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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가끔은 점집에 가서 내 운명에 대해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뭔가 좀 뾰족한 수가 없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용하다는 점집이 있으면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너무 믿게 되면 오히려 앞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자제를 하기도 합니다.
임금님 아들도 굶어죽을 팔자는 못 면했다는데 말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시죠?

세종 임금께는 여러 분의 아들이 있었답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아드님은 수양 대군이었지만 수양 대군의 강한 성격을 염려하시고 걱정하셨다고 하니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었을까요?
세종 임금께서는 광평대군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셨답니다. 그 당시 용하다는 점술가가 있다는 소문이 장안에 자자해지자 세종 임금께서도 그 점술가를 궁으로 불러 사랑하시는 광평 대군의 미래를 물어보셨답니다.
광평대군의 점괘를 짚어본 점술가는 선뜻 말씀을 드리지 못했고, 임금께서 다그치시자 비로소 말하기를, "왕자님은 아사할 팔자"라고 했답니다.
만인을 우러르는 임금님의 아들이 굶어죽을 팔자라는 말에 임금님도 신하들도 깜짝 놀랐고 실력없는 점술가라고 혼을 내주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는 수양 대군의 강한 성격이나 태조 임금때 있었던 왕자의 난을 생각해 내시곤 능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하셨답니다.
사랑하는 아드님의 불행한 미래를 막아주고 싶으신 마음에 현재 서울 제기동 일대의 땅을 광평대군에게 하사하셨고, 그 어느 누구도 그 땅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도장 찍고 공증까지 받으셨답니다.
그 후 굶어죽을 팔자라는 말에 염려를 한 주변 사람들이 먹거리에도 엄청 신경을 써서 모셨다고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밥상에 생선이 올랐는데 그 생선의 가시가 목구멍에 가로로 걸려 도무지 빠져 나오지를 않더랍니다. 가시가 목구멍에 박히는 바람에 말도 못 하시고 밥도 먹지를 못해 결국은 영양실조로 돌아갔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제 어리석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친척분이 당사주로 제 사주를 봐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짚어낸 네 개의 사주에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천인, 천고, 천역까지 네 개의 기둥 중 세 개가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이었지요.
또한 그 분이 손금을 보더니 제 금전운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양이라 돈복도 없겠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고등학생 때 그 말을 듣고는 실망했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친척집에서 먹고 살았으니 천고도 맞고, 남들은 쑥쑥 잘도 낳은 아이를 두번씩이나 수술을 해서 낳았으니 천인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되는 대로 욕심 갖지 말고 평범하게 사는 것만도 고맙고 밥만 먹고 살아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얼마 전에 친구 아버님이 퇴직을 하시고는 취미로 배우시던 주역을 본격적으로 배우시더니 철학관을 차리셨습니다.
그 친구 아버님이 제 사주를 봐주셨는데 그리 좋은 사주는 아니지만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할 팔자니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고 하시더군요. 지금은 가난하지만 재복도 꽤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지금 현재 돈이 있고 없고, 나중에 떼돈을 벌고 안 벌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요, 누군가 손가락 마디를 잘못 짚어낸 당사주만 믿고 '내 인생은 원래 이래'라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임금님 아들도 굶어죽을 팔자는 못 면했지만 그래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는데 저는 왜 맨날 포기만 하고 살았을까요?

처음에는 당사주를 잘못 짚어준 친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은 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팔자이니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구요. 쉽게 포기하는 성격도 고치려고 노력중이구요.

