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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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의 얼굴에 바이칼호의 추위가 서려 있다.” 하셨다고 합니다. 추위를 견디려 코는 낮아지고, 눈두덩은 두꺼워졌습니다. 혹한 속에서 한반도에 이른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얼굴입니다.


한국 문화 대탐사의 완결편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신간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한국인 얼굴 대장정의 시간입니다. 내 얼굴에 스며든 한국인의 얼굴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이어령 저자의 유작입니다.


온전한 생물학적 얼굴은 과학적으로, 문화를 입은 얼굴은 역사적으로 분석해 봅니다. 과학과 인문으로 얼굴을 탐색하는 방법이 재미있습니다.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차가우며, 가장 크고, 가장 깊은 담수호 바이칼호. 이 책은 한국인이 시베리아의 극한 추위를 극복하고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시베리아 기원설을 따르는 저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동남아시아 기원설도 있습니다.


한국인 얼굴을 분석한 최창석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북방계형 얼굴과 남방계형 얼굴을 가진 인구 비율이 반반이라고 합니다.


북방계 얼굴은 타원형으로 이마가 넓고 눈썹이 흐리며 눈과 입이 작은 편입니다. 남방계 얼굴은 역오각형에 이마가 좁고 눈썹이 진하며 눈이 큰 편입니다.


북방계와 남방계의 중간형은 내륙 지방에 특히 많을 테지요. 북방계 신석기인과 남방계 아시아인이 수천 년간 유전적으로 섞이면서 현대 한국인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인만의 4가지 특징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재밌습니다. 눈이 세계 1등으로 작고, 털이 없기로 1등, 두상 큰 걸로 1등, 치아 큰 걸로 1등이라고 합니다.


특히 어금니가 크기 때문에 서양식의 씹는 츄잉이 아닌 갈아버리는 그라인딩 방식을 사용하면서 턱과 광대뼈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얼굴은 유전적 얼굴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문화의 얼굴도 있습니다. 수백 년을 거쳐 오면서 생성된 문화의 얼굴. 한국인의 문화적 특징이 쌓인 얼굴을 살펴보는 일도 흥미진진합니다.


한국인이 잘 못하는 게 윙크라고 합니다.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식이라 멋스럽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국적 무표정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표정이 다채롭지 않습니다. 호탕하게 웃기보다 웃는 듯 안 웃는 듯 아리송한 미소를 짓습니다.


고분의 벽화, 불상, 장승, 풍속화와 추상화 등에서 한국인의 보편적 얼굴을 유추해 보면 한국적인 미소가 무엇인지 실감됩니다.





성형공화국 시대에 옛 한국 여성이 지닌 아름다움의 미를 되짚어보기도 합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흔히 말하는 부잣집 맏며느리감 얼굴은 아니지 않나요? 미인에 대한 가치관은 끊임없이 변화해왔습니다.


서양인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미의식이 작동하기 시작한 시대부터 전통 미인상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골격도 바뀌고 있습니다. 턱뼈가 작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마냥 좋은 건 아니라고 합니다.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은 한국어 발음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분석합니다.


한국어 발음 중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 어금니에서 나는 소리가 없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어의 '좋다'를 발음할 때 '조'에다 후음 'ㅎ'을 붙여서 소리를 내야 하는데, 이제는 그냥 '조타'로 쉽게 발음해버린다고 합니다. 후음을 발음하는 신경회로의 사용이 덜해진 겁니다. 얼굴과 발음의 상호 연결성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이후 세계로 퍼져나간 인류. 모험 유전자 덕분에 바이칼호를 거쳐 한반도에 정착하며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얼굴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어령 저자는 이모티콘과 화장, 성형수술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오늘날 우리 얼굴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눈빛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고 말이죠. 눈빛 없는 도형들로 소통하며 우리가 잃은 것들이 무엇인지 짚어줍니다.


수천 년 내려오는 우리 DNA 속 한국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내 얼굴에 담긴 인류 역사와 문화를 통해 한국인의 숨결을 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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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없다 - 현대의학의 한계를 넘어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만성질환 정복법
제프리 블랜드 지음, 이재석 옮김, 박춘묵 감수 / 정말중요한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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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피곤하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합니다. 어제는 잠도 잘 못 잤고 집중도 안 되고 몸에 활력도 없고 녹초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증상으로 병원에 가면 의사는 증상 완화 약물을 처방해 줄 겁니다.


