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독창성과 온전함, 전유와 혼합에 관해 논의하다가 때로 문화가 소유물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도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사용할수 있도록 건네주는 것이라는 사실임을 잊는다. 문화는 과거의 작은파편들을 가져와 새롭고 놀라운 의미 생산 방식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재활용 프로젝트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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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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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 로페즈의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읽고난 후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북극을 꿈꾸다'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전에 읽은 작품은 그의 마지막 에세이라 일컬어지고 있는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글이라면, 북극을 꿈꾸다는 북극에 대한 에세이이다. 북극이 품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며 -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 책은 자연과학에세이가 되겠지만, 베리 로페즈는 인문학적인 글을 쓴 작가이다. 자연 생태에 대한 세심한 관찰뿐만 아니라 그에 더하여 인문학적 상상과 통찰을 같이 그려내고 있는 작가이기에 베리 로페즈의 글은 천천히 그 의미를 새기며 천천히 읽어나갈수록 더 깊이 있는 울림을 갖게 된다.


요즘은 북극패키지 관광에 대한 광고글도 심심치않게 접할 수 있는데 북극탐험이 이루어진 후 불과 120년도 되지 않은 지금 패키지 관광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자연생태를 파괴하는 인류의 역량을 이렇게 느껴야한다는 것이 새삼 비극적인 절망을 떠올리게 한다. 북극에 대한 이야기, 북극의 대표 동물인 북극곰과 일각고래의 이야기, 북극을 대표할 수 있는 빛, 얼음, 땅에 대하여 그리고 극지방에서 계절에 따라 대이동을 하는 과정의 이야기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그 천연의 자연이 겨우 한세기만에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담담한 이야기들 역시 놀랍기만 하다. 


여러가지 내용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북극'이라는 것 때문인지 땅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특히 땅에 대해 무엇이라도 배우려는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순간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들로 나가 땅에서 잠을 자고 사향소의 일정에 따라 이동하고 바다로 향한 곳에서 야영을 하고...

우리가 보기에 북극은 아무런 변화가 없고 그저 유빙이 떠다니는 공간일뿐으로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도 생명의 움직임이 있고 변화무쌍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야생의 우아함을 간직한 북극의 생태계도 열대 생태계만큼이나 세련되고 복잡하다. 그저 움직이는 부분이 적을 뿐이다"(63)

베리 로페즈는 북극으로 가면서 복잡한 세계에서 단순함의 세계로 이동하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는데 북극에 가본적이 없지만 왠지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어쩌면 복잡하게 얽혀있고 난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인구밀집의 도시 생활에서 자연 그대로의 - 아직까지는 자연 생태가 보존되어 있다고 믿고 싶은 - 북극의 모습에서 우리 인류가 배워야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인류의 가장 오랜 꿈 중 하나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존엄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바람 중 하나는 그런 존엄을 우리 각자의 꿈으로, 많든 적든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각자의 삶으로 가져오는 것이다."622)

