’ (118)
‘기본적으로 은행업자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대부는 타인의 화폐 자본을 매개로 실행된다.’ (146)
‘은행권을 직접 발행하지 않는 은행업자들은 어음 할인 업무에서 은행 자본을 형성하며, 특히 이러한 할인 업무를 예금 증대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일례로 런던의 은행업자들은 자사에 예금 계좌를 보유한 상사들을 대상으로만 할인 기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예금을 유도한다.’ (119)
‘거래 은행에서 어음을 할인받고 액면가 전체에 대해 이자를 지불한 상사들은 대출금의 일부를 무이자로 은행에 예치해 두어야 한다. 이러한 관행으로 은행업자는 실제 대출된 화폐에 대해 명목 이자율보다 높은 실질 이자율을 적용받게 되며, 고객의 수중에 남겨진 예탁금 잔액만큼 추가적인 은행 자본을 확보하게 된다.’ (119-120)
준비금의 절약과 예금 및 수표의 기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예금 은행은 예금 계좌 간 이체 원리에 따라 유통 수단의 사용을 획기적으로 절약하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체계는 최소한의 현금 화폐만으로도 방대한 규모의 거래 결제를 실현하며, 이 과정에서 유휴 상태에서 벗어난 화폐는 은행의 대부나 할인 등 다양한 경로를 거쳐 다시 자본으로 투입된다. 결과적으로 계좌 이체 원리는 예금 제도 전반에 걸쳐 자본 운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123)
‘거래 당사자들이 동일한 은행을 이용하는지 또는 서로 다른 은행을 이용하는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은행 간 구축된 어음 교환소에서 수표를 상호 교환하면서 결제가 완결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좌 이체에 기반한 예금 제도가 고도화되면 금속 화폐의 실물 사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경제 주체 모두가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모든 지불을 수표로 이행한다면, 수표는 유일한 유통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수표의 가치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은행 체계 내에 실질적인 화폐가 존재한다는 전제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124)
지역 내 금융 거래가 은행 체계로 집중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점망의 확충으로 이루어진다. 지방 은행은 해당 지역 내 소도시들에 지점을 개설하고, 런던의 은행들 역시 런던 각 구역에 지점을 배치하면서 자금 유입 경로를 넓힌다.
둘째, 대리점 제도를 활용한다.
‘각 지방 은행은 런던에 대리인을 두어 해당 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이나 어음의 결제를 수행하며, 런던 거주자가 지방 거주자의 계좌로 송금하는 자금을 수령하는 창구로 활용한다. 은행은 고객들이 예치하는 화폐를 흡수하여 자본을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한 자금의 집중과 융통이 완성된다.’ (127)
‘개별 은행업자는 타 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을 수납하되 이를 재발행하지는 않는다. 대도시의 은행업자들은 정기적으로 회합하여 각자 보유한 타행 은행권을 상호 교환하며, 발생한 차액은 런던 앞 어음으로 결제한다.’ (134)
‘은행업의 본질적 목적은 거래의 편의성을 제고하는 것이나, 이러한 편의성은 필연적으로 투기를 촉발하는 여견을 형성한다. 실질적 거래와 투기는 매우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어 두 영역의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은행의 존재로 인해 자본 융통이 용이해지고 이자율이 낮아지면 이는 투기를 유인하게 되는데, 이는 생필품의 가격 하락이 과도한 소비를 유발하는 이치와 같다.’ (137, 138)
‘발권 은행이 해당 은행의 은행권으로 지불을 이행함에 따라 할인 업무 전체가 발행 자본에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이와 다르다. 은행업자가 모든 할인 어음에 대해 은행권을 발행하더라도, 수중에 보유한 어음의 90%는 실질적 자본을 대표할 수 있다. 이는 발행된 은행권이 어음의 만기 도래 전이라도 즉시 환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음의 만기가 3개월 남았더라도, 지불 수단으로 나간 은행권은 불과 3일 만에 현금 교환을 위해 은행으로 환수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172)
‘당좌 대월은 은행 업무의 일반적인 형태이며, 사실상 당좌 예금 계좌가 개설되는 주요 목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월은 개인의 신용 보증뿐만 아니라 유가 증권 예탁을 담보로 하여 제공된다.’ (174, 175)
‘상품을 담보로 제공되는 대부 자본은 어음 할인과 동일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다. 특정인이 상품을 담보로 100을 차입하는 것은, 해당 상품을 100 상당의 어음을 받고 매각한 뒤 그 어음을 그 어음을 은행에서 할인받는 것과 실질적으로 같다. 이로부터 차입자는 상품을 즉시 처분하지 않고 시장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보유할 수 있으며, 자금 마련을 위한 급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회피하게 된다.’ (180-181)
『통화 이론 검토』 (익명의 저자. 1845: 62, 63)에서 인용한다.