세종 임금님의 굶어죽은 아들 이야기를 읽으며, 운명에 순응하고 살자는 생각보다는 어차피 정해진 운명이지만 더 열심히 내 힘껏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을 때 후회는 없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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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남이 아들을 차량으로 치어 숨지게 한 사실을 알고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유기 치사)로 구속영장을 받은 젊은 여인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 여인은  집 근처 길가에서  함께 외출하고 돌아온 내연남 이씨가 자신의 산타페 차량 뒷바퀴에 아들 김군(4)이 치어 숨지게하자 남편에게 ‘아들이 사고가 난 것 같다’는 말만 하고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혐의라고 한다. 어머니 김씨는 이씨와 불륜사실이 들통날 것을 우려, 아들의 사고 경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꺼려 왔으나 사고를 낸 내연남 이씨가 경찰에 자수를 하는 바람에 이 사건이 들통나게 되었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채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나선 남편은 길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했으나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기는 중에 숨졌다고 한다. 내연남은 아이가 차에 치인 것 같다고 말을 했는데 오히려 애 어미가 그냥 가자고 했다고 하니 제정신인가 싶기도 하다.
내연남의 차를 타고 가고 남편에게 전화 연락만 한 뒤 연락을 끊은 아내.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찾아나선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답답하고, 엄마를 쫓아가려다 차에 치인 4살 먹은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아이구, 아이구, 세상에 이럴 수가 있냐..."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저승 사자도 감동시킨다는 어미의 정성과 사랑인데 자신의 쾌락을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고 눈 앞에서 죽은 자식을 두고 떠난 몰인정한 인면수심의 어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에는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 군인들은 우리나라 여자들을 잡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장독대나 짚단 속에 숨어 있는 어미를 스스로 나오게 하기 위해 자식을 인질로 잡고 그 어미를 나오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어미는 자식의 고통과 아픔, 슬픔을 내 것 못지않게 여긴다는 것인데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면서 이런 사람같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입이 쓰다.

나의 어머니도 세 살 먹은 나와 두 살 먹은 내 동생을 버리고 집을 나갔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겠다는 것과 시어머니와의 갈등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대로 잘 컸지만 내 동생은 선천적으로 심장판막증이 있던 아기라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얼마 뒤 죽고 말았다. 내 어머니가 좀 더 참고 슬기롭게 시집살이와 결혼 생활을 했더라면 나의 동생도 수술을 받아 건강하게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어미의 사랑과 힘은 가히 크다 할 만 하다. 이혼을 하고나니 막상 아이들이 걱정되었는지 나의 할머니를 찾아와 다시 살겠다고 빌었으나 내 할머니가 그를 받아들일 리 없었고 사정하다 지친 나의 외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엄마를 데리고 갔다 하니, 가끔은 그리 차갑고 쌀쌀맞은 것도 집안 내력은 아닌가 싶기도 해서 나의 행동과 말투를 반성하기도 한다. 나도 결혼 초기에는 시집살이가 힘들고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러워 이혼을 생각해 본 적도 있으나 어미의 결혼운이 딸아이에게 대물림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외할머니, 친정 어머니 대까지 내려온 불행한 결혼운이 내 자식에게까지 미치는 것이 두려워 이를 악물고 참고 살았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내 자식이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어렵고 힘든 일도 참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내 스스로 나에게 상을 주고 싶을 정도로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건강하게 착실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내 희생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중에 원숭이 어미의 창자가 끊어진 이야기가 있다.
중국 중국 진나라의 환온이라는 사람이 촉나라로 가던 도중 삼협 땅을 지날 때의 일이라고 한다. 환온을 따르는 하인이 근처 숲에 들어갔다가 어린 원숭이 한 마리를 붙잡아 가지고 배로 돌아 왔다. 그런데 어미 원숭이가 뒤를 따라오며 물을 사이에 두고 강가에서 슬프게 울고 있었다. 어미 원숭이는 강기슭을 따라 배를 계속 쫓아오면서 어린 원숭이를 보고 울부짖었다. 이윽고 백리도 더 가서 배가 강기슭에 닿자 어미 원숭이는 배로 뛰어들었으나 끝내 그대로 죽고 말았다. 사람들이 궁금하여 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도 슬퍼했던 나머지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토막 잘라져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창자(腸)가 끊어지는(斷)듯한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단장(斷腸)이라고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식의 아픔을 대신해줄수 있다면 목숨까지 내 놓겠다는 부모들, 가시고기 이야기 속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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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부러워하는 직장, 신이 감춰 놓은 직장, 신도 다니고 싶어하는 직장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금융공기업이라고 하지요.
어제 뉴스는 정말 볼만했습니다. 한쪽에서는 고압선으로 인한 화재로 온 동네가 불바다가 될 뻔 한 뉴스에서부터 감사원의 감사를 받은 금융 공기업의 돈잔치까지...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구금되어 있는 구치소에도 고압선으로 인한 불이나 60여대의 소방차가 출동하고 300명이나 되는 소방관들이 총동원되어 불을 껐다고 하는데 한 쪽에서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잔치"를 벌인 사람들이 있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업은행 전산 용역직원 연봉이 일억원이나 되고, 다른 기관에서는 폐지된 월차휴가 보상비를 기본급화해 연간 433억원을 지급하고, 한국은행 등 4대 기관의 청원경찰, 운전기사는 최고 9100만원, 평균 6300만~6700만원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기네 직원들에게 전세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어서 감사원이 지적을 했더니 아예 자기네 기관 명의로 집을 전세계약해서 직원들을 공짜로 살게 해주었다고 하네요. 정말 신도 다니고 싶어서 살짝 감춰놓은 직장이라는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들 은행들은 자기네들이 전년도 대비 136%의 영업성과를 올렸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지만 감사원 당국자의 말을 들어보면,

