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소서노에 대해 고구려, 백제 두 나라를 건국한 조선 유일의 창업 여제왕이라 극찬한 바 있다고 합니다.

소서노는 졸본 부여의 임금 연타발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부여왕 우태와 결혼했으나 우태가 일찍 사망하여 그와의 사이에서 난 비류와 온조를 기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동부여에서 도망쳐온 주몽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22세 였던 주몽은 패기가 넘치는 인물이었고 주몽의 재능이 보통이 아님을 간파한 소서노는 주몽과 결혼하게 된다고 합니다. 당시 소서노의 나이 37세로 새로운 영웅 주몽과 졸본 지역의 명문가 여성인 소서노의 결합은 다소 정략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고 하네요.

고주몽과 소서노의 결합은 또 하나, 토착 세력과 이주 세력의 결합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만주와 요동, 요서를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가는 강성대국의 기단이 마련되었으니 소서노의 힘과 재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네요. 고주몽의 고구려는 소서노의 힘이 없었다면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 만큼 고구려 건국에 이바지한 소서노의 공로는 지대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원전 19년 동부여 예씨부인이 키우던 유리가 고구려에 출현함으로써 소서노의 운명은 바뀐다고 하네요. 주몽을 왕으로 앉히는데 소서노가 일등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주몽은 자신의 친자를 태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주몽에게 배신감을 느낀 소서노는 결국 자신이 새로이 나라를 건국하기로 결심하고 두 아들과 함께 고구려를 떠났다고 합니다.

만주를 떠나 한반도로 남하한 소서노는 푸르게 넘실대는 한강을 보고 새 나라의 도읍지임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남 비류는 바닷가가 새로운 도읍의 적지라고 주장했구요. 소서노는 아들에게 얽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장남 대신 차남 온조와 한강 유역에 하남 위례성을 쌓고 새 나라를 창업했다고 합니다.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요서를 아우르는 해상왕국 백제는 이렇게 시작되었답니다.
소서노는 온조와 함께 백제의 기틀을 잡는데 전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낯선 망명객 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건국했던 그녀의 경험과 능력은 백제 창업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한강 유역을 도읍지로 정한 그녀의 선택은 미추홀을 선택한 비류가 습하고 물이 짜서 백성이 편하게 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후회했다는 점에서도 탁월함이 입증된다고 하지요. ‘삼국사기’ 온조왕조 13년(서기전 6년)은 “왕모(王母)가 61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사기’에 왕모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극히 희소하다는 점에서 여인 소서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비록 고구려 개창의 공은 남편 주몽에게, 백제 개창의 공은 아들 온조에게 돌아갔지만 이 두 나라의 창업에 소서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답니다.


요즘 TV에서 주몽에 관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소서노가 당찬 아가씨로 등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고, 역사는 역사대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적인 사실과 비교해가며 보는 드라마,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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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오후 시간에 TV에서 방송하는 인형극을 무척 좋아했었다. 인형에 막대기를 달아 조절하는 인형극이었지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지금도 아이들 프로그램에 인형극이 나오면 아이들과 함께 나도 즐겁게 보곤 한다.
지금도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는 유화부인이 해모수에게 버림을 받게 되자 유화 부인의 아버지가 딸의 입을 죽 잡아당겨 오리 주둥이같이 만들어 내쫓은 장면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화가 났으면 딸의 입을 죽 잡아 뺐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때는 오리 주둥이 같은 입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유화 부인은 또한 알을 낳았는데 그 알을 버렸지만 모두들 그 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알에게 피해를 주려고 하지 않자 유화 부인이 알을 보호했고 결국 주몽이 태어났다는 인형극이었는데 말도 안되는 인형극을 보면서도 재미있어 매일 매일 그 시간을 기다렸던 생각이 난다.

왕이 알에서 태어났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곰과 결혼을 해 단군을 낳았다는 둥, 우리 신화를 보면 말도 안되는 거짓말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정말 옛날 이야기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 설화나 신화를 모두 믿고 살았는데 요즘은 과학이 발달해서 그런지 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해서 그런지 그런 설화나 신화의 진실들이 많이 밝혀져 있다.
의식의 개혁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우리 나라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알에서 태어난 왕들이 많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과목을 공부하다보면 왕에서 태어나지 않은 왕을 찾는 문제도 볼 수 있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신라 석씨 왕조의 시조 석탈해,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 가야의 시조 수로왕 등이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같이 고대 국가의 시조는 알에서 태어났을까?
먼저, 알의 모양과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알은 둥글고 그 안에서 생명체가 태어난다. 농경 사회였던 옛날에는 농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태양을 가장 위대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에는 세계 어디에서나 태양을 신으로 섬긴 예가 많다. 고대 사람들은 둥그런 알이야말로 태양을 닮았다고 생각했으며, 하늘을 나는 새가 인간에게 내려 준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므로 알은 태양이요,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게다가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부모의 몸을 빌리지 않고 혼자 이 세상에 나타난 신적인 존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난생 설화는 백성들에게 왕이 보통 사람이 아닌 신적인 존재이며, 하늘에서 보낸 신성하고 존귀한 인물이라는 점을 가슴 깊이 새기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백성들이 더욱 왕을 잘 따르고 숭배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한 나라를 세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도고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믿음과 충섬이라고 한다. 왕들은 불안한 백성들에게 자신이 처음부터 뭔가 다른 존재라고 믿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나라는 세운 건국 시조를 신처럼 여기게 했던 것이다.