‘오늘 특정인 A가 은행에 예금하는 1,000파운드는 다음 날 재발행되어 B에게 예금되고, 다시 그다음 날 C에게 예금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순환될 수 있다. 이처럼 동일한 1,000파운드의 화폐는 일련의 이전 과정을 거치며 그 한계를 규정할 수 없는 방대한 예금 총액을 창출한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총예금 중 90%는 개별 은행업자의 장부상 기록일 뿐, 실체적 화폐를 수반하지 않을 수 있다. 일례로 스코틀랜드의 경우 통화량은 300만 파운드 수준이었으나 은행 예금액은 2,700만 파운드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전반적인 대량 예금 인출 사태 (뱅크런)가 발생하지 않는 한, 동일한 1,000파운드는 반대 경로에서도 거액의 채무를 손쉽게 결제할 수 있다. 이 화폐가 각 경제 주체와 은행 사이를 끊임없이 순환하며 수많은 채무를 연쇄적으로 결제하면서 거대한 규모의 예금액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엥겔스: 길바트가 1834년에 이미 지적하였듯, ‘거래의 편의성을 제고하는 모든 기제는 투기의 용이성 또한 동시에 강화한다. 거래와 투기는 특정 국면에서 극도로 밀착되어 있어 사실상 두 영역을 구분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아직 판매되지 않은 상품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하기가 용이해질수록 이러한 대부 수요는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단순히 화폐 자본을 획득할 목적으로 상품을 제조하거나 이미 생산된 상품을 원거리 시장에 투매하려는 시도가 더욱 빈번해진다. 일국의 산업계 전체가 이와 같은 투기적 경향에 매몰되는 과정과 그로 인한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1845-1847년의 영국 상업사가 전형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이는 신용 제도가 발휘할 수 있는 위력과 그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구체적 실례를 고찰하기에 앞서, 몇 가지 예비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1837년 이래 지속된 영국 산업의 불황은 1842년 말부터 완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2년간 영국 공산품의 수출 수요는 비약적으로 증대되었으며, 1845-1846년에는 최고의 번영기에 진입했다. 특히 1843년 아편 전쟁의 결과로 영국 무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시장이 개방되자, 그중에서도 면공업의 확장에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했다. 당시 맨체스터의 한 공장주가 3억 인구의 의복 수요를 언급하며 생산 과잉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강변할 정도로 장밋빛 환상이 팽배했다.
그러나 공장 건물, 증기 기관, 방적 및 제직 설비의 무분별한 신설조차 랭커셔 지방으로 유입되는 막대한 잉여 가치를 완전히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산 확대에 투입되던 열망은 곧 철도 건설 투기로 이전되었고, 1844년 여름에 이르러 공장주와 상인들의 투기 열풍은 절정에 달했다.
