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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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티비를 돌려보다가 중국의 무석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친구의 새로운 발령지가 무석이라고 해서 듣도보도 못하던 동네라고 했었는데 무석의 우시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해서 낯익은 지역명에 괜히 반가워 보고 있으려니 삼국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륙의 스케일이라는 것이 어마무지하게 커다란 공간을 세트장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 거대한 공간을 그리도 허술하게 만들어놓은 것 역시 좀 놀랍기는 했다. 


삼국지기행은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라는 부제에 맞게 삼국지의 이야기를 따라 배경이 되는 지역의 풍경과 삼국지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삼국지가 역사와 허구가 뒤섞인 소설임을 알 것이다. 청소년용으로 짧게 요약된 삼국지만 읽었다가 처음으로 전체 이야기를 읽은 것이 또 이문열의 평역 버전이어서 그런지 알고 있던 삼국지의 이야기 - 그러니까 도원결의부터 시작해 품성좋은 유비와 관우, 장비의 영웅호걸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던 것이 유약하고 우유부단함의 상징이 되어버린 유비가 주인공이 아니라 조조가 천하의 주인공인 이야기가 낯설었지만 또 그 이야기를 읽었기에 허우범 작가의 삼국지기행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들이라 세세한 부분들은 기억에 없기는 한데 왜 대부분이 유비를 조조보다 더 우위에 놓고 삼국지를 이야기하는지 정확하게는 몰랐었는데 이 책에서는 왕족의 후예, 한족의 정통성을 말하고 싶어서라고 하고 있다. 소설과 역사적 사실의 차이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을 읽다보면 왠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이 떠오를수밖에 없다.


삼국지기행,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실재하는 이야기와 인물들의 고향에 가서 역사적인 고증을 살펴보기도 하고 동상이나 비석을 찾아 사진을 찍고 동네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사당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중국의 동북아공정으로 우리나라의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느껴서인지 삼국지와 관련한 유적지를 찾지 못하면 그냥 그 상태로 과정을 보여주면 좋은데 가짜로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는 것이 역시 중국이네, 하게 된다. 저자가 삼국지 기행을 다녀오고 십년만에 다시 증보판을 내며 다녀왔으니 이런 내용도 알게 되는 것이겠지만.


관우의 고향, 생가에서 시작해 시간의 흐름대로 삼국지의 에피소드까지 곁들여져 있어 금세 2부까지 읽을 수 있다. 조금은 익숙한 내용들이라 그런지 길안내를 자처한 할아버지가 당당히 담배한갑을 요청했다는 소소한 내용들이 더 기억에 남아서 중국의 현재를 보는 듯 하기도 한 느낌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저자가 이야기하는 삼국지 등장인물들에 대한 여러 관점들을 읽는 재미가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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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종, 계급을 읽으며 처음 인식했던, 아니 이건 좀더 거슬러 올라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읽고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것인데.
흑인여성이라는 이중,삼중의 차별.



아주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책에 빠져들었던 10대소녀 시절, 책은 나를 익숙한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롭고 놀라운 세계로 인도해주었다. 책은 이국적이고 색다른 신세계와도같았다. 책에는 모험이 있고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책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관점 덕분에 나만의 작은안전지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작은 책 한권만 있으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 페이지 속 단어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외심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이 사회의 고정된 성역할과 가부장제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즘운동이 일어났다.
그 시대에 여성해방이란 젠더에 대한 이 놀랍고도 신선한 사고방식에 붙여지는 이름이었다. 나 또한 이전부터 사회가 주입하는 전통적인 여성상과 내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기에 여성해방운동에 간절히 참여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을위해, 모든 여자들을 위해 자유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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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그가 몽골 출신이라는 데 있는 것 같다. 여포의 고향 포두는 지금의 내몽고 지역이다. 유목민 기질을 타고난 여포의 행동은 농경민인 한족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실례로 아내의 침대에 손님을 앉히고 아내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하는 풍속은 유목민 입장에서는 손님에 대한 최고의 예의지만,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야만인인 것이다.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는 여포의 무계획적인 성격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상관도 거침없이 살해하는 반항아적 기질로 인해 최고의 장수임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인간으로 전락하고만다. - P164

유비 역시 당대 최고의 영웅인 조조의 품성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그의 움직임에 따라 유리한 정치적 소신을 펼쳐간 것이었다. 중국인은 대의명분을 취하지만 항상 실리적이다. 대의명분도 따지고 보면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교묘하게 이익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전략으로 활용하는것뿐이다. 유비는 이 점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유비를그들의 영웅으로 삼았다. - P185

역사는 전설을 몰고 다니고, 전설은 때때로 역사를 추월한다. 그리고 신화와 조우한다. 신화는 역사를 부풀리고 인간은 그 역사를 스스로 맹신한다. 그래서 오늘도위대한 역사 만들기에 골몰한다. 역사가 항상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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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치러야만 영원한 정의를 얻는다면, 그리고 그 정의의 대가로 살아 있는 인간을 죽여야 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런 정의를 위해 싸우지는 않을 거야. 