이 책, 신라사 이야기(박영규, 주니어 김영사)는 우리 역사의 진실을 알려주고, 신라 시대 왕들의 계보, 왕들의 이야기를 잘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한 예로 혁거세 왕의 죽음을 살펴 보면, 삼국유사에 씌여 있기를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레 뒤에 유해가 땅에 떨어졌으며 왕후 또한 죽었다'라고 나와 있다.
또한 '사람들이 합장을 하려고 했더니 큰 뱀이 나타나 방해해 다섯 동강 난 몸을 다섯 능에 각각 장사 지내고 이름을 사릉이라고 하니 담엄사 북쪽 왕릉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혁거세 왕의 시신이 다섯 동강 나 있었고, 시신을 묻으려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말이라고 한다. 기록에서는 이처럼 은유적으로 설명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혁거세왕은 말기에 내란을 겪었으며 그 때문에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책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알고, 역사의 흐름을 알게 되면 세상사 이치도 깨닫게 되고, 역사의 흐름도 이해하게 되고 학교 공부에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 때 하는 공부만으로는 이렇게 깊이있는 지식을 얻을 수 없기에 평상시나 방학 때 이런 책을 읽어두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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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립 미술관에서 루오전이 열린 지는 꽤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 저런 일로 바쁘다보니 아이들과 함께 미술관까지 갈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낼 수 없었는데 방학이 끝나가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움직이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루오전에 가게 되었다.
솔직히 미술 작품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취향과도 상관이 있는 것이라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면 그리 큰 관심을 갖게 되는 분야가 아니라 루오전에 가기 전에는 루오라는 작가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했다. 똑같은 배우를 봐도 예쁘다, 멋지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다,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사실, 루오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나 미술 세계를 알고자 간 것보다는 아이들 숙제거리를 하나 더 마련해준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루오전에 가보니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에 마련된 안내 자료는 전시되어 있는 루오의 많은 작품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정도였지 그리 크게 읽을 거리를 제공해주지 못했는데 작품마다 설명이 되어 있는 해설이 마음과 눈에 쏙 들어 왔다. 학생들이 미술관 탐방기를 쓰려고 하자면 미술관에 비치된 자료나 인터넷 검색으로 찾는 자료보다 미술관측에서 마련해 놓은 작품 해설을 손으로 옮겨 쓰는 노력이 꼭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르주 루오는 말년의 사진으로 봐서도 그리 불행한 삶을 산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꽤 깔끔하고 단정하게 나이를 먹은 노인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니 루오는 고호같은 화가에 비하면 행복했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루오는 사람 농사도 잘 지었는지 당대의 유명한 문호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서 여러모로 행복한 사람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루오가 추구한 작품 세계가 소외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었고, 루오의 작품들 중 <잘난체하는 사람>이나 <거만한 여인>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 루오가 잘난 사람, 잘난 척 하는 사람, 지배 계층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루오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창녀나 곡예사였다. 루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못 가진 자, 못 배운 자, 무시당하는 자들이 주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루오는 그런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그들을 기괴한 형상으로 표현해 세상의 어두운 사회악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루오가 그들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들을 작품 소재로 삼지 않았을테니 루오는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라는 말에 부합하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루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루오가 그려내는 인간의 고귀함은 "고통 한 가운데서 그 고통을 감내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고, 그러한 고귀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하니 루오가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 연민을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예술가였다는 것을 그의 그림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말했다고 한다.
"나는 세계적인 이야기꾼이다. 나는 사람들의 인간적 성숙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라고 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개인의 꿈을 이룬 것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

"보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될 만큼 감동적인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했다는 루오.
그런 루오가 만들어낸 예수님의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은 많은 감동을 느낄 테이니 각자 개인의 작은 꿈과 노력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숭고하면 목이 덜 뻣뻣하다'는 루오의 작품 제목을 아마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갈 것 같다. 루오는 그림뿐만 아니라 짧은 그림 제목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주려고 했으니 仙을 아는 작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루오. 말년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특히 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루오의 말년도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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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화장과 머리 스타일이 너무 짙고 화려하면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죠. 남성은 손톱이 길거나 더러우면 자기 관리가 잘 안되는 것 같고요."

