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소비를 고찰하는 이 방식이 부의 생산과 분배에 관한 이전의 서술과 얼마나 긴밀하게 일치하는지, 그리고 그 방식이 사회의 전체 운동에 얼마나 밝은 빛을 비춰주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일치와 명석함은 우리가 진리를 포착했다는 증거다. 이는 거울의 원리와 같다. 거울 앞에 올바른 위치에 서면 모든 사물이 똑똑하고 정확하게 나타나지만, 위치를 벗어나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리 서면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왜곡되어 반영된다.’
[데스튀드 드 트라시,『의지와 의지 작용론』: 242-243].
그러나 이러한 자화자찬은 결국 순환 논증의 함정과 유통의 외관에 매몰된 채, 스스로의 오류를 진리로 오판한다.
이것이야말로 항상 최고의 행복만을 느끼는 부르주아적 유아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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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단순 재생산의 결론부는 유아론으로 마무리했어야 했다. 이는 기존의 소아병이나 백치병과 같은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본가들과 그 무리들의 순수한 결정 그 자체였음에, 이 말의 의미가 아주 통렬하게 다가온다. 다른 증명은 생략하더라도, 이 부분은 가장 남길만 하다. 화폐의 유통 과정에서 순수한 교환이란 곧 자신에게만 기반이 되는 절대적 교환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옳다. 거듭 옳다!
순진무구하면서도 공허한 주관의 본질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