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절대 자애롭지 못하다. 자본주의를 무조건 칭찬하도록 길러진 미국인들에겐 그런 말을 듣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장하는 것이 불변의 목표라면, 생산성이 향상되고 이윤이 증가하는 한 직원들을 기계 부품처럼 착취해도 된다. 그러나 대공황 후부터 1970년대 침체 전까지 자본주의는(적어도 미국에서는), 다소 인간적이었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배타적이며 시장의 변덕에 끌려다녔어도, 인간적이었다. 이 시기의 존재는 우리가 미래에도 반드시 지금처럼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증거다.
그 시기 자본주의가 (약간) 더 노동자 친화적이었던 건 기업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노동조합과 정부 규제로인해 당시 기업들은 고용인들을 사람답게 대해야만 했다. 아플수도 있는 사람, 자녀가 있는 사람, 일하다가 다치기도 하는 사람, 일자리 하나에 쓸 만큼의 에너지만 가진 사람, 그러니 일자리 하나만 가지고도 먹고살 수 있는 임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 일 바깥에도 인생이 있는 사람으로 대우해야 했다.
그러나 기존 규제를 회피할 방법들과 함께 찾아온 규제 완화와 반노조 입법은, 자본주의를 가장 무자비한 모습으로 되돌려놓았다. 경제는 번창하지만 빈부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기업이 비교적 자애로웠던 시기에 형성된 중산층은 꾸준히 움츠러들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연구한 인류학자 캐런 호 Karen Ho는 이렇게 설명한다. "근래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독특한 지점은, 기업에게 인식되는 이익과 직원 대다수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 - P193

실업률 수치가 아무리 낮다해도, 여전히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와 견주어 보면 수치 자체의의미는 달라진다.
오늘날 고용되었다‘는 건 좋은 직업, 안정적인 직업, 가족을빈곤 밖으로 끌어올릴 만큼 임금을 많이 주는 직업을 가졌다는의미가 아니다. 경제의 표면적 건강과 경제를 돌아가게 만드는이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은 놀랄 만큼 별개다. 그게 내가 실업률 수치를 들을 때마다 가스라이팅 당하는 기분이 드는 이유다. 누군가 우리에게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실은허구‘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지금 경제가 사상 최고로 강건하다는 말을 들을 때에도 똑같은 기분이든다. 긱 경제 gig econony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정규직보다 임시적 ·계약직을 고용하는 경향이 큰 경제 - 옮긴이)가 "밀레니얼들을 위한라이프 스타일 선택"이라는 발언을, 우버 운전자에게 서비스를판매하는 회사 CEO로부터 듣는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발언은 노동자들, 특히 일터에 대해 다른 경험을 해보지 못한 밀레니얼들로 하여금 시궁창 같은 현실에 속한 기분이오로지 자기 탓이라고 믿게 만든다. 어쩌면 당신이 진짜로 게으른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일을 더 열심히 하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고된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두가 참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당신의 가장 친한친구도 힘들어 하고, 여동생도 힘들어 하고, 동료 직원도 힘들어 하지만, 그건 모든 게 훌륭하다는 더 큰 서사에 등장하는 작은일화일 뿐이다.
- P194

번아웃을 해결하려면, 당신의 하루를 채우는 것들이 - 당신의 인생을 채우는 것들이 - 당신이 살고 싶은 인생, 당신이 찾고싶은 삶의 의미와 결이 다르다는 착각을 지워야 한다. 번아웃상태가 단순한 일중독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번아웃은 자아로부터의, 욕구로부터의 소외다. 당신에게서 일할 능력을 뺏는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더 발굴해 낼 자아가 남아있을까? 아무도 당신을 지켜보지 않을 때, 제일 저항이 적은 경로를 선택하지 않아도 될 때, 당신이 뭘 좋아하고 뭘 좋아하지않는지 알고 있는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법을 아는가?
자신에게 다시금 전념하고 자신을 아끼는 것은 이기적이지도, 자기중심적이지도 않다. 도리어 이는 가치의 선언이다. 당신이 일을 하고 소비하고 생산해서 가치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그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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