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경제적 비효율성
지금까지 공학자들은 기계어에 대한 이해를 개념적으로 고찰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진법적 신호에 의한 '컴퓨팅'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그것이 미래형 사고에 입각하다는 발상에서 논의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프로그램 언어의 전반이 종교와 관련된 개념이라는 일부 지적은 기각된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 언어부터 파생된 부르주아적 정의 내에서 수용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로그램이란 단순히 '강령'이라는 번역이 아닌, 그것의 시스템이라는 지배 체제를 가동시키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언어는 기계의 언어가 아니라, 그것을 정의하기 위한 인간이 그것을 관념적으로 사고한 사상적 언어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일부로 잔존하여 '인지'라는 관념의 일부를 구성한다. 이는 용어 및 개념적 정의부터 상이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러한 차이가 동일한 것이라 간주했다. '짐승과 기계'의 연구부터 그것의 지배 논리의 질서를 인간에게 대입하며 사고된다고 보았으며, 그것의 오류 전반은 기계 수단에서 인공 수단의 진화로 변천하는 과정, 곧 생산 수단으로 확립된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컴퓨터를 가동시키는 전선들의 집합은 독일의 초기 가내 수공업인 면직물 공업에서 유래한 측면이 강하다. 실감의 조직적 구조가 옷감을 형성하듯이, 그러한 물질적 생산력의 기반이 지금의 기계적 사고를 이루는 자연 언어라는 점을 해명하지 못한 것이다.
초기 애플사의 컴퓨터는 이러한 혁신적인 상품을 발명하였다. 그것은 오락의 발전과 더불어, 밖에서 놀던 아이들을 모두 실내로 불러 교육적으로 통제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컴퓨터 이전 '텔레비전'의 생산은 '매체'의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부르주아지를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 있게 되었고, 자신들의 사유 재산을 정당화시키며 인간의 시각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사물이 되었다. IT 산업 및 반도체가 지금처럼 부흥하기 이전부터, 스티브 잡스, 스티븐 워즈니악, 빌 게이츠, 제프 베이소스, 젠슨 황 등과 같은 인물, 그 다음 세대의 샘 올트먼, 마크 주크버그, 다니엘 에크, 일런 머스크 등을 필두로 전개된 미국의 기술자 시절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게이브 뉴웰과 리처드 스톨먼은 기술진의 사태를 앞서 판단했다. 특히 리처드 스톨먼은 이러한 기술진의 사태에서 '모든 개인에게 자신만의 사이트가 보급될 것이라' 짧막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이트의 개발은 자본의 '부분적 유로화'에 따른 진입 장벽으로 인해 이러한 정부 접속 자체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현대의 인공 기술자들은 독일의 '디자인'의 다수에서 영감을 받아 상품에 적용시키고자 하였지만, 그것을 놀이로 대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들은 이마저도 자본의 놀음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기술적 발전에 따른 인간의 '뇌'를 탐구하였고, 뇌의 일정 기능을 통제하여 마비시킬 수 있다는 측면을 활용하여 더욱 강력한 인공 지능을 발달시켰지만, 그 자신의 수명 연장 기술과 더불어 그러한 인간의 미래 연구는 뇌 자체의 연구와 결합되어 그 발생적 구조가 복합적인 측면에서 사고된다. 곧 현대 인공 기술자들은 인간의 부정의 원인을 해명하고자 그것의 부정 자체를 '오류'로 단언하였다. CIA의 고문을 받던 카진스키는 결국 그 자신이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기술주의에 대한 우려를 강력하게 표명하였지만, 지금도 인공 지능 자체가 인간의 언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의 발생은 그것이 인공 지능의 수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성한 '가공 언어'로 판단되며 결국 그들의 주관을 물질 자체로 환원시키는 오류, 곧 기계적 유물론의 토대를 닦는다. 기계적 유물론이란 일부 부르주아 기술자들이 내재한 사고방식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의 기술적 우위보다, 그 자신의 무지를 서서히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더욱 깊은 오류를 내재한다.