철도 주식은 1회 차 납입금을 감당할 화폐만 있다면 한계치까지 인수되었으며, 후속 납입은 추후 방책이 마련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진행되었다! 하지만 실제 납입 시기가 도래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상업 불황, 1848-1857』 (질문 제1059호)에 따르면 1846-1847년 사이 철도에 투입된 자본은 7,500만 파운드에 육박했으며, 투자자들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동시에 본업인 면공업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본업 또한 이미 과중한 부담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 높은 이윤에 매료되어 영업 규모를 가용 유동성 자산의 범위를 상회할 정도로 무리하게 확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용은 저렴하고 입수가 용이했다.
잉글랜드 은행의 할인율은 1844년 1 3/4-2 3/4% 수준이었고, 1845년 10월까지 3% 미만을 유지하다가 1846년 2월 일시적으로 5%까지 상승한 뒤 그해 12월 다시 3 1/4%로 하락하였다. 잉글랜드 은행은 전례 없는 규모의 금 준비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국내 주식 시세 역시 미증유의 고점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속히 사업에 착수하고자 했다. 영국 제품을 열망하는 해외 시장에 생산되는 모든 상품을 투입하고, 극동 지역에서의 면제품 판매 이윤과 그 대가로 획득한 수입품을 영국 내에서 재판매하여 발생하는 이중의 수익을 독점하려 했던 것이다.
대부를 기반으로 인도와 중국에 대량의 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제도가 고착화되었으며, 이는 점차 자금 마련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형적인 위탁 판매 체제로 변모했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시장의 대규모 공급 과잉과 파국을 야기했다.
파국은 1846년의 흉작을 기점으로 폭발하였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는 밀과 감자 등 식량의 대규모 수입이 불가피했으나, 공급국에 공산품으로 지불할 수 있는 비중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결국 귀금속으로 결제가 강제되면서 최소 900만 파운드의 금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이 중 750만 파운드가 잉글랜드 은행의 금 준비금에서 유출됨에 따라 화폐 시장 내 잉글랜드 은행의 운신 폭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잉글랜드 은행에 준비금을 예치하던 여타 은행들 역시 신용 공급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고, 원활했던 결제 순환은 전방위적인 정체 국면에 진입했다. 1847년 1월 3-3.5% 수준이던 잉글랜드 은행 할인율은 제1차 공황이 발발한 4월에 7%까지 치솟았다. 여름철 일시적인 완화세가 있었으나, 연이은 흉작으로 인해 공황은 더욱 격렬하게 재차 발발하였다. 11월에는 공정 최저 할인율이 10%에 달하며 어음 할인 자체가 거부되거나 극도로 높은 이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제 정체는 주요 기업과 수많은 중소 사업체의 연쇄 파산을 불러왔고, 잉글랜드 은행 역시 1844년 은행법이 부과한 경직된 규제로 인해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자본』 제34장 ‘통화주의와 영국의 1844년 은행법’ 참조) 이에 정부는 1847년 10월 25일 은행법의 효력을 정지시켜 법적 규제를 완화했다. 은행권 발행의 재량권을 확보하고 국부적 신뢰를 바탕으로 유동성을 공급하자 화폐 부족 사태는 결정적으로 진정되었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기업들의 파산은 계속되었으나 공황의 정점은 지나갔으며, 12월 할인율은 5%로 하락했다. 1848년부터 재개된 사업 활동은 1849년 유럽 대륙의 혁명 운동을 잠재우며 1850년대에 이르러 미증유의 산업 번영으로 이어졌으나, 이는 다시 1857년의 파국으로 수렴하게 된다.
(1) 1847년 공황기 국채 및 주식의 가치 하락에 대해서는 1848년 상원 보고서가 상세히 밝히고 있다. 1847년 2월 대비 동년 10월 23일 기준 감가액은 다음과 같다.
