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자식 사랑을 이야기할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눈은 감각이 굉장히 예민한 기관이라 작은 먼지, 눈썹 하나만 빠져도 불편함을 느끼는 예민한 기관이라 이런 표현이 더 마음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을 위해 눈길을 헤치고 구조대를 찾아나선 제임스 김. 그러나 결국 실종 12일만에 발견된 그는 저체온증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어린 두 딸과 아내를 위해 청바지와 운동화만 신은 채로 그 먼 눈길을 걸어간 제임스 김의 부정 뒤에는 그의 아버지의 부정도 있습니다.

미국 오리건주 산악지대에서 실종된 아들 가족을 찾기 위해 구조 요청에 나선 제임스 김의 아버지 스펜서 김씨는 미국 구조 대원들까지 감동시킨 구조 활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오리건 주 산악구조대의 윈터스 보안관은 “스펜서 김이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아들은) 여러분들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을 때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우주항공 관련 회사 CEO인 스펜서 김씨는 아들 가족의 실종 소식을 전해 듣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답니다. 스펜서 김씨는 위성회사와 접촉해 그 회사의 인공위성을 조난지역 상공으로 이동시키도록 하기도 했답니다. 수색지역의 위성 사진을 더 잘 찍기 위해서였다네요. 그의 노력으로 움직인 위성은 군사지도 제작용 위성으로 680㎞ 상공에서 1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펜서 김씨는 또 아들 가족의 수색작업을 위해 민간 헬리콥터 3대를 고용했답니다. 따뜻한 옷가지와 음식, 조명탄 등이 든 인명구조용 행낭 18개를 조난 추정지역에 떨어뜨리기도 했구요. 스펜서 김씨는 혹한과 폭설로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대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매달렸답니다. 하지만 제임스 김씨의 두 딸과 아내는 개인적으로 구조 활동에 나선 그 지역 사람에게 발견이 되었다고 하네요. 제임스 김의 아내가 우산을 높이 쳐들고 계속 흔들며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그 주민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제임스 김은 눈 덮인 산 속을 헤매면서도 구조대를 보내달라 (Please send help)는 메모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대학 교육까지 받은 제임스 김이 왜 이렇게 간단한 메모를 했을까 생각해보니 글을 잘 모르는 사람이나 외국인이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 놓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임스 김의 아버지 또한 아들의 성격을 알고 한시라도 빨리 아들 가족을 구해내려고 모든 노력을 동원했겠지요.

제임스 김의 아버지 김 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웬만한 사람이면 알 만한 부자라고 합니다. 그가 경영하는 ‘CBOL 코퍼레이션’은 세계 40개국에 항공기 부품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연 매출액이 1억 달러가 넘는다고 하네요.

로스앤젤레스 근교 우드랜드힐스 지역에 약 1만2240평에 이르는 저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는 낡은 1997년형 올즈모빌 자동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검소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도 아들에게는 유난히 엄격해서 제임스 김 씨가 대학에 갔을 때도 용돈을 보내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제임스 김 씨도 아버지를 닮아 알뜰했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결혼식도 샌디에이고의 한 공원에서 조촐하게 치웠을 정도라고 합니다.