어떤 물질이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에 의해 온도가올라갈 때 그 물질 고유의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이끓는 비등점이 있고 쇠가 녹는 용해점이 있듯이, 정신도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행복감 역시 절정에 이르면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 절망, 굴욕, 혐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에 물을 부을 때 가득 차면 더는 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 P234

세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많이 다르지 ‘항상 성실하라, 정직하라!‘라고 배웠지만, 그런 세상이 단 한 번이라도 실현된 적이 있던가? 사람은 꼬리가 잘려 나가도 다시 자라는 도마뱀이 아니야.  - P288

"내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는 《로테파네 출신이 아니야. 나는 내전이 어떤 것인지,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어. 내눈이 먼다 해도 그 장면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야. 당시에 적군과 백군이 세 번씩이나 번갈아 가며 그 마을을 장악했는데, 소비에트 군대가 마을을 탈환했을 때 우리를 소집해서 시체를 파묻으라고 하더군.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까맣게 숯덩이가 되어버린 아이들과 여자들, 말들의 시체를 내 손으로 묻었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시체들은 한마디로 지옥 같은 공포그 자체였어. 진동하던 악취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 그 후로 나는 소위 내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어. 내전을 치러야만 영원한 정의를 얻는다면, 그리고 그 정의의 대가로 살아 있는 인간을 죽여야 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런 정의를 위해 싸우지는 않을 거야. 나는 이제 어떤 일에도 신경 쓰지 않아. 관심도 없어. 나는 볼셰비키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아. 나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자본주의자도 아냐. 나는 아무래도 좋아, 나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어. 내가 봉사하고 싶은 단 하나의 정부는 바로 나 자신이야. 다음 세대가 행복해지든지 말든지, 공산주의 국가가 되든지 파시스트 국가가 되든지 아무 관심 없어. 내 관심은 오로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는 것뿐이야. - P292

어쩌면 실제로 제 마음속에 큰 분노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지만………. 저는 아무도 부럽지 않아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잘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은 저보다 못되어야 한다는 식의 질투심은 없습니다. 저는 남의 행복을 시샘하지않아요.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남이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면 자신은 왜 그렇게살지 못하는지, 자책하듯 스스로 묻곤 하죠.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의 행복과 저의 행복을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단지, 왜 저는 행복하지 않은지를 생각할 뿐이죠." - P303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돈의 위력을 실감했다. 돈은 있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없을 때에는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따라서 돈은 ‘자유‘라는 거룩한 선물을 주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단념해야 할 일이 생기면 분노가 솟구치게 한다. 이른 아침 어둠 속에 앉아 뿌옇게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볼 때나, 황금빛으로 물든 커튼이 돈 많은 사람에게 안식과 자유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화가 치밀어올랐다. 부유한 남자들은 원하는 여자들과 함께 아름다운 커튼이 쳐진 방안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갈 곳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무거운 걸음으로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자연계에서는 오직 바다만이 내포하고 있는 잔인함과 같은 것이었다. 바다는 엄청난 양의 물을 가지고도 사람을 갈증으로 죽게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아늑하게 햇빛이 들어오고 폭신한 침대가 있는 조용하고 안락한 방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수십만, 수백만 개의 방, 셀 수도 없이 많은 방, 아무도 사용하지않거나 비어 있는 방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그 방 한 칸이 없었다. 잠시 서로 기대거나 입을 맞출 공간이 없었다. 온종일 쏘다니며 느꼈던 미칠 것같은 갈증과 분노를 풀어줄,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으리라고 자신을 속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거짓말을 시작했다. 
-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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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6-16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르디난트의 이 말들...
너무 절절해서 잊히지 않아요!

chika 2023-06-17 08:33   좋아요 1 | URL
이야기가 궁금해서 서둘러 읽다가도 정말 잠시 숨고르고 천천히 읽을수밖에 없는 글이었어요. 오래전 작품이지만 지금 시대상을 보여주는것같은 느낌이. 역시 통찰력이 있는글은 다른거라며.
 

정상에 선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내려다보지 못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은 남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법이다. 실제로 고생해본 사람만이 어떤 일에나 방심하지 않고,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렇게, 직감적으로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생기고 남보다 더 영리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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