· 항목: 영국 국채, 하락 금액 (파운드): 93,824,217파운드
· 항목: 부두 및 운하 주식, 하락 금액 (파운드): 1,358,288파운드
· 항목: 철도 주식, 하락 금액 (파운드): 19,579,820파운드
합계: 114,762,325파운드
(2) 동인도 (현 인도) 무역에서 나타난 기만적 금융 관행, 곧 실질적 상품 판매가 아닌 할인 및 현금화를 목적으로 어음을 발행하는 수법에 관해 『맨체스터 가디언』 (1847년 11월 24일 자)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런던의 상사 A는 중개인 B를 매개로 맨체스터의 제조업자 C로부터 동인도의 D에게 송부할 상품을 구매한다. B는 C가 자신을 지급인으로 하여 발행한 6개월 만기 어음으로 대금을 지불하며, 동시에 A가 자신 앞으로 발행한 6개월짜리 어음으로 대가를 수령한다. 상품이 선적되는 즉시 A는 선하 증권을 근거로 인도 측 수하인 D를 지급인으로 하는 6개월 만기 어음을 발행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상품 판매자와 발송인는 실제 대금 결제 시점보다 수개월 앞서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소위 장기 거래에서는 어음 만기 시 회수 기간 연장이 상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거래에서 손실이 발생할수록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투기 규모를 오히려 확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당사자들의 재정 상태가 악화될수록 이전의 투기 손실을 새로운 대부로 보전하려는 구매 행위가 반복되었고, 이 시점의 구매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아닌 파산 직전 기업의 금융 연명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이는 사태의 일면에 불과하다. 국내에서의 수출과 관련 변칙 거래는 해외에서의 원료 구입 및 선적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런던 상사와의 어음 할인이 가용한 인도 상사들은 설탕, 인디고, 비단, 면화 등을 매입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구매의 동기는 런던 시장의 시세에 따른 이윤 기대가 아니라, 곧 만기가 도래하는 런던 상사 앞 어음을 결제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있었다. 설탕을 구매한 후 런던 상사 앞으로 10개월 만기 어음을 발행하고 선하 증권을 런던으로 송부하면, 해당 상품이 공해상에 있거나 인도 연안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런던 롬바드가에서 담보로 활용되었다. 결과적으로 런던 상사는 어음 만기 8개월 전부터 화폐를 운용할 수 있었다. 할인 상사들이 충분한 단기 가용 자금 (콜자금)을 보유하여 선하 증권 및 창고 증권을 담보로 대부하고, 유명 상사 앞 어음을 무제한으로 할인해 주는 한 이러한 순환 구조는 외관상 차질 없이 유지되었다.’
(엥겔스: 이와 같은 사기적 수법은 상품이 희망봉을 우회하며 장기간 운송되던 시기에만 성립했던 유산이다. 현재는 수에즈 운하 개통과 기선의 도입으로 운송 기간이 단축되면서 가공 자본을 형성하던 시간적 토대가 상실되었다. 또한 전신의 발달로 영국과 인도의 시장 상황이 즉각 전달됨에 따라, 시세의 시차를 이용한 이러한 기만적 거래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3) 다음은 앞서 인용한 『상업 불황, 1847-1848』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1847년 4월 마지막 주, 잉글랜드 은행이 로얄 뱅크 오브 리버풀에 대해 할인 한도를 절반으로 축소한다고 통보함에 따라 심각한 자금난이 발생하였다. 당시 리버풀 내 결제 수단이 현금에서 어음으로 급격히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인수 어음 결제를 위해 다액의 현금을 예치하던 상인들은 시장 상황이 악화되자 현금 대신 면화 등 생산물 매각 대가로 받은 인수 어음만을 은행에 제출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었다. 상인들이 결제해야 했던 인수 어음은 주로 해외에서 그들 앞으로 발행된 것이었으며, 종래에는 생산물 판매 대금으로 이를 충당해 왔다. 그러나 현금을 대신하여 은행에 들어온 어음들은 그 종류와 만기가 매우 다양하였다. 그중에는 3개월 만기 은행 어음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으며, 대다수는 면화 거래와 관련된 환어음이었다. 이 환어음들은 런던의 은행업자나 상인, 또는 브라질, 미국, 캐나다, 서인도 제도 등과 거래하는 무역상들로부터 인수된 것들이었다. 리버풀 상인들 간의 상호 발행은 드물었으며, 주로 국내 고객들이 런던 은행이나 상사 등을 지급인으로 하여 발행한 어음으로 물품 대금을 결제하였다. 결국 잉글랜드 은행의 할인 제한 조치는 외국산 생산물 거래에 기반한 어음의 만기 구조를 강제로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26, 27)
1844-1847년 영국의 번영기는 전술한 바와 같이 최초의 대규모 철도 투기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해당 투기가 사업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해 『상업 불황, 1847-1848』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847년 4월경, 대다수 상사는 상업 자본의 상당 부분을 철도에 전용함에 따라 본업에 투입될 자금을 축소하기 시작하였다.’ (42)
‘개인과 은행업자, 보험 회사 등은 철도 주식을 담보로 연 8%에 달하는 고율의 대부를 실행하였다.’ (66)
‘막대한 자금이 철도에 묶이게 되자 상사들은 상업 활동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음 할인 등의 방식으로 은행 신용에 극도로 의존하게 되었다.’ (67)
‘질문: 철도 주식의 납입이 화폐 시장의 압박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시기별로 차이가 존재하는가.