아들의 시신 앞에서 아버지는 이 모든 기억을 더듬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하네요. 제임스 씨의 시신발견 발표를 하는 기자회견장에서 구조 대원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애타는 부정으로 아들을 찾았다고 합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 제임스 김이 가족을 위해 구조대를 찾아나선 그 사랑,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는 부자간의 정... 이승에서 못 다한 부자간의 사랑에 아버지가 깊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저는 제임스 김씨의 부정도 고맙고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만 아들을 찾기 위한 스펜서 김씨의 노력에 아낌없는 감사와 위로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제 남편이 저와 사귄다고 집안 식구들께 말씀드렸을 때 시댁이 난리가 났었답니다. 저와 신랑을 만나는데 다리를 놓아준 셋째 시누이는 집에서 얼마나 혼이 났는지 한동안 저하고 말을 안하고 저를 소 닭 보듯 했으니까요. 어디 여자가 없어서 에미 애비 없는 년이냐고 시어머님이 난리가 나셨답니다. 얼떨결에 저희 신랑은 저보고 헤어지자고 했구요. 한동안 난리가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 때, 모든 사람들이 No 할 때, Yes라고 해주신 시아버님이 계셨습니다. 어머님과 금슬도 좋으시고 순한 양같은 아버님께서 어머님께 반항(?)을 하신 거지요.
제가 아버님께 여쭈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랑 다들 저를 싫어하시는데 왜 아버님은 저를 좋아하세요?" 하고요, 그랬더니 저희 아버님 말씀은 " 아들은 내 분신이다. 나는 아들이 좋다고 하면 나도 좋다."였습니다.
제가 좋아서라기보다 아들이 좋다니까 나도 좋다는 맹목적인 말씀이었지만 아버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 믿음이 느껴지는 말이여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변변한 학벌도 직장도 미래도 보장없는 군인 상병이었던 남편, 친정에서도 다 반대를 했지만 제가 남편을 선택한 이유는 아버님의 보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들이 술도 안 먹고, 노름도 안 하고, 여자때문에 속 썩이지도 않고, 배운 것도 없지만 니 속은 안 썩일 거다. 그런데 내가 장담 못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담배는 장담 못한다. 나 몰래 화장실에서 피우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라고 하셨던 아버님 말씀! 그 말씀 하나 믿고 남편을 선택했는데 아버님 말씀이 딱 맞습니다. 다른 것은 다 아버님이 장담하신 그대로인데 담배는 피우니까요. ^^

제가 남편보다 더 믿었던 시아버님, 아버님의 사랑을 제임스 김의 아버지를 통해 또 한 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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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한 유명 제과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선물을 줍니다. 루돌프 사슴뿔 머리띠, 눈사람 귀마개, 천사 날개, 루돌프 빨간 코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해는 1미터가 넘는 모자를 준다고 하더군요.
며칠 전 그 제과점 본사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만 칠천원이 넘는 케이크에 한해서 증정을 하고 조기품절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 회사에서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 올해는 미리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저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조카들, 아이가 있는 친구집에는 케이크을 선물로 사줍니다. 안를양에 사는 조카들에게는 케이크 값을 돈으로 부쳐 주던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서 보내기도 하구요, 대전에 사는 조카들에게는 제가 케이크를 사서 갖다 줍니다. 한 해에 4개의 케이크를 사야 하기에 비싸고 멋지고 제 맘에 드는 케이크를 사는 것은 경제적으로 무리가 되어 좀 작은 케이크를 일괄적으로 구매를 합니다.
제작년에는 천사 날개를 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다른 조카들은 천사 날개 필요한 조카들이 없었지만 셋째 늦둥이를 낳은 친구네 집에는 두살짜리 딸아이가 있어서 일부러 그 제과점에 가서 케이크를 구매했습니다.

케이크 3개를 똑같은 것으로 사고, 케이크 개당 금액은 선물을 주는 금액에 못 미치지만 3개나 샀으니 천사 날개를 하나만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일헌지하에 거절을 하더군요.
이미 계산이 끝난 저는 거들떠 볼 생각도 안 하고 눈도 안 마주치며 안된다고 하는데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럼 천사 날개를 하나만 팔라고 했습니다.
"우리 딸은 커서 필요도 없고 친구 딸 주려고 하는 거니까 하나 팔으라"고 해도 끄떡없었습니다.
케이크 숫자랑 천사 날개 숫자가 같게 나와서 한 개도 팔지도 주지도 못한다고 하더군요. 사정 사정을 하다가 결국은 천사 날개를 구하지 못하고 케이크만 친구집이랑 언니네 집에 전해주고 오는데 화가 어찌나 나던지 추운 날에도 스팀이 오르더군요.

점원들 말도 맞습니다. 케이크 숫자랑 천사 날개 숫자가 맞게 와서 못 준다. 그럼 케이크 하나를 선물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모 마음은 조카들에게 똑같은 케이크를 선물하고 싶지 어느 집은 더 좋은 거 주고, 어느 집은 좀 작은 거 주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사는 세상에 여분이라는 것도 있고, 그 제과점 지점 사장님도 조카도 있고 딸도 있을텐데 직원들에게 몇 개 더 준 것도 없을까 싶어서 엄청 서운했습니다.