장사를 잘했거나 경영혁신으로 비용을 절감해서 만든 흑자가 아니라 대부분 정부 지원 또는 경제 상황이 호전되면서 장부상 평가이익이 올라간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 국민들이 알았는데 앞으로의 처리는 어떻게 할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말을 하고 있지 않더군요. 2004년, 2005년, 2006년까지는 많이 받은 것 그대로 제 주머니에 챙기고 앞으로만이라도 제대로 해보겠다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네요.

어제 뉴스를 보는데 황희 정승의 鷄卵有骨(계란유골)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입이 소태같이 쓰더군요.
계란유골이라는 말은 "늘 일이 잘 안 되는 사람이 모처럼 좋은 기회를 얻었으나 역시잘 안 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에 유명하신 황희 정승이 등장할까요?
이 말은 사실 황희 정승의 청렴함이 그토록 완고하고 강직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황희 정승은 청렴하기가 이를데 없어 늙도록 가난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이 항상 이를 안타깝게 여기다가 하루는 결단을 내렸다지요. 어느 날 하룻동안 서울에서 가장 물건이 많이 들어오는 남대문을 통과하는 모든 물건을 국비(國費)로 사서 황희 정승에게 주기로 말입니다.그런데 그날따라 새벽부터 비가 심하게 내려 모든 장사들이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저녁이 되어 성문을 닫을 무렵 어떤 사람이 계란을 한 꾸러미 가지고 들어왔답니다. 관리가 그 계란을 산 후 황희 정승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계란들은 오래된 것이어서 곪아서 먹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안 세종대왕께서는 탄식을 하셨다고 하지요. 황희 정승님도 어쩜 그리 복이 없으신지...^^

황희 정승이 돌아가셨을 때, 딸들이 상복을 입어야 하는데 상복을 만들 천도 돈도 없어서 찢어 나눠 입었다고 합니다. 공무원들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한 집안의 아들이고 딸이니 욕심이 없을 수 없구요, 개인적인 야망이 없을 수도 없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려서는 안되는 것이 공직자들의 양심 아닐까요?

가끔 개인적인 친목 모임이나 단체 모임의 총무나 회장을 맡고 있는 분들이 입출금 내역을 발표하며 떳떳하게 점심값, 활동비 명목으로 금액을 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냥 좀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안되는 건가요? 남의 돈을 내 돈같이 생각하고, 여러 사람의 돈을 모아서 회비를 만들었으면 내 돈 같이 아끼고, 꼼꼼하게 집행을 하는 봉사 정신이 가끔은 그리워지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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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랫만에 오전에 시장에 갔습니다. 동사무소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내친 걸음에 시장까지 가게 되었죠. 평상시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는데 간만에 혼자 걸어가니 한적하기도 하고 마음은 가볍더군요.
시장에는 아직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길가에서 귤을 싸게 파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큼직한 귤도 한 바구니에 이천원, 작은 귤도 한 바구니에 이천원이더군요. 귤을 무척 좋아해서 앉은 자리에서 반 박스도 먹어 치우는 딸아이 생각에 두 바구니를 샀습니다. 세 바구니를 사면 오천원이라고 하길래 두말 않고 샀더니 덤도 주더군요. 추석이 지나고 나면 과일값이 좀 내려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며칠 전 가격과 너무 차이가 나서 귤 가판 사장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며칠 사이에 귤이 왜 이렇게 싸졌어요?" 하고 말입니다.
귤 가판 사장님은 "지금 날이 너무 뜨거워서 제주도에서는 귤이 나무에서 말라 비틀어지고 있대요. 어쩌다 싸게 잡은 물건이 있어서 싸게 파는 거예요."라고 말입니다.