답: 1847년 4월의 핍박 국면에서는 철도 납입금이 은행업자의 유동성을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측면이 있었다. 철도의 실질적인 공사 지출 속도가 자금 납입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에, 연초까지 대부분의 은행은 거액의 철도 자금을 예치금 형태로 보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상업 불황, 1848-1857』에 출석한 은행업자들의 수많은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이러한 철도 자금은 여름부터 점진적으로 고갈되어 12월 31일에 이르러서는 확연히 감소하였다. 결국 10월에 발생한 화폐 시장 핍박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철도 관련 유동성의 축소였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4월 22일에서 12월 31일 사이 은행 수중의 철도 자금 잔액은 약 1/3가량 급감하였다. 영국 전역에 걸친 철도 주식 납입 행위는 결과적으로 은행 예금을 점차 잠식하며 금융 체계 전반의 압박을 가중시켰다.’ (43, 44)
악명 높은 오브렌드 거니 상사의 사장 사뮤엘 거니 또한 이와 같은 증언을 남겼다.
‘1846년 중 철도 건설을 위한 자본 수요가 상당했음에도 이자율이 급등하지 않았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곧, 산재해 있던 소액 자금들이 철도 납입을 매개로 거액으로 집중되어 금융 시장으로 다시 유입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런던 시티의 화폐 시장에 투입된 총액이 인출된 금액을 상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59)
리버풀 조인트스톡 뱅크의 이사 호지슨은 은행의 준비금이 어느 정도까지 환어음으로 대체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은행은 수취한 예금 총액의 최소 90%와 타인으로부터 차입한 화폐 전부를 매일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어음 형태로 보유하는 관습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자산 구조 덕분에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매일 만기가 되어 현금화되는 어음 대금이 당일의 예금 지불 청구액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관리될 수 있었다.’ (53)
투기 어음의 유통 구조와 그 영향에 관한 증언은 다음과 같다.
‘면공장주 가드너에 따르면, 판매된 면화를 근거로 발행된 어음은 통상 상품 중개인 (브로커)를 거쳐 인수되었다 (제5092호).’
‘상인이 면화를 구매하여 중개인에게 위탁하면, 중개인을 지급인으로 하는 어음을 발행하여 이를 할인받는 방식이 활용되었다. 이러한 어음들은 리버풀의 은행뿐만 아니라 여타 금융 기관에서도 폭넓게 할인되었다. 가드너는 리버풀 은행들이 제공한 이러한 할인 혜택이 없었다면, 전년도의 면화 가격이 파운드당 1 1/2-2펜스나 급등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제5094호).’
‘리버풀의 은행업자 호지슨 역시 면화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식민지 생산물을 담보로 투기업자들이 발행한 거액의 어음이 유통되었음을 시인하였다 (제600호).’