케이크 배달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 제과점 본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서 나눠 먹는 것은 정을 나누는 것인데 케이크 값에 선물 값을 포함시켜서 모든 케이크 구매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케이크 선물을 하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있고, 식구 수가 적은 집은 굳이 큰 케이크를 먹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올해는 각 지점에서 개별적으로 만들어 파는 작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만 칠원대를 넘어서기 때문에 기간 안에만 구입하면 다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남편은 시계를 팔아 머리핀을 사주고,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사주었다는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한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기념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 고마워 하는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그 날에 케이크의 크고 작음에 따라 선물을 주네 안 주네 싸우는 사람들이 올해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미리 전화를 해보았으니 다른 제과점 케이크와 비교해보고 살랍니다.
그 친구 딸내미, 이제는 커서 그 모자 쓰고 걸어다니다가 사고날까봐 안 사줘도 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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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을 먹을 때였습니다. 농구 중계를 보려는 남편때문에 거실에서 TV를 보며 밥을 먹는데 남편이 TV를 보다가 말을 하더군요. 이다해씨가 선전하는 CF 보더니 "얼굴도 예쁜 애가 착한 일도 했다더라"고 말을 해주어서 알게 된 이야기입니다.
곧 크리스마스가 되는데 올해에는 이런 예쁘고 고마운 일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특히 소녀를 위해 삼성전자에 전화를 하는 열성까지 보여준 고아원 관계자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 어떤 이야기인지 소개할께요. 여러분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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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해(22)가 CF에 입고 나왔던 자신의 의상을 한 `특별한` 팬에게 전달한다고 합니다. 이다해는 삼성전자 `하우젠 아삭` 김치냉장고 CF에서 입었던 미니원피스를 전북 완주군의 16세 소녀에게 생일선물로 준다고 하네요.

고아원에서 자라온 그 소녀는 지난해 15년만에 찾은 친모에게 양육을 거부당한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활달했던 성격도 변하고 말수도 줄어 거의 실어증 상태에 놓였있었답니다. 그런데 평소 이다해를 유난히 좋아하던 그녀가 `하우젠 아삭` CF를 보고는 예쁘다며 오랜만에 말문을 열게 되었다고 하네요.

소녀의 밝아진 모습에 고아원 관계자가 삼성전자측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곧 소녀의 생일인데, 이다해가 CF에서 입었던 것과 비슷한 옷이라도 선물해주고 싶다"며 어디서 구하면 되느냐고 문의를 했다고 하지요.

이 사실을 전해들은 이다해는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놀라우면서도 정말 기쁘다"면서 흔쾌히 자신을 의상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다해 씨는 소녀의 생일인 오는 17일 CF 속 의상을 소녀에게 전달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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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고전문학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문득 우리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ROTC 출신으로 연세가 쉰 정도 되신 분이었는데 체격도 성격도 남자다운 선생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 얘들아, 너희들 내 말 좀 들어 봐라. 너희들 중에서 연애는 평생 한 번이면 된다. 첫사랑이 끝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봐." 라고 말씀하셨다.

고 3때 우리반 아이들이 57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중 손을 든 아이는 나와 다른 한 아이뿐이었다.

선생님은 "그럼, 다양하게 남자들도 만나보고 그 중에서 골라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손들어봐라." 라고 말씀하시자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너희들 중 처음에 손을 든 두 명은 나중에 결혼을 하고 후회하는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선생님 생각에는 대학도 남녀 공학을 가고 직장도 큰 직장에 다니면서 다양한 남자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자기에게 적합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외곬수는 인생을 사는데 옳지 않다는 말씀도 함께 해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이자 끝사랑으로 남편을 택한 나는 가끔 TV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힘들고 외로울 때 첫사랑을 떠올리는 여자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나에게는 추억이 없으니 말이다.

