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의 우울모드는 24시간이 지나지 못해서 완전히 해제되었다. 무슨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걱정하느라 평온이라는 귀한 선물을 뺏길 순 없다!

우린 저녁에 수박을 맛있게 깨어먹으며 평온모드로 돌아왔다. 어차피 저질러진 일은 할 수 없고, 어떻게 해볼 도리없는 일은 해볼 도리가 없으니 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집이 우울한 날은 닥친 바로 그날뿐이다.

돌아보면 작년엔 거래처가 부도가 나고, 차사고가 두 번이나 나고, 수술하고...정말 일이 많았는데 우리집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모두 놀란다. 모르는 일도 아닌데 우리가 잊으니 다른 가족들도 잊어버린다.

문제를 문제로 만들지 않고, 서로 탓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신랑 덕이다. 양가집 모두 물러터진 아이 둘이 산다고 걱정하시지만 우린 천생연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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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7-1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듣기만 해도 좋습니다~^^

혜덕화 2004-07-1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출근길엔 성철 스님의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이 생각나서 운전하는 내내 미소를 지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고심원에서 삼천배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성철 스님 동상을 올려다보니, 스님의 동상이 빙그레 웃고 있지 않겠습니까? 평온 모드로 돌아온 님과 낭군님의 지혜에 감사. 좋은 하루 되세요.
 
선의 나침반 1
숭산스님 지음, 현각 엮음, 허문명 옮김 / 열림원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기대했었다. 선불교에 관한 책이라고 하고, 눈푸른 스님들이 마이크만 잡으면 스승이라고 부르는 분의 책이라서. 그러나 책이라서 영 개운하지가 않은 것 같다. 아마 그분의 말씀에는 힘이 있었을 것이지만 외국인을 위해 영어로 씌어진 책을 다시 국문으로 옮긴 이 책은 불교개론서에 가깝지만 "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치고는 다소 "설명적"이어서 머리로 이해는 잘 되지만 가슴에는 덜 닿았다. 2권이 온통 공안들로 가득차 있는 법문임에도 이야기를 듣는다기보다는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책에 외국인 스님들의 법문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거의 들어있어서 놀랐다. 자신의 경험과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법문이라 여겼는데 숭산 스님의 제자분들이 숭산 스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 예를 드는 것이 좀 이상스럽게 보였다. 어쩌면 이국땅에서 스승 한 분만을 보고, 출가를 한 분들이라 스승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도 싶었다. 무슨 예를 들든 무슨 상관인가, 깨달음만으로 족하리.

허나 깨달음을 어이 느끼라. 책은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라 느낌을 전달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 책처럼 저자가 아닌 사람이 엮은 데다가 번역까지 된 책은 더욱 그렇다. 게다가 깨달음은 언어로 전해지지도 않는다고 하니.

느낌이나 충격은 제쳐두고 우선 깨달음의 단계나 상태를 인지하고자 하거나(원을 그려서 반복해 설명해 주신다(2권)), 짧은 시간에 불교 전체를 훑고(1권) 선불교의 가르침에 입문(2권)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에 관심 있는 분은 서울 화계사에서 일요일에 하는 영어법문이나 선문답 등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래도 역시 가르침은 있었다. 가장 큰 울림은 수행하라, 수행하라, 쉬임 없이 수행하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목이 터져라 외쳐도 한번 보고 뜨끔하고는 또 곧 잊고 나태해지는 나 자신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숭산 스님, 수행은 하지 않고 당신의 이야기를 이렇다 저렇다 떠드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하지요? 30방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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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7-14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게 쓰여진 책을 찾다가 이걸 골랐어요... 내일부터 읽으렵니다. ^^
 

오늘은 신랑이 무척 힘든 날이었다. 집에 들어올 때 신랑은 괜찮다고 했지만 가방을 들어 주었다. 가방이 없어도 쓰러질 것처럼 보여서.

최악의 경우 영업정지다. 최소 2달 정도. 전에 근무하던 곳에서 일처리를 좀 이상하게 해서 생긴 일인데 신랑이 다 뒤집어 쓸지도 모르게 되었다.

물론 나는 괜찮다. 그러나 신랑은 안 그럴 것이다. 한 다리가 무섭다고 가정 공동의 일이라도 직접 부딪히는 것은 차이가 많을 것이다. 이미 엎지러진 물이고, 할 수 있는 일은 조금 기다리는 일뿐이라 마음을 풀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말로는 그래도 신랑은 저녁 내내 말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만 봤다. 나는 계속 말을 붙였다. 질문도 하고. 결국 신랑은 웃으면서 잠들었지만 이제 내가 잠이 안 온다. 

그렇게 최악의 상황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랑이 계속 마음을 쓸까봐 그게 더 걱정된다.

삶을 신뢰하고 수용한다는 것은 어떤 태도일까? 쉬게 되면 생계에 타격은 있겠지만 "아, 좀 긴 휴가군", 다행히 잘 해결되면 "역시 우린 운이 좋아"라고 말하는 걸까? 이런 태도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신랑에게 위로는 되겠지만 힘은 되지 않을 수도 있겠군.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이 편한거지.  

신랑은 매일 아침 108배를 한다. 2년 넘게 매일 하고 있다. 그걸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인다. 수행에도 일에도 참 성실하다. 그런 사람이 요즘 사는 데 재미가 없다고 하니 참 안타깝다. 이럴때 누가 힘이 되겠는가? 마누라!