그 외에는 사실 할 게 없습니다. 이 정도는 컨디션 문제 또는 노화의 징조로 치부될 겁니다. 의료 시스템은 급성 질병에 맞춤화되어 있습니다. 만성질환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만성질환의 위험성을 실감하면서 기능의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질병 증상에서만 초점 맞추기보다 근본 원인을 다스린다는 기능의학적 접근 방식이 더 공감됩니다.


기능의학 권위자의 책을 몇 권 읽으며 기능의학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드디어 기능의학 창시자의 책을 만났습니다. 만성질환의 개인맞춤형 예방과 치료에 초점을 맞추는 기능의학의 아버지 제프리 블랜드의 <질병은 없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땐 아리송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은 증상에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는 게 제프리 블랜드의 주장입니다. 그는 “기능의학은 건강을 창조하는 과학이다.”라고 합니다.


증상의 뿌리에 가닿고 신체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개인맞춤형 접근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우울 증세를 보여 항우울제로 치료한다가 아닌, 질병의 진짜 원인을 바라보게 하는 겁니다.


기능의학은 만성질환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만성질환은 저절로 낫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고, 요인이 복합적이고, 증상도 복합적입니다. 만성질환은 평생 갖고 살아야 하는 질환으로만 여기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만성질환은 삶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수명이 늘어났으니 더 건강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감염병 관리를 위해 백신 예방접종하듯 만성질환도 발병 원인을 찾아 조기 개입을 통해 피할 수 있다는 게 기능의학의 관점입니다.


기능의학은 순환계, 소화계, 신경계, 면역계, 내분비계, 생식계, 호흡계 등 신체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기관들의 네트워크를 통합적으로 살핍니다. 기능의학은 부족한 기능을 개선해 만성질환을 역전시킵니다. 수십 년간 기능의학에 매진하며 기능의학이 검증된 과학임을 증명하는 사례가 이 책에 소개됩니다.





<질병은 없다>에서는 건장 자가진단 질문지를 시작으로 7개 영역에서 스스로 살필 수 있는 자가진단 질문지가 실려 있습니다.


세븐 코어라고 해서 흡수와 배설, 해독, 방어, 세포 연락, 세포 수송, 에너지, 신체 구조 영역으로 구분한 7가지 핵심 생리 과정을 다룹니다. 각각의 생리 과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불균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짚어줍니다.


내 환경과 행동이 내가 가진 고유한 유전적 소인과 반응해 균형이 틀어졌을 때 기능장애가 생깁니다. 흔히 우리는 잘 먹고 잘 싸야 건강하다고 하지요. 영양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한들 제대로 소화하고 흡수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만성질환은 하나 이상의 핵심 생리 과정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합니다. 자그마한 불균형이라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에 각각의 생리 과정을 이번 기회에 면밀히 검토해 보세요. 질병이라는 기능 이상을 일으킨 생리적 문제를 이해하는 게 건강 문제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기능의학은 유전자, 환경, 행동이 보내는 외부 메시지, 7가지 생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균형 등 모든 영역을 탐지하며 만성질환의 치료적 접근법을 개인맞춤형으로 제공합니다.





<질병은 없다> 마지막 장에서는 건강관리 도구를 소개합니다. 기존의 약물뿐 아니라 식사, 영양보조제, 운동, 생활 습관, 환경 개선 등이 포함된 처방입니다. 자신만의 개인맞춤형 건강 계획을 세우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개인맞춤형 건강관리 프로그램으로 유전자가 발현되는 방식과 건강 패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합니다. 특히 생활 습관, 식단, 환경 세 요인을 집중적으로 변화시킬 겁니다. 12주 기간으로 말이죠. 임상 연구 결과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평균 12주가 걸린다고 합니다.


지금 당신이 불편해하는 건강 문제는 무엇인가요? 늘 피곤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할 수도 있고, 관절 통증이 개선되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자가 질문지 해석을 통해 어디에서 불균형이 일어나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그에 따른 맞춤형 프로그램을 짤 수 있게 도와줍니다.


내 필요에 따라 불균형에서 회복할 수 있는 건강관리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가이드를 세워주는 <질병은 없다>. 그때그때 증상만 치료하는데 급급하지 말고 만성질환은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뜨려줍니다. 내 건강관리도 자기계발 마인드로 읽어보세요. 삶의 질을 높여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최고의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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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관리 답을 찾다
류랑도 지음 / 트로이목마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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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리더십 팁과 일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성과 창출 가이드북 <성과관리 답을 찾다>.