대부업계 대출심사 경력만 7년차인 서울의 모 대부업체 김미나 팀장의 말입니다.
김팀장은 1999년부터 하루에 많게는 20명씩, 그간 2만여명의 고객을 만나면서 돈을 빌려줄지, 이자는 얼마나 받을지를 심사해온 대부업계의 프로인데요, 이분처럼 대부업체 심사역이 하는 일은 시중은행 직원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합니다.
고객의 외모와 언행 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신용대출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잠시 한 눈을 팔면 십중팔구 돈을 떼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자신의 직업과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대출 심사를 받을 때 더 높은 신뢰를 주는 것이라고 하네요.
대출 받으러 금융기관에 나올 때 외모, 옷차림등은 일부러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명품옷을 입고 대형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객관적인 판단을 흐릴 수 있기 때문에 평가 기준에서 아예 배제한다고 합니다. 또한 고객이 보유하고 있느 신용카드의 갯수도 평가 대상이 되는데요, 지갑에 신용카드가 3개 이상 있으면 사용액수를 떠나 소비 성향이 강하다고 보고 나쁜 점수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2006년 5월 18일 조선일보 경제면 (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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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이나 있기에 일년에 서너 번은 녹색 어머니 봉사를 하게 됩니다.
저는 유난히 비 오는 날 당번이 자주 걸리는데요, 어찌 보면 비 오는 날 봉사를 하게 된 것을 더 기뻐합니다.

녹색 어머니 봉사를 하는 날은 제 아이들 밥상 차려 놓고, 아이 머리 일찍 빗겨 놓고 집을 나섭니다. 녹색 어머니 앞치마, 미스코리아 띠, 깃발, 모자, 비옷까지 살림살이가 가득 담겨 있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섭니다.

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문이 3개가 있기에 세 분의 어머니들이 봉사를 하십니다.
혹시 내가 봉사하는 날 아이들이 사고 나면 어쩌나 싶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아이들 챙기고 손짓 해가며 길을 건너주다보면 성질 날 때가 있습니다.

우선 쉴새없이 밀려드는 학원차때문에 성질 나구요, 학교 앞인데 주정차 금지인데도 차를 대고 물건을 나르는 분들을 보면 짜증나구요, 내 자식만 안전하게 교문 앞으로 밀어 넣으려고 차를 몰고 오는 부모님들을 보면 눈물납니다.

요즘은 어머님들도 차를 가지고 다니시기 때문에 자신의 차를 이용해서 아이들의 등하교를 시켜주는 어머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나쁘다는 것 아닙니다. 능력있지요.
그러나 내 자식만 안전하게 학교 교문 안에 밀어 넣겠다고 좁은 학교 앞 골목길까지 차를 끌고 오고 교문쪽으로 차를 대고 아이를 내려 놓는 부모님들을 보며 화가 납니다.
아이들을 데려다 줄 수 있는 차가 있고 시간이 있는 어머님들은 행복한 어머님들이고, 그 분들의 자제분들은 축복받은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아침 출근 시간에 쫓겨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나가는 어머님들, 그리고 그 분들의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해도 되는 걸까요?

가을 추수철에 시골에 가면 콤바인이라고 부르는 탈곡기를 이용해서 벼를 거둬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콤바인을 운전하는 분, 쌀자루를 계속 번갈아 대가며 털어낸 벼를 담는 분, 2인 1조가 되어 작업을 합니다. 벼가 그 자리에서 베어져 자루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희한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어쩜 저렇게 벼 한 톨, 흘리지 않고 쏙쏙 담아내는지 신기하지요.

자기 자식들 행여나 사고 날까봐 차문을 교문 쪽으로 대고 아이를 내리게 하는 어머님들을 보면 탈곡기 속으로 들어가는 벼가 생각납니다.
자신의 아이들은 교문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서 좋겠지만 그 어머님들이 차를 돌리느라 애먹을 때 이쪽 저쪽에서 오는 아이들은 누가 보호합니까?

녹색 어머니 자원 봉사자들이 있지만 위험해서 '앗' 소리를 지를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닌데 그 많은 아이들이 어떻게 다 안전하게 학교 안으로 넣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오거나 말거나 차를 돌리려고 운전에 열중하는 어머님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내가 안 보는 날에는 내 아이들도 저런 대접을 받겠거니 싶어서 말입니다.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교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내려주어 아이가 학교 교문까지는 걸어가며 친구들과 인사라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요즘 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도보에 펜스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안전하니 말입니다.

오늘 아침, 고마운 분도 있었습니다.
분뇨 수거차를 운전하시는 아저씨였습니다. 학교 교문 앞에 차를 세우고는 움직이질 않으셔서 째려보고 있었는데, 저와 눈이 마주치자, "앞 차가 빠져 나가면 금방 갈께요. 미안합니다."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찌나 고맙고 죄송하던지...
커다란 분뇨차를 못 빠져나가게 한 차는 방금 전에 한 아이를 교문 앞으로 쏙 밀어 넣고 간 어느 어머님이 혼자 타신 차였습니다.

제발 말로만 아이들 안전, 아이들 건강 생각하지 말고요. 내 자식 귀한 것처럼 남의 자식도 귀하다고 생각하고, 서로 한 발씩만 양보하면 어떨까요?
내 자식 운동화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고 싶은게 부모 마음이지만 빗물 고인 웅덩이에 발을 첨벙첨벙 담그며 좋아하는 아이들 모습도 볼만하지 않나요?
신발 빨고 양발 빨 일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어른 되면 그런 놀이도 못하잖아요...

제발, 부모님의 관심을 사랑을 조금 덜 받고 있는 아이들도 생각해주는 어른이 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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