2006년 11월 22일자, 조선일보에 보니 '新 여우의 법칙'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학교에서 진짜 예쁘고 착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못된 남자들을 만나 마음 고생만 하던데 그냥 별로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오히려 공주 대접 받으면서 시집도 입 벌어질 정도로 잘 가더라구요."라는 인터뷰로 시작된 기사는
<남자들은 왜 여우같은 여자를 좋아할까?>라는 책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었다.

그 책의 저자가 말하기를 "남자들은 90%가 착해 빠진 바비인형 타입이 아니라 약간 성깔 있고 매달리지 않는 여자들을 볼 때 도전욕구를 느낀다는 조사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단다.

또한 이 책의 저자가 말하기를 "쉽게 말해 브레드 피트가 착한 여우 제니퍼 애니스톤을 두고 팜므 파탈같은 안젤리나 졸리에게 가버린 것을 연상하면 된다"고 설명했단다.

이 기사는 "못된 애들이 시집 더 잘 가는 이유, 이거였군 新 여우 7계명"을 말하고 있는데,

1. 과잉 공급은 애정 하락으로 연결된다.
2. 길들여지길 거부하는 여성에게선 빛이 난다
3. 순진한 여우보다는 까칠한 싸가지가 낫다
4. 외모를 가꾸려면 아예 '끝장'을 봐라
5. 여우는 완전 정복이 불가능하다
6. 지갑이 비면, 여자의 자존심은 끝없이 추락한다
7.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여자일수록 여왕대접을 받는다 라고 알려주고 있다.

피부는 아기 피부처럼 몸매는 20대 초반을 뺨치게, 정신을 그보다 더 강하게, 맹렬하게 트렌드에 동참해야 한다고 하니 여우가 되기도 꽤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재미있게 기사를 읽었다.

그나저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말, " 새 드레스를 입었다고 저절로 우아해지는 건 아니다"라고 하니 앞으로는 각종 재테크 입문서, 펀드, 보험, 적금에 관해 꼼꼼히 살펴봐야 하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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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극동의 김회장, 대동의 박회장, 동아의 최회장, 대림의 이회장이 모여 공사 하나를 가운데 놓고 회의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제가 알아보니 극동은 김용산 회장, 대림은 이재준 회장, 동아는 최준문 회장이라고 하더군요.)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일감이었지만 동아의 최회장이 그 공사를 기어코 자기가 해야겠다고 부득부득 우겨 다른 분들의 양보를 차례로 받았는데 대림의 이회장만은 요지부동이었다고 합니다.

서로 자기가 하겠다는 불꽃튀는 설전 끝에 최회장이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면서 '나는 고혈압인데..." 쓰러지듯 누워 버렸답니다. 엇뜨거라 싶어진 대림의 이회장이 깜짝 놀라 거두절미하고, "그래 그 공사 너 가져."했답니다. 그 말을 듣자 최회장이 "음, 조금 낫군."하면서 부시시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 최회장이 이회장과 약속을 깬 일이 있었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이회장이 지프차에 자갈을 한 가마 싣고 가 그 집에 돌맹이를 실컷 던지고 나서 운전기사에게 "집에 가자"했다는 일화가 있답니다.


경주 최부잣집의 교훈 중에는

"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매입하지 말라. 흉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남들이 싼 값에 내 놓은 논밭을 사서 그들을 원통케 해서는 안 된다"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불 안 가리고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것도 좋지만 돈은 사람답게 벌어서 사람답게 쓰는 것이 더 좋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욕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한국의 기업은 선비들이 이루어 낸 것이라는 말에 공감을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양심과 공익보다는 개인의 탐욕에 흐려지기는 했지만 선비 기업 정신이라는 말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비 정신으로 기업을 시작한 분들이 아파트 건설로 막대한 이윤을 남기려고 아파트를 지었을까 아니면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싶어했고, 자기들이 세운 아파트를 보며 기술력에 자부심을 가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파트 건설로 많은 부당 이익을 취한 건설회사들, 아파트 분양권과 투기로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선비 기업 정신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답이 안 떠오릅니다.

대형 공사권도 업계의 친구를 위해 "너 가져라"라고 말하는 의리, 서운한 것이 있으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보복을 하려하지 않고 돌 덩이를 던지는 것으로 화를 삭힌 선비 정신을 가진 기업가가 요즘 세상에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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