MZ세대, 잘파세대의 일하는 방식은 예전과는 또 다릅니다. 상사 중심 관리의 시대에서 실무자 중심 자율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고, 리더십을 팀장만이 아닌 팀원 리더십을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추상적인 비전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국내 성과관리 분야의 구루 류랑도 대표가 <성과관리 답을 찾다>에서 알려줍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성과를 인정받기를 원하고, 일 못하는 사람은 노력을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전략중심으로 접근하고, 일 못하는 사람은 절차중심으로 접근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플랜B가 명확하고, 일 못하는 사람은 플랜A도 흐릿합니다.”...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차이를 이토록 절묘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요?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하는 사람에 대한 팩트 비교가 명확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성과 중심으로 일하고, 일 못하는 사람은 실적 중심으로 일한다는데 성과와 실적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판가름 난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성과관리 답을 찾다>는 일과 성과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목표 및 전략 설정,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성과코칭, 성과창출에 따른 평가에 이르기까지 251개의 질문과 답변이 담겨 있습니다.


현장 리더와 팀원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Q&A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어 시각적으로 수월하게 읽힙니다.


팀장 이상의 직위에 있는 이들의 고민과 구성원 팀원들이 저마다 고민하는 질문들이 하나같이 공감 만배입니다.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난감한 고민들이거든요. 


비전을 갖고 일하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실감이 확 되는지요? 역할과 책임을 가지라는 뜻이지만, 역할과 책임을 잘 알아채는 건 누구한테 배워야 하는 걸까요? 이것도 몰라? 소리 들을까 싶어 묻지 못했던 질문들도 수두룩해서 속이 시원합니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성과관리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성과관리 답을 찾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정해진 기간 내에 고객이 원하는 결과물의 기준대로 일을 마쳤을 때입니다. 니즈(역할), 원츠(책임) 두 가지를 잘 파악했을 때 가능합니다.


성과는 고객 만족 기준이고, 실적은 내가 이만큼 노력했다는 일하는 사람 기준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결국 성과를 잘 내는 사람입니다.


자꾸 급하다고 이것저것 다른 일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거절하는 용기 따위 현장에서는 먹힐 리가 없습니다. 팀장이 시키는데 어쩌라고! 소리만 나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류랑도 저자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팀장과 의논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코칭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일 순서를 잘 정하는 걸까요?


원하는 결과물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투입해야 할 예상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예측하는 연습을 계속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 일과 협업으로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고, 바로 결정할 수 있는 일과 검토하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일도 구분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선순위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내가 생각하는 우선순위 기준과 리더가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경우까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일이 치고 들어온다고 해서 끙끙대지 말고 이 책에서 알려주는 방식으로 잡으면 적어도 일머리는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주 52시간 제도화로 실제 주 40시간을 기본으로 일하는 셈이니 근무 시간은 줄어들었건만 업무량은 줄지 않은 현실 속에서, 스마트하게 업무 생산성을 내기 위해 꼭 알아야 할 노하우를 짚어주는 <성과관리 답을 찾다>. 리얼 현장 속에서 쏟아지는 찐 궁금증들이 해소되는 시간입니다. 


질문을 통해 리더의 입장과 팀원 입장 차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더의 고민을 보면서 구성원의 태도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팀원의 고민을 보면서 리더가 코칭해야 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초년생부터 관리자, 경영자까지 조직에서 일하는 이들이 갖춰야 할 프로페셔널한 일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성과관리 답을 찾다>. 뜬구름 같은 말 따위 없이 직설적으로 조언 받을 수 있어 실용적입니다. 질답 형식이라 술술 읽히지만 한 꼭지마다 챙겨야 할 내용은 깊이가 어마어마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일을 하기 전에, '하고자 하는 일'과 '원하는 결과물'을 구분하는 습관을 갖출 수 있게 도와줍니다. 직장인 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도움 되는 조언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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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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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로페즈의 유작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감명 깊게 읽은 터라 전미도서상을 받은 대표작 <북극을 꿈꾸다>에 자연스레 관심이 끌렸습니다. 역시 배리 로페즈의 문장임을 알아볼 만큼 지적 탐구와 문학적 감수성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맥을 이은 자연주의자 배리 로페즈. 55년 넘는 세월 동안 80여 개 나라를 탐사하며 자연과 호흡해온 작가입니다.