북극을 꿈꾸다,라는 것 또한 각자의 꿈으로 각자의 삶으로 모든 존재에 대한 존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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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마을들에는 캐나다 남부 어딘가에서 제트기를 타고 날아와 남의 말은 들은 체만 체하다가 굳이 고집을 부려 당일에돌아간 정부 관리나 기자 얘기가 많다. 그 성급함과 냉정한 무신경함, 권력자연하는 그 행세에는 어쨌든 비행기 탓도 있어 보인다. 비행기가 주는 엄청난 시공간 압축에 대응할 만한 것이북방 마을에는 없다. 사람들은 흔히 그 땅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돌아가고, 그 결과는 씁쓸한 분노를 낳는다.
비행기는 대단히 큰 유혹이지만, 그 땅에 대해 뭐라도 배우려는 사람은, 어떤 지도가 적절한지에 대해 약간의 감각이라도 갖고픈 사람은 비행기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런 사람은 들로 나가땅 위에서 잠을 자거나 덤불을 가르며 오후를 보내봐야 한다.
사향소의 일정에 따라 여행하고, 바다로 향한 곳에서 야영하고,
몇 날 며칠 날아 이동하는 바다오리들을 보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코북강 북쪽 제이드산맥의 뱀처럼 구불구불한 초록색 절벽 앞에 서거나, 겨울 해빙 위를 걸어서 개수로에 나가 부빙들이 서로 스치고 부대끼는, 미국 탐험가 엘리샤 켄트 케인의표현에 따르면, ‘강아지가 낑낑거리고 벌들이 붕붕거리는‘ 것같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 봄철 해빙 위에서 해체된 바다코끼리사체에서는 해저 퇴적물을 볼 수 있다. 베링해와 축치해에 사는바다코끼리 25만 마리가 매일 수 톤의 모래와 잔 자갈을 옮긴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수천톤씩 툰드라 흙을 파헤치고 있을 나그네쥐와 들쥐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툴레, 날뛰는 사냥감을가두기 위해 거주지로 커다란 돌을 날라 사방치기 놀이를 할 때처럼 칸칸이 세워놓은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다. 거대한 돌로 지은 북극곰 덫에는 옆으로 미는 돌문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돌을 마음대로 움직인 북극 주민들이었다.
어마어마한 하늘을 이고 며칠씩 걷을 때, 뱅크스섬 톰슨강 유역에서 세상의 적막을 느낄 때, 얼어붙은 강 계곡 수 킬로미터밖에서 들리는 썰매개들의 억제할 수 없는 활력을 느낄 때, 칼슘 섭취를 위해 나그네쥐 뼈를 먹는 긴발톱멧새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이 어떻게 그 땅을 살아 있게 만드는지 볼 때,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더는 축약될 수 없는 더 깊은 대지의 차원들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멀어지려면 제때 해야 할 것이다. 비행기는 매일 총알처럼 북극을 드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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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땅에 태도를 드러내는 방식은 상당히 모호하고 정의하기 힘들다. 집안일에 골몰한 채 마지못해 여행에 나선 사람은땅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누구도 배고픈 원주민 사냥꾼만큼 기민하지는 못할 것이다. 뭔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동경이나연민을 느낀다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큰 흥분을 느낀다면, 그런 것들이 그 땅에 대한 긍정적인 처분에 영향을 줄 것이다. 북극에서 비행기 사고로 친구를 잃은 적이 있거나 북극 광산에 투자했다가 파산했다면, 이 땅을 적대적으로 느낄 것이고, 이 땅의 어떤 가치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예민한 감각뿐만 아니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의 차이도 저마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땅의 어떤 특징들을 찾아내도록이끌어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에 대한 작은 조각 지식이 지역 주민들사이에 이야기의 형태로 축적된다. 이야기들은 공동체 안에서기억되기 때문에 자주 확인할 수 없는 지식도 잊히거나 버려지는 일이 없다. 이런 서사들은 원주민들에게 특정 땅에 대한 복잡하고 장기적인 시각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실제로 알게 된 사실과 그저 상상한 것,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실체 사이를 오가며 확인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에 의해 정제되면서 매일 확증을 받는다. 복잡하지만 쉽게 공유되는 이 ‘현실‘은그 지역을 벗어나면 일반론이나 오해 또는 부정확한 추상으로축소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의 인식이든, 인식은 마치 홍수처럼 땅을 쓸고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주워 모아 판독해야 하는, 덤불에 걸린 젖은종잇장 같은 개념들을 남기며, 누구도 이야기 전부를 들려주지 못한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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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친구가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아비 한 마리와 새끼가 손바닥만큼 남은 수면이 얼어붙지 않도록 열심히 발을 것고 있었다. 밤새 바다에 나가 있던 부모 중 한쪽이 30분마다 부리에 먹이를 물고 왔지만, 이륙이 불가능한 만큼 착륙도 불가능했다.
다음 날은 날씨가 좀 따뜻해져서 연못에 발이 묶였던 녀석이날아가고, 새끼에게 줄 먹이를 문 다른 녀석이 착륙할 수 있었다. 그 주위에도 비슷한 곤경에 처한 다른 아비 가족들이 있었다. 아비들은 인간 관찰자가 좀 더 영구적인 피신처를 찾아 가버린 후에도 그런 식으로 버틴다. 친구는 그 새끼 아비들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어른 아비들은 새끼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가 기억하는 건 눈보라에 가려 희미한 검은 점처럼 보이는 부모 새들이 열심히 바다를 오가는 광경이었다. 좋지 않은 때를 맞고도 꿋꿋한, 대단한 동물이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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