이 지점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기술자가 아니라, '디자이너'라고 표현하였지만, 그는 결국 '디자인'을 상업화시켰다. 하물며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음에도, 정작 유럽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디자인 철학'을 기업가의 상업성에 활용하여 '애플'을 주도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그러한 업적을 스스로 다했다는 대중의 착각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금의 애플은 '바우하우스'보다 못한 목표를 가진 채 기존의 제품 생산을 반복하는 형태인 자본주의화 시킨 '선구적인' 장본인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 역시 애플의 창시자가 아니라, 모방자에 다름아님을 밝힌다. 그것의 수익성을 오히려 자신들의 기회로 창출할 수 있다고 여긴 '지적인 상인'이 그에게 가장 걸맞는 표현인 것이다. 이것이 발달된 형태는 '실리콘 벨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공계의 신화적 부흥에 힘입은 미국 사회의 일론 머스크의 행보가 가장 단적으로 부각된다. 일론 머스크 그 자신의 공화당 지지 행보가 초래한 '화성 탈출 계획'마저 대중의 인지도로 그나마 버티는 이 현대 기술자들의 부상의 이면에는 어쩌면, 미국 사회의 '달러'를 통한 화폐 가치와 기업 가치의 동반 상승이 아닌, 처참한 기술적 몰락과 야만성을 보여준다.
- 아카이브
현재의 IT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천문학적인 막대한 지분을 자신의 명의로 소유한 채, 사유 재산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기능 자본가들이다. 반도체라는 산업 자본과 IT라는 상업 자본의 결합으로, 기술적 수단을 매체로부터 매개하여 전방위적으로 대중들을 홍보하고,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면서도 노동의 생산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노동자 전반에 대해 생계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설계'에 개입하게 된다. 중간 관리자들은 그들의 물신성을 숭배하는 부르주아지 집단에 소속되기도 하면서 경쟁 사회를 통한 독식 구조를 바라며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들이 모여 결국, 부르주아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보안 업체 집단까지 별도로 고용하고, '해킹'과 '범죄' 사이에서 이러한 기술력을 합법화시킬 수 있는 '유능한 인재'들을 교육적으로 배출하게 된다. 그들은 업무에 가담하면서 이러한 '유능한 인재'를 지휘할 수 있다는 착각까지 범하며 광범위하게 이들의 기술력 전반을 지배하고자 하는 시도와 더불어 자신들만의 '아카이브'라는 업적의 수단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것이 현재의 부르주아 언론들이 바라는 인공 기술의 범위를 증폭시켜 자신들의 지분의 확대와 사적 이윤 추구의 법적 명분을 더욱 정당화시키도록 홍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사회에 진입한 자본가들은 정치화라는 경제적 지위까지 차지하며, 자신들을 보호하는 무장된 (임베디드) 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치외 법권을 옹호하며 자신들의 폭력까지 정당화시키는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오히려 무력한 존재들이기에 그들에게 별도의 비용까지 과감하게 지출하게 된다. 곧 경제적 예산 낭비의 형태는 그들에게 지출되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보호 수단'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인력의 동력을 무한한 기계가 대신한다는 이 모순, 곧 노동력의 체납된 지불이 이제는 국가 전번에 채무로 초과되었다. 그들은 노동자라는 존재를 '추상화'하거나, 이들의 투쟁 자체를 제거 및 삭제했으며, 노동자가 '자본화'된 상인들만이 남을 것이라는 지극히 자본가적 발상을 추구한다. 각국의 명문대를 나온 기술자들은 작은 사무실에서 앉아 자신들의 흥미를 사업화시킬 명분을 찾게 되고, 그것의 공공 발전마저 저해시키는 사익화된 수단들을 찾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의 생산 수단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그것의 시작이 바로 '컴퓨터'라는 본체의 탄생이었다. 이러한 '모델링'의 작업은 결국 그들의 '사유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가상 화폐'의 전면 추상화 작업인 셈이다. 그것은 '은행'을 대체할 수도 있고, 자신들의 자본의 생산 수단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고정된 부르주아 설계는 현재의 국가 사회 전반의 기틀을 '전멸'시킬 수 있는 종말을 부추긴다. 도메인의 생성부터, 비즈니스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고객 맞춤 서비스'란 개인 용역까지 고용하여 '자동화'의 도입을 통한 소비만으로 충당되는 자본가 기업의 정당성을 공포하고, '황폐화'된 세상까지 최후의 종언을 자신의 승리라 자부하게 된다.