<북극을 꿈꾸다>는 5년간 북극 구석구석을 다니며 체험한 북극 땅을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니 북극이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저는 잘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북극은 시베리아, 알래스카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입니다. 지구본으로 보면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보이는 윗부분입니다. 대체로 북방수림한계선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북극에 해당하는 지역이 일정하지 하고 들쑥날쑥합니다. 여름철 북극의 공기가 남쪽으로 확장되는 평균 지점과 일치한다고 하니 경이롭습니다.


평면 세계지도와 둥근 지구본의 느낌은 또 색다릅니다. 그린란드가 이토록 캐나다 북쪽과 가까웠다니, 러시아 끝 베링해협과 캐나다가 이토록 가까울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북극 하면 떠오르는 건 북극곰, 이글루 정도입니다. 영화 속 알래스카 풍경 정도로만 각인되어 있습니다. 낯선 북극의 땅, 그곳에 얽힌 역사와 생태계를 <북극을 꿈꾸다>에서 만나는 시간입니다.





사진 한 장 없지만 배리 로페즈의 묘사는 마음껏 상상하기 딱 좋습니다. 알래스카에서 야영할 때 한밤중에 툰드라 새 둥지 사이를 거니는 장면에서 그가 마주한 감정은 독자로 하여금 어렴풋이나마 그 감정을 알 것만 같게 만드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밤 햇빛이라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할 생경한 장면에서 말입니다. 북극이기에 가능한 한밤중에 “얼굴에 느껴지던 빛의 감촉”을 전달합니다. 


북극은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는 개념이 사라지는 장소입니다. 몸을 뒤집는 고래처럼 거의 같은 자리에서 뜨고 집니다. 해가 지평선에 닿는 순간이 한밤중이라고 합니다.


야영하던 여름 내내 어두운 밤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방으로 얼어붙은 땅에 너그러운 태양의 연민이 넘쳐흐릅니다. 빛에 가득 찬 숭고한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배리 로페즈는 이 장면으로 대지의 아름다움을 일깨웁니다.


한편으로는 북극 탐사에 얽힌 인간의 오랜 투쟁(이라 쓰고 무례한 침략이라 읽어야 하는)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탐사 뒤에 이어지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마음이 착잡합니다.


1800년대 북극 포경사업으로 일명 '풍요로운 대학살' 시대가 있었고, 북극 원주민들은 유럽 디프테리아와 천연두로 90퍼센트 정도가 몰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엔 석유, 천연가스, 광물 채취로 북극에 대한 인식은 산업 개발에 초점 맞춰진 상태입니다. 북극의 세계를 무시하고 인간들의 과제와 처지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문제는 온대의 자연 회복력과 달리 북극 생태계는 너무나도 취약하다고 합니다. 극과 극의 환경에서 적응력 자체가 느립니다.


일반적인 환경도서였다면 이쯤에서 환경운동 실천법이 소개되겠지만 <북극을 꿈꾸다>는 직설적이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한밤중의 태양빛처럼 태양이 북극 땅에 연민하듯 인간도 상상력이라는 연민을 통해 대지에 귀 기울이게 합니다.





사향소, 북극곰, 일각고래... 북극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생태 보고서이자 인간의 탐욕사이기도 합니다. 대대로 북극의 토착민들은 사냥을 하더라고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영적 책임감과 함께 수행했지만, 산업과 얽힌 인간 활동은 그야말로 끔찍했습니다.


계곡을 내처 오르는 까마귀의 경로, 풀을 뜯는 카리부의 발걸음, 겨울 해빙 위를 돌아다니는 북극곰, 강 주변 습지에서 먹이를 먹는 사향소... 배리 로페즈는 이 책에서 북극 생명의 고유한 리듬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동물을 그 배경과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하고 동물과 환경을 함께 보도록 일깨웁니다.


에스키모의 삶이 붕괴되고 북극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에 배리 로페즈가 온 마음을 다해 북극의 목소리를 들려준 <북극을 꿈꾸다>.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인 만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긴 호흡으로 경이로운 감각을 새겨가며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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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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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羞恥. 부끄러울 수, 부끄러울 치. 부끄러운이 두 번이나 들어갔으니 얼마나 심한 부끄러움일까요. 죄의식보다 훨씬 폭넓고 복잡하며 깊은 경험을 내포하는 수치심은 단순히 개인적 감정을 넘어 도덕적, 사회적, 심리적, 정치적 차원을 넘나듭니다.