마누라가 누군가? 나다! 선희야, 함께 있는 사람과 기쁨을 나눌 수 없다면 세상의 누구와 나눌 수 있겠냐? 신랑에게 좀더 신경쓰고, 좀더 즐거움을 나눠야겠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냐고? 문제는 언제나 문제다. 문제만 들여다보면 문제아가 되기 쉽상이다.

나와 신랑이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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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7-10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령 생각대로는 아니라해도 길게 보면 그 일 때문에 이만큼 땅이 다져졌어. 하고 나중에 웃을 수 있는 일이 많지요. 그렇다해도 일이 잘 해결되시길 기원합니다.

혜덕화 2004-07-10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남편이 직장 생활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저녁에 맥주 한잔 하며 가볍게 나눈 이야기에서도, 그 힘듦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날은 잠이 안오더군요. 별로 인간관계에 부대끼며 살지 않았던 터라, 그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더군요.
매일 108배 하시는 분이니까 마음 다스리는 것은 아마 스스로 하실 수 있을거예요.
부디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verdandy 2004-07-10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험만으로 말씀드리자면... 긍정적인 마음, 희망적인 생각,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상황을 더 나빠지지 않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그 순간부터 사람이 또 따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에너지를 차단하지 않으면 그 부정적 기운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더군요.

도반께서 힘을 내셔서 잘 극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누아 2004-07-1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신랑도 힘내서 나갔습니다. 저는 저녁 약속 취소하고, 오늘 저녁 신랑과 함께 보내려고 합니다. 작년과 올해는 우리가 일을 시작하는 때라 좀 어려움이 있나 봅니다. 신랑이 워낙 선한 사람이라 아주 잘못되는 일은 없을거라 확신하며 살기 때문에 저는 별 걱정이 없습니다. 그저 신랑이 마음고생 하는 것 같아 그게 마음이 쓰입니다. 모두들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마도 님들 덕분에 잘 해결될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스무 가지의 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가난한 자가 보시하기 어렵다.

강하고 부유한 자는 도를 배우기 어렵다.

목숨을 버리고 확실하게 죽기 어렵다.

오직 소수의 복받은 사람들만이 붓다의 경전을 얻어 볼 수 있다.

붓다가 계실 때 태어나기 어렵다.

성욕을 극복하고 욕심을 참기 어렵다.

좋은 것을 보고 탐내지 않기 어렵다.

모욕을 당하고 화내지 않기 어렵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남을 억누르지 않기 어렵다.

일을 만나서 순수한 마음을 갖기 어렵다.

널리 배우고 연구하기 어렵다.

아만심을 멸하기 어렵다.

배우지 못한 사람을 멸시하지 않기 어렵다.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기 어렵다.

타인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기 어렵다.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 어렵다.

깨달음을 얻고 도를 실행하기 어렵다.

사람들을 제도하기 어렵다.

항상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붓다의 길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

42장경 중 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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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경 1
오쇼 라즈니쉬 지음, 황광우 옮김 / 꿈의날개(성하) / 199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 책이 품절이라...도대체 내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얼마전에 이 책을 구입했는데 어디에서 구입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리뷰를 쓰려고 보니 이 책은 전체 2권짜리 책이고, 게다가 품절이다. 그래서 황급히 확인해보니 내가 읽은 것은 1권이다. 살 때 2권은 보지 못했는데...근데 어디서 샀지? 운명이라 생각하자. 나를 만나려고 어느 서점에 숨어 있었다고 여기자.

라즈니쉬는 경전을 제 맘대로 읽는다. 남이 무어라 했건 상관없다. 그래서 그의 냄새가 난다. 그가 그의 안에서부터 말하므로 또한 나의 안을 울린다.

삶은 하나의 놀이이며, 그 안에 나를 매몰시켜서는 안 된다. 삶 속에서 경험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삶의 흐름을 타고 흐르며, 삶을 초월하라. 삶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바라보라. 나는 언젠가 바위였으며, 사자였으며, 나무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모양을 하고 있다. 그렇게 삶은 흘러간다. 그 안에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삶을 주시하라. 주시하라는 말은 깨어있으라는 말이다. 온유해져라. 군인의 태도로 삶과 투쟁하지 말라....

자기 전에 나는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와 그제, 나로서는 말할 수 없이 아팠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며, 머리는 줄곧 아팠다.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나는 아픈 나에 매몰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파하는 이것은 무엇인지 주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픈 것을 이겨내느라 끙끙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아픔을 온유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떻게 속이 뒤집힐 것 같은데 그것을 놀이로 여길 수 있는가? 어떤 때는 그런 나를 주시하며, 어떤 때는 아픈 대로 울면서...다행히 조치가 취해졌고, 나는 편안해졌다. 다른 세상에 놓인 것 같았다. 아플 때와 나았을 때.

문득 아픈 상황에서 그 상황을 주시할 수 없다면 죽음의 순간에 깨어있기란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생각했다. 참으로 이 경전에 적힌 대로 "목숨을 버리고 확실하게 죽기 어렵다". 라즈니쉬의 말대로 사람들은 죽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삶을 포기할 수 있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나는 아픔과 싸우며, 아픔에 대항하여 숨을 곳을 찾았던 것처럼 죽음에서도 같은 태도를 취할 것만 같았다. 이 생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죽음을 맞이할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다행히 나는 죽지 않았고, 다시 기회가 있다. 

이 책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아픔을 통해 나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 보는 것을 도와 주었다.  붓다와 붓다의 말들을 정리한 사람들과 이것을 해설한 오쇼와 역자와 출판사와 인쇄업자와 종이가 된 나무들과...그 무한한 존재들과, 또 그 존재들을 만난 나 자신에게 감사하며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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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7-0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찮으셨군요. 쾌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