‘그는 은행업자로 이러한 종류의 어음을 제한하려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적정한 규모 내에서라면 이를 매우 정당한 어음으로 간주하며 빈번한 만기 갱신 또한 용인하였다고 답변하였다 (제601호).’
1847년 동인도 및 중국 시장에서 성행한 기만적 금융 관행에 관하여 리버풀의 유력 상사 대표 찰스 터너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모리셔스 등지와의 무역 과정에서 중개인들은 입항한 상품의 선하 증권을 담보로 하여 해당 상품에 대해 발행된 어음을 결제하기 위한 대부를 받았는데, 이는 통상적인 상거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문제는 상품의 선적 전, 심지어 제조조차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 해당 물량을 담보로 대부를 받는 변칙적 행위가 빈번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캘커타에서 매입한 6,000-7,000파운드 규모의 어음 대금이 모리셔스의 설탕 재배 자금으로 투입된 사례가 존재한다. 해당 어음이 영국 본토에 도달했을 때 절반 이상은 인수가 거절되었는데, 이는 지불 자원으로 충당되어야 할 설탕이 선적되기도 전, 또는 제조 단계에서 이미 제3자에게 이중으로 담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78)
‘제조업자들이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상황은 런던에서 최소한의 신용을 확보한 구매자에게는 그리 중대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구매자는 할인율이 낮은 런던 금융 시장에서 어음을 할인하여 마련한 현금으로 제조업자에게 대금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수출업자가 인도로부터 판매 대금을 회수하기까지는 최소 12개월이 소요되나, 1만–1만 5천 파운드 정도의 자본만으로도 인도 무역에 참여하는 것이 충분하다. 이는 런던의 할인 상사와 1% 내외의 수수료로 대규모 신용 한도를 설정하면서 이루어진다. 수출 상품의 회수 대금을 해당 상사에 입금한다는 조건으로 어음이 발행되지만, 당사자들은 상사가 실제 현금을 대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묵인하고 있다. 곧, 상품 대금이 최종적으로 회수될 때까지 어음을 계속해서 갱신하는 구조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음들은 리버풀, 맨체스터, 런던 등지에서 폭넓게 할인되며, 상당수는 스코틀랜드 은행권으로 유입되어 자본화된다.’ (79)
‘최근 런던에서 파산한 한 기업의 감사 결과, 지사 간의 연쇄적인 어음 발행을 활용한 변칙적 자금 마련 방식이 드러났다. 해당 회사는 맨체스터와 캘커타에 각각 지사를 두고 런던 본사와 20만 파운드 규모의 신용 계좌를 설정하고 있었다. 맨체스터 지사가 캘커타로 상품을 위탁 판매하며 본사 앞으로 20만 파운드 규모의 어음을 발행하면, 동시에 캘커타 지사 역시 본사 앞으로 동일 금액의 어음을 발행할 수 있었다. 이후 캘커타 지사는 현지 상품 판매 대금으로 새로운 어음을 매입하여 본사에 송금하면서 초기 발행된 어음을 결제하였다. 이러한 순환 구조로 단일 거래만으로도 실체 없는 60만 파운드 규모의 가공 어음이 창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제786호).’
‘캘커타 지사가 영국행 화물 매입 시 런던 거래 은행을 지급인으로 하는 해당 은행 어음을 발행하고 선하 증권을 본사로 송부하면, 본사는 이를 담보로 롬바드가에서 즉시 대부를 실행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본사는 캘커타 지사가 실질적으로 대금을 결제하기 8개월 전부터 해당 자금을 가용할 수 있게 된다 (제971호). ’
(4) 1848년 상원 비밀 위원회는 1847년 발생한 경제 불황의 원인 조사에 착수하였으나, 해당 증언록은 1857년에 이르러서야 공표되었다 (『상업 불황에 관한 상원 비밀 위원회 보고서, 1848.』 이하 『상업 불황, 1848-1857』). 유니언 뱅크 오브 리버풀의 이사인 리스터는 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1847년 봄, 시장에서는 변칙적인 신용 팽창 현상이 목격되었다. 이는 사업가들이 기존의 사업 자본을 철도 투기로 전용하면서도, 본업의 규모를 종전 수준으로 유지하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초기 철도 주식 매각에 기대어 시세 차익으로 사업 자금을 보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으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종전 현금으로 결제하던 지점들에서 신용 대부에 의존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행태가 누적되며 급격한 신용의 팽창을 초래하였다 (제2444호).’