사실 우리는 범법자가 아닌 이상 죄의식보다는 수치심을 더 내밀하게 경험하지 싶습니다. 그리고 수치심 그 자체보다 수치심에 따라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더 무서워합니다.


자기멸시와 침묵을 강요하는 슬픔이 포함된 수치심이 있는가 하면, “염치도 없는 자”라는 분노의 외침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슬픔과 분노의 혼합물인 이 수치심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셸 푸코 연구자이자 파리12대학 파리정치연구소 정치철학 교수로 재직하는 프레데리크 그로입니다. 전작 <불복종>의 원동력이 되는 것으로 그는 수치심을 끌어옵니다. 불복종할 힘을 주는 것은 ‘세상에 대한 수치심’이라고 말이죠.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에서 수치심을 지렛대 삼아 파괴적 슬픔, 자기 경멸을 제거하고 순수한 분노로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수치심은 심리학적 치료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정서는 부차적이며, 추락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이 낳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파키스탄에서는 여전히 매년 천명 이상의 여성들이 가문을 수치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죽임당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디지털은 가상세계가 아니라 실재하고 있습니다. 사이버폭력의 희생양들은 존재함에도 그들을 위한 디지털 회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치는 사회적 멸시를 내면화한 결과라고 합니다. 가난, 상사의 모욕 등을 이유로 받은 타인의 멸시는 이내 자기멸시로 바뀝니다.


아니 에르노는 수치심의 특별한 재능으로 기억을 손꼽았습니다. 사회적, 정신적, 신체적 영역에서 타격받습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성폭력 및 근친상간의 희생자들은 죽을 때까지 저항해야 하는가라고 되묻습니다. 살아있기에 불리해지는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수치의 경험은 흔적을 남기기에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 p101





수치심의 반대말은 몰염치입니다. 수치심이 없는 몰염치한 사람으로부터 수치심을 받는다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수치심의 동양적 의미는 움츠림, 조심성, 신중함입니다. 도덕적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도덕적 장벽으로서의 수치심은 있어야 하는 겁니다.


공자는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면 사람들은 수치심도 알고 스스로 마음을 올바르게 할 줄도 알게 되지요”라며 수치심을 관망의 태도, 더불어 살기, 행복 추구를 위한 윤리적 자질로 삼습니다.


수치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이어나가는 프레데릭 그로 저자의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개인의 부정적 감정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힘으로서 수치심의 영역을 확장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영화, 소설, 철학자들의 사상들에서 건져올린 수치심의 사례를 무수히 쏟아냅니다. 프로이트, 니체, 푸코, 플라톤, 사르트르, 라캉 등 철학자들이 펼치는 지적 향연이 풍성합니다.


“철학의 본래 기능은 수치심을 안기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는지, 그가 아는 것을 어디까지 아는지 자문하게 만들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것은 아는 척하던 이들에게 더 명료하게 밝히라며 난감하게 만들면서 수치심을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발자크, 카뮈, 카프카, 모파상, 도스토예프스키, 프리모 레비 등 유명 작가들의 소설 속 수치심 사례를 알아갈수록 읽어보고 싶은 소설 리스트가 점점 늘어납니다. 특히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 수치심과 관련한 내용이 꽤 많길래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수많은 장치들-공장, 사무실, 학교-에 대해서는 저자가 각각 책 한 권씩 쓸 수 있다고 얘기할 만큼 가벼운 주제가 아닙니다. 철학적 용어의 일부는 어렵긴 했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수치심을 다룬 주제인 만큼 제법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마르크스가 쓴 편지에 있는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수치심은 이미 하나의 혁명입니다. (중략) 수치심은 일종의 분노입니다. 억눌린 분노. 온 나라가 정말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건 달려들기 위해 움츠린 사자 같을 것입니다.”


저자는 수치심에 동반하는 분노에 주목합니다. 우리를 깎아내리는 평가, 가치를 실추시키는 모욕, 굴욕적인 실패 속에서 분노는 복수의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정치적, 집단적 분노, 방향을 띤 분노의 형태를 취할 때 분노는 정화되고 승화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분노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에 속한 수치심을 투사의 힘으로 발현하는 겁니다. 더불어 상상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집단적 분노를 일깨우기 위한 연민은 상상력에서 탄생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타인들을 대신해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는 체념하지 않고 저항할 능력으로 전환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저 감정으로만 치부했던 수치심에 대해 이토록 깊게 생각해본 경험은 처음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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