요즘 가을 가뭄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날씨가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싸게 사먹는 것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귤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에는 귤 값이 꽤 저렴했습니다. 근데 막상 귤을 많이 먹는 겨울이 되자 귤값이 꽤 비쌌던 생각이 났습니다. 귤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풍족하게 먹일 수 없을만큼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장사하시는 분께 여쭈어보니 "올해 귤이 너무 풍작이라 제주도에서 땅을 파고 귤을 다 묻어 버렸다. 그래서 비싸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귤값이 너무 싸지니까 아까운 귤을 땅 속에 도로 파 묻어 버렸다는 말에 애타는 농부들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서민들도 풍작일 때 실컷 맛있는 귤 좀 먹게 해주지 그렇다고 그 예쁜 귤을 땅 속에 묻어 버리나 싶어서 아까운 생각이 들고 귤 농사를 짓는 분들이 미웠습니다.

옛날에는 귤나무 한 그루면 자식들 대학도 보낸다고해서 대학나무라고 했고, 더 예전에는 너무 맛이 좋아 서울 양반들의 수탈에 사람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던 귤나무였다고 합니다. 제주도 분들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소득을 주는 중요한 자원이니까 귤 값을 조절하기 위해 풍작이 든 귤을 폐기 처분하기도 하겠지요. 게다가 이제는 오렌지나 망고같은 서양 과일들에 밀리기도 하겠구요. 또한 몇 년 전부터는 기후조차 귤농사 짓는 분들을 힘들게 해서 하우스 시설이 없이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농사가 되어버렸고. 언제부턴가 얄미운 상술이 소위 비가림귤이라는 희안한 이름으로 하우스 귤을 대접해서 노지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 귤이 제 값을 못 받는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무슨 일이든지 순리를 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식량이 남으면 공급초과로 세계 곡물가격이 떨어지고 다국적 식량회사의 이윤이 하락되기에 초과생산된 식량을 바다에 버리는 야만적 행위는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닐까요? 겉으로는 국제 기구를 통해 굶주림에 우는 지구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거대 기업의 자본은 인륜과 천륜을 거스르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뭐가 옳고 그른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풍작이 들어 가격이 하락한 배추나 벼, 보리를 태워버리고 눈물 흘리는 농부들의 심정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니 풍년이 들었을 때 어려운 사람들도 헤택을 받아볼 수 있게 한다면 또 다른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나비 효과라는 말, 긍정적인 면으로 생각해보면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아닐까요?

소설가 김주영님의 아리랑 난장에 보면 좋은 구절이 있습니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오히려 넉넉한 인심이 신선해 보이고 야박한 사람들 틈에서 피어나는 인정은 더욱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이에는 이고 눈에는 눈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즐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운 표정의 사람 앞에는 언제나 즐거운 사람이 나타나고 속임수를 가진 사람 앞에는 언제나 허위의 그림자만 나타난다. 비밀을 가진 사람 앞에는 백주대로에서도 반드시 의심의 자락이 덮이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자에게는 불행이 비켜간다."입니다.

어제는 장을 다 보기도 전에 귤을 많이 사는 바람에 시장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가 없더라구요. 그런데요, 팔은 아팠지만 두 가지 생각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처럼 큰 봉지로 하나 가득 귤을 사들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좋았구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귤을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저의 딸아이, 한가득 있는 귤을 보더니,
"이제 나의 계절이 온 건가?"라며 귤을 먹기 시작하는데 팔 아픈 것이 순식간에 없어지더라구요.
많은 아이들이 귤을 많이 먹고 귤의 달콤함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행복한 겨울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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