- 프로그램
초창기 '프로그래밍' 언어는 단순한 명령어였지만, 그것은 이제 막대한 이윤 추구를 위한 무제한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그러한 사고조차 가닿기 힘든 고유한 물리 계산법을 더하여 개발 언어에 대한 자유를 부르주아지의 언어로 변환시킨다. 그것은 곧 언어의 '수정'이며, 자본가들의 독창적인 언어를 뇌와 전류의 연결로부터 인간의 심리 기제를 '조종'한다는 '기계적 유물론'으로 환원된다. 관념의 중독처럼 '독창적인' 연구를 중단하지 못한 일부 수학자 및 과학자들은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부르주아 간의 경쟁에서 심화된 전쟁의 발전을 이끌고, 그들만의 법이 곧 강령이 되는 '짐이 곧 왕이다.'라는 군주제 선언을 현대화시킴으로 인해 지배 사회의 매체 전반을 통제할 수 있음을 선포한다. 그것은 머나먼 미래의 노동자이 소멸할 '선언문'과 '강령'으로 작동하고, 그들만의 맞춤 우상 숭배 대상이 '물신 숭배'의 지배 대상으로 구체화 되어 자본의 사고에 종속된 그들은 자본가 '강령'의 노예에 불과하게 된다. 그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강령을 제시하고 처리하지도 못하도록 무지한 존재들로 규정하고 말았다. 이러한 기괴한 무지함이 보여준 결과가 바로, 자신들이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다는 객관적 대상 자체로의 '자본가'라는 존재임을 망각하고 만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란 결국 자신들이 작성할 수밖에 없는 명령·지시의 도구화를 대체하고, 간편화할 수단을 찾게 되고, 그것을 '기계'에 대입하여 '스크립트', '구조 형성'에 매우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할 노동자들을 요구하고, '자동화' 작업을 위한 무제한의 이윤 창출을 위한 가상 화폐 및 암호 화폐를 고안하게 된다. 그것은 금융 · 주식 전반에서 자신들의 명의를 이전시킬 수 있는, '기밀 문서'등과 같은 증거 자료를 삭제하고, 도덕성의 검증조차 자신들의 쪽수로 밀어붙일 수 있는 막강한 변호사들, 그리고 기술진들이 합세하여 '프로그래밍'시키고, 잉여 가치 창출을 위한 수단들을 끊임없이 검증 없이 '합법화'시킨다.
각국의 부르주아지 전반에서 '오라클'의 관리 및 동작과 터미널을 통한 '웹'의 생성과, 처벌받지 못한 비범죄화된 존재들을 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이들을 통합시켜 금융 전반에서 경영 관리자들의 데이터 자료 입력과 비효율적인 관리 생성 체계를 입출력하게 된다. 주식 선물 및 옵션, 그들의 서버 및 통신망을 제어 및 관리하면서 상품에 붙는 세금에 대한 무역 과세를 높이고, 이러한 부르주아 금융 통합 체계를 달성하게 되면서 '뱅킹'과 '모듈'의 일부를 복잡화시킨다. 그들의 '데이터 베이스'는 부르주아만의 독창적인 연구소이다. 그것은 입력·출구 방식에서 '컴퓨터 언어' 전반의 설계를 자신들의 이윤 추구의 획기적인 발상으로, 노동자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소모시킬 수 있는 임의적 기준을 재정립하게 된다. 이는 군대 및 경찰에 의한 국가 폭력과 '프로파일링'을 통한 경찰 치안의 방관에 대한 기록 말소 효과와 국가 중앙 수사국 및 정보국, 그리고 단속국의 기밀 문서 등과 같은 은폐되었던 대량의 기밀 문서 유출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금융 전반을 지배할 수 있는 가상 발전 체계를 '가상 서명' 방식의 동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제어하며 그러한 작동 방식을 '무지한'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게 된다. 결국 노동자 간의 경쟁 심화 현상은 이러한 중간 관리자들의 위치가 부르주아지 집단의 일부로 소속된 상태에서 국가법과 그 형식하에 암묵적인 동의까지 요구한다. 그것은 단순히 정부 전산 시스템의 불필요함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 세금' 관련 문제를 노동 계급에 엄격하게 한정시키며, 부르주아 자신들만의 강령을 노동자들이 처리할 행정 업무로 주입시킨다.
- 시스템
정부의 전산 시스템의 관리자들의 기술은 금융 전산 시스템의 프로그램들과 동일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관리자들 간의 '엔지니어링'이란 지배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별도의 '안보망'을 구축하면서 국방 전산 시스템 등 치안 유지를 위한 일부 시스템을 구축하며 인간의 사고 전반을 부르주아 사회에 통폐합시킬 수 있는 비효율적인 교육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기억한다.' 다만, 자본가 그 자신의 시스템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시킬 수 있는, 식민지의 수탈의 역사적 기록을 '삭제'시키고, 자본에 의한 산업 발전이라는 인공화된 기억을 주입하면서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고대하게 된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더욱 고도로 발전한다. 이러한 통제하에 각국의 범죄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의 원인이 가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신 질환에서 오는 것이라 믿는다.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범죄자들은 관리 대상으로, 그리고 일반인들과 분리된 존재라는 규정으로 인해 범죄 문학의 생산은 심화되어 결국, 이러한 체제 일환의 원동력을 기회로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선 노동자를 살해하는 부르주아지를 위한 범죄자로 거듭난다. 그들의 살해는 곧 시스템의 주역인 부르주아지들의 기회가 된다. 모든 물적 거래는 '가상화'되고, '자동화'되어 그것에서 보호받아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착각'이 자본가 간에도 전파된다.