‘은행들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이들 어음은 특정 품목에 국한되지 않고 곡물, 면화, 설탕 등 각종 해외 생산물 전반에 걸쳐 발행되었다. 당시 석유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상품의 가격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였다 (제2500호).’
‘어음 인수업자들은 상품 가격 하락에 대비한 충분한 담보 가치나 보상 조건이 확보되지 않는 한 어음 인수를 거부하게 되었다 (제2506호).’
‘생산물에 기반하여 발행되는 어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해외 수출업자가 국내 수입 상인을 지급인으로 하여 발행하는 최초의 어음이다. 이러한 어음은 실물 자산인 생산물이 국내에 도착하기 전에 만기가 도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둘째는, 수입 상인이 상품 도착 후 이를 매각하기 전까지 중개인 (브로커)에게 담보로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중개인을 지급인으로 하여 발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어음이다. 이 과정은 주로 수입 상인이 충분한 가용 자본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이때 은행업자는 중개인이 실질적인 담보물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대부 금액이 가격 하락 등 잠재적 손실을 보전할 만큼 충분한 담보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제2512호).’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어음의 경우 그 실질적 정당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국외에서 영국 앞 어음을 매입하여 국내 상사로 송금하는 경우, 해당 어음이 실제 생산물 거래에 기초하여 적정하게 발행된 것인지 여부를 은행으로는 명확히 규명하기 어렵다 (제2516호).’
‘거의 모든 외국산 생산물이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며 거래된 근본적인 원인은 부당한 투기 자체보다는 대규모 수입과 소비 침체 사이의 격차에 기인한다. 공급량은 과도하게 유입된 반면, 이를 감당할 만한 실질적인 소비가 급격히 위축됨에 따라 시장의 전반적인 가격 붕괴가 초래된 것이다 (제2533호.)’
‘1847년 10월에 이르러 생산물 시장은 거래 자체가 사실상 중단된 마비 상태에 직면하였다 (제2534호). ’
이와 같은 파국의 정점에서 각 경제 주체가 각자도생하는 양상에 대해, 당대 최고의 금융 권위자였던 오버렌드 거니 상사의 새뮤엘 거니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공황이 심화되면 사업가는 보유한 은행권을 얼마나 유리하게 운용할 것인지, 또는 국고 증권이나 3% 통합 연금 국채 (콘솔)를 매각할 때 발생하는 1-2%의 손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해 개의치 않게 된다. 일단 시장이 공포에 잠식되면 이윤 극대화나 손실 최소화라는 득실 계산은 마비되며, 타인의 파산 여부와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유동성과 안전을 확보하는 데만 몰두하게 된다 (제1262호).’
(5) 영국과 인도 양국 시장이 상호 포화 상태를 야기하는 구조적 모순에 대해, 동인도 무역상 알렉산더는 『은행법 특별 위원회 보고서, 1857년』 (『은행법, 1857』로 약칭)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맨체스터에서 6실링을 투자하여 생산한 상품을 인도에 매각하면 5실링만을 회수하고, 반대로 인도에서 6실링을 투자하여 확보한 상품을 런던에서 처분하면 역시 5실링밖에 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제4330호).’
이는 결국 인도 시장은 영국의 과잉 생산물로 인해, 영국 시장은 인도의 과잉 공급물로 인해 각각 잠식되었음을 의미한다. 1847년의 가혹한 공황을 겪은 지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857년 여름, 양국 시장은 다시 한번 상호 파멸적인 과잉 공급의 늪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