기계화란 부르주아 사회와 격리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보호받는 시스템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반대로, '새로고침'을 취한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손쉽게 제도화하여 체제화시키고, 부르주아지 가문에 종사하는 더 유능한 인력을 발탁하여 그들만의 출신 성분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명분을 더욱 생산한다. 부르주아 자신의 범죄 기록을 말소하고, 그것과 무관한 범죄자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의적·임의적 처리가 기능하면서 '아무것도 사고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은 무일푼으로 자본의 노동에 종사하는 임금 기계의 일부로 활동하게 된다. 모든 이들은 '디바이스'의 일부만이 자신의 전부라 가정하며 부르주아 논리가 무엇인지도 평생을 가닿지 못한 채 방대한 데이터 더미에 갇히거나, 목적을 잃은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이 노동자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자본가의 통제를 받는다. 자본 관리의 인공화가 더욱 진행됨에 따라 이들을 통제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이들의 신분증이 곧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급은 더욱 세분화되고, 이러한 각층의 구성원들은 시간의 변화가 마비된 채 군대의 시간처럼 비효율적인 관리 수단의 대상으로, 또는 '무결성'된 결함없는 인간만이 남는 특정 인종 및 성별만이 잔존하도록, 소수 부르주아지들에 의해 '감시'되고, '도촬'된다.
이러한 문법들의 조직은 '데이터 스토리'가 되고, 기밀 코드를 작성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동작시키는 새로운 컴퓨터 언어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사생활 보호를 명분으로 바이러스를 늘리면서 결과적으로, 바이러스 노출을 위협하여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하게 된다. 동작 언어를 활용하여 노동자에게 기능적 복종을 요구한다. 이러한 부르주아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방식과, 최근 '화성인 탈출 계획'까지 인간이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가 아니라, '최악의 역사'가 기록됨에도, 그러한 자본가의 자존심이란 자본 사회의 심화된 개인 경쟁과 정치적 자금줄을 형성하여 부르주아 지식인 출신 노엄 촘스키 그 자신이 창안한 '변용 언어'와 컴퓨팅의 대입의 기여로, 이러한 '수동적 존재'를 인위적으로 '자동적 존재'로, 자신의 모호한 주장과 행적을 숨기고, 이러한 교제를 정당화하는 '선구적인' 변절자로 남는다. 부르주아지 전반의 네트워크를 위한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 유지 보수의 Solid (SRP, OCP, LSP, ISP, DIP), 와이어 샤크, 테라포밍, 트래픽 제어, 하드 웨어 관리 및 물리 구조 방정식 등 복잡 언어의 존재는 인공 생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애자일에 의한 비즈니스 소통 방식은 SRE, ARM, GIC, 트랜스포머, 블랙 박스 등 이러한 광범위한 제어 기능들을 토대가 사물의 통제 원인으로, 기능 고장을 방지하기 위한 대부분의 예방책을 차선책으로 간주하여 사고 충돌의 원인을 일시적으로 제거한다. 그것은 결국, 이러한 복잡 언어의 개념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부르주아 유학파 출신의 기술자들이 의도한 개념 혼동을 초래하고, 노동자 간의 모호한 정의에 의존한 채 사고 방지가 사고 유발이 되는 '기적의' 원인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소스 코드 (원인)과 오픈 코드 (결과)는 결국 자본의 유로화 방침을 제공하기 위한 자본가들만의 코드가 된다. 그것의 생성은 곧 자본의 독점 수단을 위한 일종의 방편과 독점의 재부상과 같으며 그것의 무상화가 아니라, 수익 창출을 위한 '부분적 유료화'를 프로그램에 확대한다. 결국 인공 수단은 제어하지 못하고, 자본가들의 통제만 강한 '자유로운 네트워크'가 기능하여 마치 '원자력의 통제'가 '양자 컴퓨터'의 접촉된 계산과, 핵 융합 회로의 건설을 '정당하게' 추진하며 지배 계급 간의 전쟁을 부추기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한 위험성과 경고는 기술진 내에서도 기밀로 부쳐지고, 그것을 세간에 공개한 이들은 '의문사'를 초래하고, 도리어 자본주의의 동력 자체의 활성화로 '희생된다.' 이들의 의문은 '블랙스크린'으로 가려진 채 세부 조사마저 은폐된다. 그것은 자체로 붕괴된 핵 폭발의 위험성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폭발성', 그 실체인 것이다.
- 클라우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전유하고, 연결한다는' 이러한 만능의 자연적 무한성을 닮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USB보다 못한 메모리 칩의 수준에서 발전하여 그들의 세부 정보와 자료들의 민감한 모든 '영상 및 사진'들까지 첨부하게 되면서 그들만의 소유 전반을 관리하고 형성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클라우드'가 아니라, 뜬구름인 것이다. 이러한 '모국어'의 말살 사태를 보기까지 클라우드의 집단적 형성은 부르주아에 의한 정신 질환, 아니 오히려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야 할 대상이 바로 그들임을 증명하고 만 것이다. '클라우드' 속의 세상에서 진보를 자치하고, 선의를 위장한 채 자신의 성욕을 담는 그릇까지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하고 요청한다. 그것의 일상은 밀접하게 공유되고, 희화화되고, 자신의 시각을 계급적 구분이 아닌, 이를 희석한 혼재된 '사이트 내의 구성원'으로,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면 하드웨어를 구매할 수 없는, 곧 '마이크로소프트'만이 전부인, 그것을 제작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빌 게이츠'의 명의로 도배된 경제적 클라우드의 부르주아 속성을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원대한 '실리콘 밸리'의 제자들은 새로운 꿈을 찾아 정치적 입지의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그들의 음향을 조정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공유하여 저작권 전반의 모든 소유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환원시켜 '자유롭게 공유'하고,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의 대상으로, 노동자의 범죄를 더욱 부추기고, 자신들의 과오를 가리는 식으로 모든 계급적 논의를 희석시키며 배제시킨다. 그들은 출판물 및 서적에 대한 관리까지 저작권을 독점한다. 예술 자체가 이제 그들만의 소유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업물에 대한 창작 의욕까지 망각한 상태로 '클라우드'의 일부가 되어 자본가에게 독점화된다. 그것이 곧 음향 제어, 소리 통제가 유도하는 가장 큰 함정이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곧바로 '음소거'하는 것.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여 통계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자본 화폐의 배후에 물가 폭증과 노동자의 필연적 죽음이 발생한 것. 그것은 족쇄를 자신에게 채우면서 자유롭다 말한다.
- 개발진
개발진들은 그 자신이 임금 노동자임에도, '화폐 가치'보다 더한 잉여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만다. 이들은 결국 '서버'라는 영화에 고용된 자막의 일부분이며 부품일 뿐이다. 금융업계의 발달로 인해 그것을 제어할 통제 권한이 있음에도, 자본가 집단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들 중 일부는 '성실하게 일하여' 관리자의 일부로 겨우 가담하여 자회사를 위한 출판에도 손을 뻗는다. 그러한 평가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평생의 연금 보장과 주택 대출을 갚기 위한 노고로 치환되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지름길이라 평하며 소개한다. 개발진들은 자신들의 영업 기밀까지 기업 간 거래 수단이 되어 상품으로 교환된다. 그것은 물론 불법이지만, 모든 국가들은 이러한 불법을 합법화시키는 명분들도 '정상화'시킨다. 개발진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개발하기 전까지 '밤샘 노동'을 더하여 주·야간과 일정한 임금 보수를 받는 대가로, 그리고 성실한 신분의 진급을 위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의 '이상'에 투자할 가치로부터 남은 연금을 수령하며 노후에 만족하며 평생의 시간을 개발과 더욱 무관해진, 사내의 상사와 고객 맞춤의 명령을 받고, 자본가의 '수익 창출'을 위한 노동 수단을 활용하게 된다. 그들이 소모되면 부품의 역할을 완수하고, '보수가 아니면 대안이 없는 식'의 논리를 구축하여 오히려 더 폐쇄적인 인간으로 변모한다. 그들의 자녀에게도 자신의 가치를 주입시켜 자신들이 소외된 존재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평생을 잊고,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마저 잊고 산 채, 정치적으로는 당시 링컨이 처했던 남·북 전쟁과 노예제 앞에 선 공화당보다 더 처참한, 자본가를 살리고자 공화당 내 '경제적 민주화'를 노예처럼 외친다. 그것은 이제 그들이 생산한 '인공 수단', 즉, 자본가의 생산 수단의 일부가 됨을 방관하게 된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를 지지하며 '민주주의'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